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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ATM의 반란>

최소한의 힘과 노력을 요하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by 박순영

근래 돈을 인출할 일이 있어 집앞 atm에 가서 줄을 섰다. 두개의 인출기가 있었는데 하나는 '디지털 약자용'라고 써있어 굳이 내가 저걸? 학고는 다른 기계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돼서 카드를 넣고 버튼을 누르는데 안 눌리는게 아닌가? 엥? 하고는 여러번을 다시 해봐도 안됐다. 그러자 뒤에서 짜증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번을 양보하다 마지막이다, 하고는 눌렀지만 역시 두어번 먹고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지질 않았다. 해서, 뒷사람에게 도움을 요청, 그가 누르자 단번에 됐다. 해서 그에게 비번까지 알려주고 인출한 경험이 있다.



그동안 폰이니 디지털 기계에 익숙해져서 누르는 힘이 약해졌나,해서 다음날인가 다시 가서 한번 눌러봤지만 역시 안눌렸다. 다른 사람이 하면 전날처럼 단번에 눌리는걸 보며 난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해서 옆의 '디지털 약자'라고 써놓은 기계를 눌렀더니 단번에 눌려졌다. 그건 폰처럼 그냥 손가락 인식만 하면 작동이 됐다. 대신 메뉴가 단순해서 복잡한걸 할때는 영낙없이 그 옆의 '무서운놈'을 사용해야 한다.



지금 또 돈을 인출해야 할이 생기자 덜컥 겁부터 난다.약자용 기계가 고장났음 어쩌나, 기타...

남들도 다 폰이니 디지털 기계를 다룰텐데, 그렇다면 누르는 감각이나 힘도 비슷할텐데 왜 나만 안될까, 하는 의혹이 계속된다. 아무튼 난 여태 겁을 먹고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것이다.


자율주행을 하는 차가 나온다면 얼마 가지않아 인간은 운전하는 법을 잊으리라는게 내 생각이다 이런 논리라면. 디지털의 편리하고 나이스함이야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인간의 힘이 들어가야 할부분을 죄다 소프트화해버려서 어느정도의 힘을 써야하는지 , 요령을 부려야 하는지를 잊게 하는거 같다.



살짝 터치만 해도 작동하는 디지털의 세계에선 이런 저런 해프닝도 일어나는거 같다. 헤어진 사람의 톡을 들여다보다 무심코 건드려 톡을 보낸다든가, 삭제말아야 할걸 삭제한다든가...

내가 처음 컴퓨터를 사용할땐 키보드를 어찌나 힘주어 눌렀는지 멀리있는 사람도 다 그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잠깐 드라마 보조작가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자판을 두드리면, "그러다 망가져. 살살해"라는 메인작가의 농반 진담반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였다.


타자기.jpg



아무튼 이래서 난atm 에 대한 노이로제가 생겨나 안그래도 숱한 나의 신경질환에 하나를 더 한 셈이다. 나의 상상은 멀리도 나아가서 이사하는 a시의 atm들이 죄다 저모양이면 난 그곳에선 창구 인출 외엔 못하는거 아냐? 하는 불안에까지 시달린다. 이러다 atm꿈까지 질 지경이다.

샤프하고 심플하고 인간의 노력이 덜 들어간다 해서 다 좋은것만은 아니다. 최소한의 질량과 힘, 노력이 기울여지는 아날로그가 편한 이유가 이래서 있는것 같다.



아무튼, 난 돈 2만원 인출한다고 또 덜덜떨면서 집앞 atm으로 갈것이다. 약자용 기계가 고장이라도 났음 나는 또다른 atm을 찾아 헤매야 한다. 어쩌다 내 손가락힘이 조절불능이 됐을까, 그것 다 디지털이 가져온 폐해려니한다... 누가 아는가, 이제 atm전부가 약자용으로 대체될지. 그런데 그 명칭에 모순이있다. '디지털 약자용'이 아닌' 디지털 적응자'라고 바꿔야 하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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