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가지치기
몸에 이상이 좀 와서 오랜만에 종합병원에 갔다왔다. 점심무렵에 나가 다 저녁에 들어왔으니 한 3-4시간을 거기서 보낸거 같다. 그러다보니 어지럽고 속도 더부룩하고....말그대로 병의 원천이돼서 병원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내가 간 구강내과는 당일접수도 가능하다고 해서 널널하려니 하고 갔다가 대기실에 빈 자리가 없는걸 보고는 혀를 찼다. 동일부위, 비슷한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다니....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20여분 예진이란걸 받고는 검사, 그리고 다시 대기, 그렇게 한참 있다 주치의 얼굴 5분 보기. 처방전 받아 나오는데 바깥엔 석양이 내리고. 아프다는건 참 피곤한 일이구나, 새함 느껴본 하루였다.
나역시 대다수의 현대인처럼 건강염려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병적인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증세가 잘 낫지 않고 계속 오래 가는 경우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성격이 좀 급한탓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다보면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되고 그러면 공포, 피곤함이 몰려와 결국에는 큰 병원을 찾게 된다. 차라리 돈을 쓰는게 낫지 더이상의 마음고생은 '노'하는 심정이 된다.
오늘 s대 구강내과는 혀, 악관절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넘쳐났는데 연령이 높을수록, 동네 병원, 한의원을 전전한 경우가 많음을 알았다. 동네병원에도 물론 명의가 있고 한의학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저정도라면 애초에 여길 왔겠다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처음엔 입이 안벌어지고 다음엔 턱이 빠지고 그러다 목까지 아프고, 두통까지...그걸 어떻게 참고 동네진료를 고집했을까, 조금은 답답했다. 동네병원에서 ct까지 찍었는데 이상없대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가 사는 동네는 빈촌이라 그런지 ct를 갖춘 의원이 아예 엾는데.
물론 대학병원,종합병원도 오진율이 높은건 알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거면 그래도 처음에 큰 병원을 찾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으면 원인도 처치도 빨랐을걸...
나는 약골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그러다보니 병원문턱 넘는게 그리 두렵거나 하진 않다. 그만큼 병원, 의사들에게 거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것도 사실이고 혼자 끙끙 앓으며 병을 키우는 일 따위는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곪았음 터뜨려야하고 새살이 돋길 기다려야 한다. 그게 사는 이치다.
이처럼 우리 사는 일도 크게 다를바 없는듯싶다. 에둘러 빙둘러 올 필요없는 , 직진하면 빠른 길들을 우린 얼마나 오랫동안 시간, 체력, 마음을 다쳐가며 우회하는가. 이건 남녀사이에도, 동성간에도 이성간에도 아니 모든 관계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 어떤 관계든 초기에 그들이 ,내가, 서로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는게 있다. 그것은 보통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두가지로 나뉜다. 그렇게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면 관계의 오류따위는 일어나지 않거늘, 우린 어떻게든 그걸 나 좋은식으로 해석하려한다. 그러다보면 일방적으로 내가 피해를 보는 기만적 관계가 형성된다.뒤늦게 그 관계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 상대는 이미 나를 조종하는 자리에 올라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를 착취하고 짓밟고 그러다 버린다.
왜 내삶을, 내 운명을 타인에게 맡기는가.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도 가능하다면 내가 선택하고싶다. 그것은 평생을 의지박약하게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싸구려 희망에, 당장 그 관계를 끊지 못해 질질 끌다 온갖 상처를 다 받고 심신이 다 털린 뒤에야 뒤늦게 그관계의 끈을 놓는, 다시말해 버려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식으로 자기자신을 스스로 평가절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방기하는데 그 누가 나를 존중해준다는 말인가.
오래 끌면 병이 될 관계들은 초반에 그 징후가 느껴진다. 그런 관계들은 애초에 잘라내야 한다. 인간도 생명체라면 골라내고 솎아내는 과정이 필요한것이다. 그당시엔 죽을것 같이 고통스러워도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원한다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있어야 타인도 세상도 존재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는것이다. 뭐할러 내게 위해를 가하고 이용하려드는 상대를 곁에 두는가. 쳐내자 과감히. 그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