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웃음 못지어도 괜찮은 나이
제목을 보니 문득 듀스의 노래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나는 50대의 아낙이다.
글에서 종종 자주 툴툴거렸듯이 나는 내 나이가 석연치 않다.
자꾸 시무룩해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라도 바꾸지 않으면 이대로 꺼질 것 같은 깊은 우울감이 두려워 어떻게든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나라는 아이는 웃을 때 치아가 환히 다 보일만큼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였다.
그 웃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만족해했고, 보는 사람마다 내가 웃으면 절로 따라 웃게 된다고 했다.
그랬던 나의 웃음은 술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한창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시기를 좋아했던 꽃다운 20대에 그날도 어김없이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신천역에서 술을 진땅 쌔리붓고 집으로 걸어가던 날, 하필이면 그날 좀 많이 마셨는지, 새로 산 구두에 뒤꿈치가 까이는 것도 모르고 마시던 술이 깨기 시작했는지, 나의 걸음이 팔자로 휘젓지도 않았건만 걷다가 갑자기 넘어졌다.
땅바닥에 철퍼덕하고 입을 맞추었는데 어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나의 한쪽 맨발.
구두는 어디 갔지? 두리번거렸는데 맨홀 뚜껑 뿅뿅뿅 뚫린 구멍에 나의 힐이 박혀있었다.
나의 발이 구두를 벗어나면서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제야 나의 입술에서 흐르는 피가 느껴졌고, 그제야 앞니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술에 취해 아픈 줄도 몰랐던 나는 그다음 날 기절초풍할 정도로 망가진 내 모습을 보았고, 엄마에게는 등짝스매싱과 함께 신세한탄 비스름한 잔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치과를 갔고, 당시 나는 치과위생사였기 때문에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아는 게 더 무서운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만큼 최악의 날은 없었던 듯싶다.
그렇게 나는 예쁘고 하얗던 나의 앞니를 하나 잃었다.
그 후로 나는 그 의치와 잇몸의 경계가 유독 내 눈에만 잘 보여서 웃을 때마다 치아를 훤히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아무도 내 이가 가짜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나는 예전처럼 함박웃음을 짓지 못했다.
그게 세월이 쌓이니 예전에 내가 어떻게 웃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대학시절의 사진을 종종 찾아보곤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 함박웃음을 짓던 나도 나이고, 그때처럼 활짝 웃지 못하는 나도 나인데 나는 자꾸만 지금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닌 것 같을 때가 있다.
웃는 법도 잊었지만 웃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나는 자책을 하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고, 가끔 치아를 다 드러내 보이며 웃는 예쁜 여자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웃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안에 껄무새는 키우지 않기로 한다.(껄무새: 신조어. ~하지 말걸 하고 말하는 앵무새)
다 소용없지 않은가.
술 때문에 그 난리를 겪고 나는 완전히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로 끝나면 그건 그냥 동화책 이야기지.
난 여전히 술을 마신다. 그때처럼 지금도 술을 좋아한다.
술이라는 웬수같은 녀석이랑 미운 정이 들었는진 몰라도 가끔 이야기한다.
"야 이놈아 너 때문에 내가 함박웃음을 잃어버렸잖아~~ 너도 알지? 그때?"
"알지 알지, 너 대자로 뻗었을 때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그 와중에 사람들이 볼까 봐 벌떡 일어나던 니 모습 완전 못 잊지~~"
술잔 속 술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제 나는 50대의 아낙이다.
애써 함박웃음이 아닌 잔잔한 미소가 더 아름다울 나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 50이란 숫자가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는 나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젊었을 때처럼 미니스커트도 하이힐도 신지 못하니 더 신나게 술도 마신다.
넘어져도 이가 깨질 일은 더 이상 없다.
앞니 하나 잃어버렸을 뿐 충치 하나도 없어 치료를 목적으로 치과에 갈 일이 없는 튼튼한 이를 가진
50의 아낙이다.
나는 싫기만 했던 내 나이를 이제 사랑할 수 있게 된 그런 여자이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