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대학은 교정이 정말 조막만했다. 그래선지 유난히 cc가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것도 롱런하는 커플이 많았는데...
그중 한 커플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군대도 못갈 거 같이 삐쩍 말라 책만 파던 a와 야간수업을 듣던 b가 그들이고 졸업하는대로 결혼하겠지,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 둘이 잠깐 헤어진 적이 있고 나는 b와 학교앞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신적이 있다. "남친 소개해줄까?"했더니 b는 마지못해 "있어 누구?"하는 거였다. 그 정도면 감을 잡고 진중하니 있었어야 하거늘 나는 기어코 타대학 친구를 통해 누군가를 소개시켜주었다. 결론은 물론 잘 안됐지만.
그런데 민망하게도 헤어진 지 보름인가 후에 a와 b는 다시 만났고 어느날 a가 내게 다가와 "소개팅 해줬다며?"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으...ㅇ...
어느정도 가까워지면 남의 시선 아랑곳없이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하는게 목격될만도 한데 그 둘은 늘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다녔고 그럼 난 농담처럼 "니들 언제 손 잡냐?"하면서 놀려대곤 했다.그러면 b의 얼굴이 수줍음에 발갛게 되곤 했다.
그러다 졸업이 다가오고 b는 j항공에 합격해 곧바로 사회로 나갔고 a는 대학원 진학을 해 공부를 계속했다. 졸업후엔 나도 내 생활이란게 있어 그들과 멀어지고 잊고 지내던 차에 우연히 학교 갈 일이 있어 조교로 있는 a를 찾아봤더니 그는 오랫만이라며 반기면서 나를 맞아주었다. b하곤 언제 결혼해? 라고 하자, 그는 멋적어하며, 헤어졌어 우리..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붙어 다녔음 결혼해야지,라고 했더니,, 그러게..라며 민망해 했다.
그렇게 2,3년이 흐른 어느날 지하철을 타려는데 b가 저만치 승강장에 서 있는게 보였다. 난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고 b도 한눈에 나를 기억해냈다. b는 그날이 일요일임에도 특근이라며 이제 퇴근한다고 했다. 나는 무심코 "너 결혼 안해?"물었더니, 안그래도 그 다음달에 잡혀있다고. 같은 j항공직원이고 홍보사진에도 나와있다며 슬쩍 자랑을 하는게 아닌가...결국 a와는 그렇게 끝난거구나,조금은 허탈했다.
그리고는 또 몇년이 흐른 어느날,a가 안부전화를 해와 나는 그를 시내에서 만났다. 하필 비가 오는 날인데 그가 우산없이 나와 내 우산을 같이 쓰고 인사동 어딘가를 걸었다. 안개비였다. 아득한 그리움이 소환되는 ...
그러다 문득 우리는 b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또다른 동창 c의 와이프가 b와 같은 항공사를 다니고 해서 건너건너 그녀의 소식을 듣고 있던 나는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적이 있다. a는 모든걸 알고 있노라 했다 .그리고는 이어진 침묵...
우린 인사동 어느 찻집에 들어가 마주 앉아 전통차를 마셨는데 a가 문득 "내 여잔줄 알았는데.."라고 했다. 순간 b를 언급한다는걸 깨닫고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니들 헤어졌었잖아.."라고 했더니, 그는 "그래도 내 여자라고 생각했어..돌아올줄 알았거든"이라며 시선을 유리문 밖으로 던졌다. 그를 따라 나도 밖을 보니 들어설땐 몰랐는데 작은 화분 하나가 유리문 옆에서 비를 맞고 있는게 보였다. 난 무심코 "추억같아"라고 했다.
그말에 a는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멋있다. 다시 말해봐...
뭐. 추억같다는?
응...
그뒤로 a는 불어과 여학생과 결혼해 내리 아들만 둘을 놓고 지금은 지방대 영문과 교수로 지내고 있다.
학교가 지방에 있는것도 아닌데 막상 졸업하고나니 갈일이 별로 없어 정말 어쩌다 가보기라도 하면 많이도 변해있는걸 확인한다. 내가 다닐때는 곧잘 연합집회라는걸 해서 타대학에서 죄다 우리학교로 몰려와 시위를 했는데 그때마다 전경과 대처하던 모습, 그덕에? 늘 허물어지던 가여운 학교 담벼락....좀 크고 돈 많은 부자학교에서 하지들 왜 하필,이란 생각을 자주했던 것 같다.
그 작은 교정에서 이런저런 사랑의 꽃들이 피었다 졌고 지금도 아마 그러리라...
떠난 연인을 오랫동안 "내 여자"로 믿고있는 또다른 a들이 아직도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나도 이제 옛날 사람이 돼서 충분히 그 정서를 이해하지만, 어쨌든 a와 b 둘다 잘 사는걸로 결말이 나서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은 허물고 건물이 들어선 자그마한 동산이 학교안에 있었다. 갑자기 비라도 만나면 일제히 그곳으로 비를 피하러 달려가곤 하던 그 젊은날이 어떤때는 아득한 꿈같기만 하다...
안개비속에 촉촉히 젖어가던 인사동 그 찻집앞 작은 화분도 그럼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