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때 쉬어간다?

잊었는지 포기했는지...

by 박순영

근래들어 계속 컨디션이 안좋아 매일 하던 운동도 안하고 오늘도 아침에 잠깐 책 보고 브런치 올리고는 내내 침대에 처박혀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게으른 요즘....

그러나 한편 이런 휴식의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다.


힘이 넘치는 날은 무언가를 해야 할거 같고 뒤틀린 관계들을 복원해야 할거 같고 할일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몸이 안좋고 기분이 다운되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오늘은 침대에 종일 누워 이달에도 줄지 않은 카드비 걱정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좀 줄만 하고 아껴쓸라치면 꼭 일이 터진다. 얼마전 친구가 집 근처 둘렛길을 돌자고 한게 화근이 돼서 오른쪽 엄지 발가락을 다쳤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뒷부분 근육에 염증이 생겨 벌겋게 되고 퉁퉁 부어오르기까지 했다. 자연히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의사는 오래 걷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라며 이젠 오래 걷기를 하지 말라고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붓기 가라앉히는 냉치료를 처방해 한번 갈때마다 돈 3만원이 날아갔다. 그렇게 며칠 가다보니 큰부담으로 다가와 의사에게 다시 이야기해 일반 치료로 바꾸긴 했지만..

난 보험이라는걸 전혀 들지 않고 산다. 그 흔한 실비보험 조차 들지 않아 이럴때 난감하다. 암튼 이리 시작된 질병사는 그후로도 계속돼 이번달도 카드비는 줄지 않았다. 지난 겨울은 연애에 쓰기나 했지 이건 원...솔로가 된 뒤에도 줄지않는 카드비는 알라딘의 램프같기만 하다.



그렇게 카드비 고민은 다가올 이사걱정으로 바톤을 넘겼다. 재건축 말이 도는 그곳으로 꼭 가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남들은 재건축이 호재라느니 하지만 난 부잡스럽고 산만한걸 싫어해서 그저 안정적으로한 10년 조용히 살만한 곳을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마치 호재나 돈을 노리고 그곳에 집을 구하는 꼴이 돼버린 게 여간 존심상하는게 아니다.그렇다고 돈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그곳 외곽에 집을 얻으려고 했었다. 같이 살 사람이 번잡한건 싫다고 해서. 하지만 이젠 나 홀로 살 집을 구하다보니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모든게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말이 재건축이지 최소 30년 된 그곳 아파트들 후기를 읽다보면 정말 가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때가 많다. 구축이라 비가 오면 빗물이 새고 수도 틀면 녹물이 나오고...음,쥐는 안나올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지금 사는 이 곳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지금 이곳이 뭐 어떠랴 싶기도 하다...



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했는데 난 드러누우면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체질인가보다. 내 자신에게 집중한다는건 그만큼 내 안으로 침잠하는 일이고 그곳엔 의뭉스럽게 똬리를 틀고 있는 풀지 못한 숙제가 가득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플때 쉬는 사람은 그 내공이 대단하다 생각된다. 아픔자체가 스트레스건만 어떻게 그걸 다스리고 잡사에서 벗어나 평온을 유지하는지...

'잊었는지 포기했는지'처럼 나도 그렇게 잠깐이나마 휴식의 시간을 갖고싶은데, 내친김에 말이다.


이제 노트북을 덮고 조명도 조도를 낮추고 TV도 켜지 말아야지, 한다. 한 사나흘 책도 멀리해야지 다짐한다. 그리고 털건 털고 버릴건 버리자, 결심해본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아플수록 다운될수록 그리운건 더 그리워지고 보고싶은 이는 더욱더 보고 싶다. 날 떠난 모든이들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마지막 표정, 그들의 말, 그 목소리들이 그립기만 하다.


그래도 한번 더 노력해보기로 한다.

아플땐 쉬자. 수면제를 먹고서라도 강제로 잠들자.

보들레르가 끊임없이 취하라고 했듯이 그렇게 잠에 취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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