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정신과약을 먹어야 잠드는데 언제 두번을 먹었는지 오늘치가 없는걸 확인하고 난감해하고 있다. 그걸 안 먹으면 잠은 커녕 악몽에 시달리기때문이다.
일종의 허가받은 마약인지라 한두번만 먹어도 뇌를 새로 세팅해서 약이 들어와야만 잠을 제대로 자게 해준다. 언젠가 약 안먹고 버틴다고 하다가 악몽을 내리 꿔서 포기한 적이 있다.
어느 절벽에선가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기괴한 곡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그런 꿈을.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그런 꿈까지 꿔대야 하는 그 고통을 겪지 않은 이는 알 수가 없다.
해서 누구는, 강제로 약을 끊었다가 통증이 혀로 가서 몇년째 고생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 나는 악몽 예약을 해둔 셈인데 평일이면 지금이라도 가서 약을 타련만...
그리고 정신과, 하면 상담이 무엇보다 내키지 않는다. 어리지도 않은데 시시콜콜 인생사를 털어놔야 한다는게. 해서 시치미 뚝 떼는 일도 많다. 속은 상처로 문드러져도. 상담이란게 뭐 그리 효과가 있나,싶은게 나의 생각인데 그놈의 약때문에 끊지를 못하는 것이다.
수십년째 무슨 우울증이라는 말인가. 내가 자살을 시도했나, 반사회적 범죄를 저질렀나, 아니면 타인에게 트라우마를 줬는가...
약처방도 일종의 상술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정신과를 가보라는 얘기를 나도 곧잘 한다. 하지만 한두번으로 그치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도 내성이 생기면 힘들어지듯이, 약도 마찬가지이므로.
그래도 약통을 살펴보니, 잠깐 졸 정도의 여분의 약이 있어 그걸로 오늘밤을 버텨보려 한다. 그러다보면 한두시간은 잠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지만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해서, 피곤할 오늘밤을 대신해 낮시간을 최대한 즐겨보려한다.
마치 집행을 하루 앞둔 사형수가 된 기분으로, 라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