에세이<터널을 지나서>

그 하나를 못하는가.

by 박순영

오늘 한참 끌던 숙제가 해결된 날이다. 몇달을 끌어오던 서재 소파 팔기가 드디어 성공한것. 것도 내놓은 가격그대로.딱히 필요도없는 서재소파를 난 왜 굳이 들여놓고 다시 내다 팔고를 반복해온걸까. 아무튼 이제 이사도 가야하고 당분간은 짐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것 같다.


내놓은 가격 그대로,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고싶은데, 지난 2월초 처음 수령했을때부터 마음에 안들어 캐럿에 내놓았고 이후 가격은 오르내림을 반복했다.어느날은, 20엔가 내놨는데 3만원에 주면 기사 둘을 보내 가져가겠다는 챗이 왔고 난 대꾸도 않고 차단해버렸다.


거의 포기하고 있다가 어디 한번 마지막으로, 하고는 오늘 내놓은게 잭팟을 터뜨린것이다. 것도 기존가에서 한참을 올려. 말도 안되는 싸구려로 내놨을땐 시큰둥하거나 그저 찔러보기나 하던 사람들이 제값을 부르자 달려든것이다. 그렇게 두사람이 거의 동시에 구매의사를 밝혔고 간발의 차이로 한사람에게 팔렸다.



소파가 들고난 자리를 치우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이든 다 때가 있고 고유값이란게 있구나, 하는. 아무리 빨리 팔고싶어 싸게 내놔도 그렇다고 나가는것도 아니고 이가격에 설마 나가랴 싶으면 나간다. 그게 삶이다.


고흐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사후에 재조명, 재 평가된 천재들이라는 것이다. 고흐는 생전에 단 한작품인가를 팔았고 프루스트는 그저 사교계나 드나드는 딜레땅뜨로 폄하돼 그가 글을 쓴다는 행위자체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후 재평가, 즉 '고유값'을 회복해 지금 세계 미술사, 문학사의 한축으로 자리 하지 않는가.



당장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아무리 안달해봐야 '그 때'가 오지 않으면 자기만 고달프다.

예전에 어느 신인작가의 단막극을 본 적이 있는데 전에 본적없는 천재적 감각이 묻어나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그후 그 작가의 이름은 묻혀졌고 그대로 잊혀지는가 했다.

친한 pd와 작가들 사이엔 이런 대화가 흔하다. "혹시 요즘 좀 쓰는 작가좀 알아요?"

작가입장에서 다른 작가를 추천한다는건 상당히 기분 나쁠수 있지만 몇번 듣다보면 그런가보다 한다. 그래서 언젠가 아는 pd에게 그 작가 이야기를 했다. 이후 그 작가는 방송사를 옮겨 여러편의 히트작을 썼고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록 나는 그리 되지 못했지만 나의 '감'만은 가히 천재적이었달까...



흔한 말이고 때로는 답답증을 유발하는 말이지만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난 절반쯤의 소망은 이미 이루었다. 몇편의 글을 발표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내 고유값을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아직 물음표다. 하지만 이제 어느정도 삶의 속성을 알기에 조급증 따위는 없다. 묵묵히 내 길을 가다보면 '그 시간'은 온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평가받는 그 때가.


그러니 기다리면 된다. 그거 하나를 못하는가.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 긴 터널을 이미 지나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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