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바지 입지 마^^

by 박순영

어젯밤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친구는 지병인 치질이 도졌다고 시무룩해했다.

"야, 기저귀 해"라고 놀려대자, "혹시 항문 아니고 장에서 나오는거면?"하고 친구는 침소봉대를 하는게 아닌가.


장에서 나온다고 죄다 암이 아니거늘, 해서 나는 좀더 놀려대기로 했다.

"그러니까 병원 가봐야지. 너, 내시경 언제 해봤냐?"

그러자 친구는 한 4년 됐다며 정말 해봐야겠다는 얘기를...


"옅은색 바지는 입지마라. 혹시나 길거리에서 치질 터지면.."

"그래서 깜장 바지만 입는다"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받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이성간에도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눌수 있다는게.

애인이었다면 가당키나 한가. 치질의 'ㅊ'자도 조심스러운걸...


한동안 심사가 뒤틀리고 죄다 보기싫고 해서 오래된 친구들을 마구잡이식으로 끊어내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 주소록엔 손 꼽을 정도만 남았는데 그나마도 관리할 생각을 안한다. 관리,라는 말이 어감이 좀 그렇지만 무엇이든 조금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날 떠나지 않는 그들이 징글징글 하면서도 한편 고맙다.


하루하루를 매직으로 만들어주는 사랑은 비록 지금 부재해도 이렇게 그 자리를 우정이 대체해주니 그나름 땡큐다.


해서 그 친구에게 성인용 기저귀나 여성용품을 좀 보내줄까 생각한다. 그리고 '장에서 나오는 피 아닐까?'따위의 겁은 그만 주려고 한다.



친구야, 항문외과 가봐라 빨리..ㅋ


그런데, 치질이란게 난치여서 한번 생기면 이게 완치가 안된다고 한다. 늘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술담배를 절제하고 뭐 그래야 한다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한번은 치질로 수술까지 한 친구가 있었는데, 하반신 마취를 해서 다리에 감각이 없다며 투덜댔다. 해서,, 난 또 겁을 주었다. '그러다 너 못걷는거 아냐?'


친구란...


연인이 부재하는 동안, 어떻게든 내 허전한 생을 비집고 들어와 정신을 쏙 빼놓고는 같이 깔깔거려주는 그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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