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더티걸>

그래도 할건 한다.

by 박순영

누군가, 넌 현모양처는 애초에 글렀어,라며 나를 밀어낸 사람이 있다. 난 어릴적부터 아버지가 부재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자라서 그런지 가부장적 분위기나 그런식의 언급을 몹시 싫어한다. 남자를 위해, 남자에게 희생하는, 뭐 그런 개념이 아주 희박한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남자라는 존재들은 어지간히도 변하지 않는것 같다. 집안일에 충실하고 내조를 잘하는 다소곳한. 심지어는 맞벌이 상황에서도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그런걸 종종 요구한다.


하여튼 내 경우는 맞벌이도 아니고 따로 남자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집안일,고 내조 같은 개념이 아주 희박하다. 내조야 남자가 생겨봐야 아는거라고 뒤로 미루지만 집안일, 이른바 청소 정리 음식만들기 이런것들에 아주 젬병이라는 얘기다.


언젠가 남사친이 와서는 화장실을 보고는 혀를 차며 대신 세정제로 청소를 해주고 간 적이 있다. 야, 너 이러고 살면 시집 못가,하면서.




안그래도 절벽인 주택시장에 매매랍시고 집을 내놓고는 집 청소 , 정리 한번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보니 창고방?은 그야말로 발을 딛을 틈도 없고 나의 태만이 제일 드러나는 욕실은 여기저기 묵은때가 덕지덕지 묻어 설령 사려고 마음 먹고 온 사람도 포기하게 만드는 비주얼이다. 해서 오늘 나는 작심하고 세정제를 뿌려가며 욕실청소를 좀 했다. 맨손으로 하다보니 세정제가 손에 묻어 지금도 따끔거린다.


예전 엄마가 살아계실땐 하루건너 한번씩 앉은걸음으로 온집안을 쓸고닦고 하셨다. 그때 난 공부중이거나 바깥 일을 할때여서 그런 엄마가 '오죽 할일 없으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타박하고 구박하고 그랬다. 그런데 그 엄마가 가신 지 이제 7년차가 되고 보니 그때 엄마가 얼마나 집을 가꾸는데 정성을 기울였는지를 새삼 느낀다. 노인들이 자주 하는 말중에 '여자와 집은 가꾸기 나름이다'라는 말이있다. 이문장에서 '여자'는 빼기로 하자. 젠더관련 발언은 예민하므로..


어쨌든 난 이런 부분에서 낙제생이라 때는 세월의 흔적이다, 뭐 이러고 사는데...나야 내 집이니 지저분하고 좀 거시기해도 봐주지만 생판 남이 그럴리가 없다.



잠깐 욕조와 벽타일을 닦았는데도 허리가 묵지근하다. 이제는 한물 간 논쟁이지만 주부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한다 안한다,가 화두가 된적이 있다. 내가 느끼는 이 묵지근하고 피곤한 느낌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한다. 결점 투성이 내가 모처럼 '이쁜짓'했다고 이렇게 떠벌리는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만 그만큼 내자신이 대견하다는 얘기다. 이따 오후에는 산처럼 짐들이 쌓여있는 창고방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생각이다. 이러고나면 왠지 집이 나갈듯싶다. 물론 100% 예감이지만.


거의 평생을 엄마와 둘이 30평대에 살다보니 , 그때는 가구도 거의 없었다, 왠지 공허하고 집이 쓸데없이 크게 느껴겨 이곳으로 이사할때는 일부러 20평대로 줄인건데, 그나마 엄마가 가시고나니 이집도 내게는 이제 크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기본 가구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옮길 곳은 18평이나 20평정도가 좋을텐데, 해서 몇군데 찜해뒀는데 어제 보니 하루 이틀 사이에 4000,5000 가격을 올려버린게 아닌가. 하긴, 초역세권인데도 어쩐지 싸다, 하긴 했다. 그래서 다른 대안을 또 찾아야 하게 됐다.





하지만 어디가 되든 새로이 내집이 생기면 내생에 최초의 나만의 공간이므로 나는 심혈을 기울여 가꿀려고한다. 최소 3일에한번은 청소기도 돌리고 공간이 남으면 이쁜 더블침대를 놔서 손님이나 친구들이 오면 재우기도 할 생각이다.


어느날인가, 남사친이 아닌 진짜 남친이 와서 '에이,, 이럼 결혼안한다!'하고는 두팔 걷어부치고 욕실이며 거실바닥을 박박 닦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와 함께 나는 비눗물에 미끄러지며 열심히 바닥이며 타일 때를 벗겨내리라. 그러다 부둥켜 안고 뒹굴기도 하고 서로의 코끝에 비누도 묻혀가며...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