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하도 마구잡이식으로 읽다보니 '지연된 애도'라는 단어를 정신분석인지 심리학에선지 아님 엉뚱한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요즘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사건이나 사고가 터졌을 당시엔 무감하게 반응하다 뒤늦게 나타나는 이상증세, 고통, 애도의 심리를 뜻한다.
어쩐지 무탈하게 잘 지나간다, 잘 극복해냈다, 하는 일도 뒤탈이 나기 마련인데 친족의 죽음, 실연, 금간 우정, 사기, 등등이 그에 속할 것이다. 분명 통탄하고 곡을 하고 가슴을 치며 아파하고 뒹굴어야 하는 그 시점엔 무감각하고 냉담하게 지나가다 몇개월후 길게는 수년후 그 감정이 되살아 뒤늦게 고통받는 일이 다반사다.
왜 그 당시에 적당한 리액션을 하지 않았을까, 혹은 못했을까, 하다보면 답이 나오는데 그것은 자존감, 자기 방어, 혹은 그보다 우선하고 절박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일수 있다. 그런데 우린 '일정 텀'이 지난다음엔 꼭 그때를 복기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당하고 아무말도 못했을까...등등...
영어로 하면 회한 비슷한 표현이 될까? should have pp. could have pp, shouldn' t have pp.
온통 네거티브한 세상에서 우린 우리의 감정조차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꽁꽁 싸매고 사는건 아닐까. 제때 배설하고 분출되지 못한 감정은 우리의 내면을 잠식한다.
요즘 와서, 몇달전 일이 계속 머리를 맴돌아 두통이며 그밖의 신체적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루30- 40분 걷기가 다인데도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누워있거나 힘없이 늘어져있는 일이 다반사다.
이일을 터뜨리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해야 했고 그래서 했고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그런데 지난 겨울 그 참사속에서도 난 이상하다 싶을정도로 정상적으로 지냈다. 견뎌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리라...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상대방의 실책에 기인한 결과였기에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도 놀랄만큼 냉정하고 냉담하고 무감하게 지난 몇달을 보냈다. 그런 내가 대견했고 성숙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겨울가고 봄오고 그러면서 나의 내면도 조금씩 허물어지는걸 느낀다. 되돌릴수 없는 그 일을 왜 난 결단코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해버린걸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도, 그럴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방법, 조금은 유한 방법도 있었을텐데, 일말의 가능성은 열어놓는건데, 하는 그런 미련같은게... 그러면서 나는 뒤늦은 회한, 지연된 애도에 휘말려 조금씩 말라죽어가는 느낌이다...일상은 황폐하고 생존은 버겁고 낯설다.
물론 이 시간도 지나간다는걸 나는 잘 안다. 이 시간을 벗어나 자유롭고 건강해지는 그런 시기가 도래할것을 안다. 하지만 늘 어려운 건 현재고 지금이고 당장 이순간이 아닌가...
조금은 얄밉고 원망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지난겨울, 모진 바람 부는 거리에서조차 당당하던 내가 꽃이 피려하니, 언땅이 녹으려하니 스러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곧 훈향의 시간인데.
이렇게 영원의 길을 갈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이 시간은 지나가리라는 두가지 생각 사이에서 힘들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어릿광대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