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님

by 박순영

마음에 도둑이 들면 루틴이 깨지기 십상이다.

오늘만 해도 천변 걷는 날인데 소파에서 내내 개기다 그 시간에 라지 피자를 먹고는 뒹굴뒹굴...

그냥 밤을 맞는다는게 너무 야만스러워 떠밀리듯 다 저녁에 천변에 나갔따.


오전에 비가 꽤 내려서 물이 불어났을 줄 알았고 그걸 보기 위해서 나간 것도 있는데 북청 물장수가 물을 다 퍼갔는지 평일의 고만고만한 수위여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래도 한시간여를 땀을 흘려가며 걷고와서 샤워를 하고 오늘 받은 레몬 탄산수를 들이키니 이제 좀 개운하고 몸도 가벼운 느낌이다.



이렇게 마음에 도둑이 들면 또 하는 일이 전화 주소록을 스크롤하며 어디 전화할 데나 메시지 보낼 데가 없나 살피는 것이다. 그러다 몇년만에 불쑥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깜짝 놀래키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어색함이 문제여서 그렇지...



그리고 또 마음에 도둑이 들면 곧잘 하는 일이 이 모든 힘든시기를 거친 후의 조금은 넉넉하고 풍요로워진 미래의 나를 그려보는게 아닐까?

파리나 뉴욕정도는 옆집 마실 가듯 그렇게 드나들 정도의 여유와 체력,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안그런듯 해도 은근 욕심이 많은 타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에 도둑이 들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길 원하는 것 같다.바람으로, 하늘을 나는 새로, 그리고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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