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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린 비

by 박순영

요즘 산발적이나마 비가 자주 오다보니 이 영화가 떠올랐다. 어릴때 봤던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서 검색해보았다. 1974년 이장호 감독작품으로 나와있다. 영화내용은 기억속에서 뒤죽박죽이지만 중성적 보이스의 윤형주가 부른 동명의 ost는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는걸로 안다.

나도 예전에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으면 종종 이 노래를 부른 기억이 있다.


내용이 가물거려 찾아봤더니 이복형제가 한여자를 놓고 벌이는 애정갈등, 뭐 그런 얘기다. 난 최인호의 통속성을 높이 평가한다. 인생은 통속하므로. 통속에 능통한 작가가 진정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도 한다. 물론 최인호가 허구한날 돈되는 것만 쓴건 아니지만...


영화도 좋았지만 고혹적 보이스의 윤형주가 부른 ost는 너무나 감미로워 슬플 지경이다. 난 특히 3절 가사를 좋아한다.


"조그만 길가 꽃잎이 우산없이 비를 맞더니/지난밤 깊은 꿈속에 활짝 피었네

밤새워 창을 두드린 간절한 나의 소리여/사랑의 비야 적셔다오 사랑의 비야 적셔다오"


난 야간대학원 문학과에 잠시 적을 두었다가 학교를 옮기며서 문화로 전공을 바꾸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학과정보나 내용이 '뭘 공부하는지 딱히 감이 오지 않아"만만한 느낌에 지원했고 그렇게 나의 문화공부는 시작되었다. 학제간 과목이라 각기 다른 과 교수들이 강의를 하는 형태였고 태생적으로 잡식성 기질이 있는 내게는 딱 좋은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시간은 흘러갔고 난 박사과정 진학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장호감독/최인호 원작/ 어제 내린비 (1974)



그러나 후반 논문학기가 다가올 즈음, 나도모르게 지도교수가 바뀌어있고 교수들간의 알력다툼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말려들어 난 혼돈속에 간신히 논문을 썼고 상처뿐인 졸업장을 받았다. 박사는 비교문학문화로 할것까지 다 정해놨는데 포기했고 책을 놓고 나자 밀려드는 공허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방황을 해야 했다.

그래도 학위가 결정나는 날, 축하겸 위로주라고 학과생 몇이 내게 술을 사주었고 노래방까지 갔다. 마침 비온뒤라 날은 적당히 쌀쌀했고 전작이 있어 정신은 몽롱한 채 우린 그렇게 골목길의 단골 노래방으로 향했고나는 대학원생활과 청춘을 마감하는 의미로 '어제 내린 비'를 불렀다. 그렇게 내 젊은날은 아듀를 고했다.


(5) 윤형주 - 어제내린 비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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