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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이별미학>

다시 열리는 문

by 박순영

매주 월요일이면 가는 병원이 있는데 어느날 가보니 병원문이 잠겨 있고 셔터까지 내려있었다 .이상하다? 하고는 열리리지도 않는 문을 흔들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다 옆건물을 봤더니 똑같이 문이 잠겨 있어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는 주위를 서성이다 보니 끝모를 불안까지 닥쳐왔다. 무슨 긴급사태라도 생겼나? 나만 모르는 세상의 변화라도 일어난건가? 하고 두리번거리다 저만치 오는 중년의 남자에게, 이상하네요 , 문이 닫혀있어요, 했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게 아닌가. 그 눈길이 심상치 않아 나는 한번 더 잠긴문을 흔들어보고 그만 발길을 돌리려는데, 오늘 일요일이잖아요, 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것처럼 얼얼해지며 수치심과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아마 그전날, 친구가 산에 가자고 와서 요일을 헷갈린듯 하다. 친구와 함께 한 풍경이 꼭 일요일 같았다. 느슨한 행인들의 발걸음, 나른한 햇살...요일을 헷갈린다거나 날짜를 모른다거나, 그렇게 시작되기도한다는게 기억질환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어 잠시나마 아득해지는 그런 경험이었따.

일요일임을 알려준 그 남자에게 황망히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난 달려오는 빈택시를 잡아타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차를 타고 오는데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라는 싯구가 떠올랐다. 그야말로 휴일의 빈거리를 헤매며 잠긴 문앞을 서성이며 열리지도 않는 그문들을 열려하던 내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한가지 더, 그걸로 끝나야했거늘 병원 톡에 문이 안열린다는 글까지 남겼으니...

그다음날 나를 본 간호사는 고맙게도 빙긋이 웃고 그일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게 문이 닫혀있었으니 사태는 그쯤에서 일단락됐다는 생각도 한편 든다. 만약 열렸더라면 난 더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으리라. 마치 우리가 도어스코프를 확인하지 않고 현관을 열어주었을때 마주하게 되는 불청객처럼 굴었으리라. 잡상인, 포교자들,기타...

그래서 문단속은 중요한데 가끔은 방심해서 확인도 안하고 덜컥 열어줄때가 있다. 그러면 이런저런 난감한 일이 발생한다. 때로는 나는 열어줄 마음이 없는데도 마구잡이식으로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내 삶에 불쑥 들어와서는 마구 휘젓고 다니다 어느날 간다는 인사도없이 가버린다. 핏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구절처럼 "일을 뒤죽박죽 만들어버리고 뒷처리는 남에게 떠넘기고 내빼는 인간들'처럼.



하지만 남만 탓할게 아니다. 나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다시 인연의 끈을 잇는다 한들 그게 온전히 이어질리도 없다.


세상에 많이 다칠수록 내 안의 문은 더더욱 견고하게 빗장을 지른다. 더는 내 공간을 내어주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저마다 그렇게 걸어잠근 자기만의 문들이 있으리라. 그러니 그 공간에 들어가고자 하면 최대한 정중히 상대의 의향을 묻는과정이 필요하고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진 절대 발을 들이면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설령 들어오라 해도 상대가 혹시 마지못해 문을 열어준건 아닌가 찬찬이 살필 필요가 있다. 조금이라도 상대가 피곤해하면 곧바로 되돌아나와야 할것이다.



아무리 아쉽고, 자신의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다 해도, 미련이 남아도, 중간에 연의 끈을 놓아야 할때가 있다 상대가 원한다면.

그러니 잘 만나는 것만큼이나 잘 헤어지는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면 어느날 기적처럼 닫힌문은 다시 열릴수도 있다.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여수旅愁3’ 전문),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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