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에서

by 박순영

어제 아침부터 불쾌한 일을 당해 기분이 다운돼있던 차에 친구가 통인시장에서 칼국수나 먹자는 전화가 와서 귀찮아 더워서,라고 거절했다가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 해결될 일도 아니고 해서 결국 만날 약속을 했다.


집앞에 바로 광화문행 버스가 있고 나가자마자 오길래 집어타고 20분만에 도착, 친구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전통시장, 하면 뻥튀기가 어딘가에 있을거라는 불안감에 휙휙 둘러봐도 보이지 않아 난 그제야 안심했고 국숫집은 입구에서 얼마 안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서 우리는 칼국수 2인분을 시켰고 아침에 내 심사를 틀어버린 '그 일'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애기했더니 친구는다 듣고나서 '야, 털어버려'라고 하는것이다.

하기사, 이 나이에 딱히 마음에 둘 일도 아니고 해서 그래, 일단 나왔으니 즐겨보자,라는 마음으로 칼국수를 먹고 난 다음, 조금 올라가면 계곡에 카페가 즐비하다고 해서 친구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갔다.


하지만 다 먹고나자 기분은 또다시 다운돼서 계곡이고뭐고 다 귀찮아져 아무데나 들어가자고 친구의 팔을 잡아끌었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치 '전쟁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빈티지 인테리어 2층 까페를 찿았다.후덕한 주인장에게 코코아와 미숫가루를 주문하고 우린 2층에 올라갔다. 그리고나니 또 자연스레 내 신세한탄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친구는 애써 표정관리를 해가며 지겨워하지 않고 중간중간 어드바이스며 자기 생각을 말해주었다. 그러더니, 나, 잠깐 일해도 되지? 하고는 가져온 노트북을 펼치고 업무를 봤고 나는 창밖의 인왕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저렇게 심지 굳게 수백, 수천년 자기를 보존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리 흔들릴까,라는 생각이 들며 내 자신이 못나보였다.



그깟 사람이 내는 스크래치야 거의 매일 받는 일이건만 무에 그리 큰일이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까지 귀가 아프도록 내 신세한탄을 해댈 필요가....



그러고 있는데 주문한 음료가 나와 우리는 화제를 돌려 사는 이야기, 친구 회사 일, 이사, 따위를 이야기했다. '그 일'을 피핵가자 한결 대화가 가벼워지고 그까짓거,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내몫의 아이스 코코아가 한결 더 맛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어시간의 통인시장에서의 해후를 뒤로하고 우리는 또 기약없이 헤어졌다. 배도 그득하고 편안하게 친구와의 시간을 복기하고 싶어 난 택시를 잡아탔다.

며칠전에, 조만간 광화문에 나가볼거라는 글을 쓴게 떠올랐다. 말처럼 된다드니...하면서 쿡 웃음이 비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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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아침의 불쾌함도 많이 상쇄되고 에이 털자,하는 결론에 이르러 집에 와서는 제법 느긋하게 보냈다. 컴을 하고 브런치글을 올리고 하면서...



영원한 현재라는건 없어서 다 지나간다는것쯤은 알만한 때가 되었고 그런만큼, 일희일비 하는 일은 삼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언젠가는 시장을 거쳐 나있는 그 계곡에 가서 물장구를 치는 시간도 올것을 나는 믿는다. 그렇게 편안해질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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