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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Mar 25. 2024

50세의 미라클 모닝이란

의식을 치르는 일

오랜만에 억지로가 아닌 저절로 새벽에 눈이 떠졌다.

물론 늘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둔다.

어떤 날은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일어나거나 하지만 대부분의 모든 날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알람을 바로 꺼버리고 잔다.

그럼에도 매일 새벽 5시 알람 맞춰놓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반드시 새벽 기상만큼은 나의 루틴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누워서 오늘 하루를 영화 돌려보듯 쭈욱 돌려보고 내일 새벽에 일어나면 무엇부터 할지를 생각하고 계획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 계획이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잠들곤 한다.

그래서일까. 반드시 일어나야겠다는 다짐이 생기질 않는다.

이래서 계획이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루를 결정할 만큼.

성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나는 뭔가 할 일이 생기지 않으면 기운이 빠진다고나 할까

굳이 일어나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종이다.




나의 첫 미라클 모닝은 지금으로부터 3년? 4년 전이다. 그때 나의 모닝루틴은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하고 홈요가를 했다. 요가가 끝나면 따뜻한 차를 준비해 책상으로 와서 필사나 글쓰기로 새벽시간을 연다.

당시 매일 쓰던 '모닝페이지'를 꼬박 40분간 쓰고,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하고, 손이 아프면 내리 책만 읽기도 하

면서 아들이 깨기 전 새벽 5시부터 8시까지 3시간 동안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누렸다.

그게 좋아서 한동안 새벽기상과 루틴에 빠져있었다. 아주 푸욱~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떠나면서도 요가매트를 들고 갔고, 제주에서도 매일 새벽 나의 루틴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넘도록 했음에도 여전히 나는 알람 없이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다.

이 정도면 습관이 되고도 남을 시간인데 습관이 안된 거라면 뭐가 문제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반 자기 합리화를 하듯 '사람들에게는 자기에게 맞는 미라클 타임이 따로 있다'를 외치며 새벽이 아닌 밤시간이 나에게는 미라클 타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워낙 올빼미였던지라.

성공습관의 하나가 미라클 모닝이라면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은 다 성공했겠네? 싶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새벽루틴을 밤루틴으로 옮겨보았다.

아이가 잠들고 10시 이후부터 오롯한 내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아이가 잠들면 침대를 박차고 나와 다시 책상에 앉기가 싫었다. 귀찮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 굴렁대며 폰을 들여다보는 게 훨씬 쉬운 것이다.

뭐야, 새벽루틴이 밤으로 옮겨지지가 않잖아?,

그렇게 새벽시간 3시간 동안 하던 일들을 새벽에 못 일어나니까 당연히 못하기 시작했다.

개운하게 아침 7-8시까지 잠을 자니 새벽에 일어나는 건 점점 못할 짓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편한가.

그래서 또 생각했다.

'나는 새벽보단 밤이 더 좋은 사람인데, 좋아하는 그 밤시간엔 내가 좋아하는 일조차도 하기 싫어지는구나. 그 시간은 마치 보상을 받는 시간이라도 되는 듯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걸 하게 되는구나. 나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그렇게 보내는 날들은 숙제를 못한 아이처럼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매일 밤마다 누워서 오늘 하지 못한 나의 루틴들 때문에 내가 뭐가 안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고, 내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들인데 하나도 하지 못한 죄책감과 불안함과 조급함만 쌓여갔다.




정말 내가 하루에 꼭 하고 싶은 '그 루틴은 새벽에만 가능한 것일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대체로 새벽기상은 일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시도한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나는 전업주부로서 아들과 남편이 나간 아침 9시부터 아이가 하교하는 4-5시까지는 오롯한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태다. 나는 주로 그 시간에 나의 일이 되어버린 sns 키우기와 의뢰받은 원고들을 쓰고, 하고 싶은 대로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휴식도 취하고 산책도 나간다.

모든 것이 가능한 시간을 이미 확보한 내가 굳이 새벽이나 밤시간을 미라클 타임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어둠이 주는 고요함이었다.

나는 그 고요한 세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낮의 기운과 새벽의 기운과 밤의 기운은 확연히 다름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낮엔 활동적이고 액티비티 한 기운이 뿜뿜 해서 낮시간에 오래 잠을 자거나, 흥청망청 시간을 써버리면 하루를 통으로 날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어둠의 시간은 새벽과 밤, 두 가지인데 그 둘은 뭐가 다른가?

밤의 어둠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단계로 결과적으로 인간은 수면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반면 새벽의 어둠은 자연이 시작되는 시간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같은 어둠이라도 새벽과 밤의 어둠은 다르다.

사람의 몸도 자연의 일부라 이런 자연의 섭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새벽 시간엔 뿜어져 나오는 뇌 호르몬 자체가 밤 시간과 다르며, 이미 나의 몸과 정신은 하루를 기쁨으로 시작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 고요한 어둠이 주는 아늑함과 편안함은 새벽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밝은 에너지. 나는 그것을 얻고 싶었고, 그래서 자꾸만 자꾸만 시도한다.

될 때까지, 그 주기가 들락날락할지언정 끝내 놓거나 포기하지 않은 채.

아침형 인간이 아닐지라도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였던 것이다.




이상한 새벽이다.

오늘처럼 스스로 일어나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쓰면서도 졸리지 않는 이상한 개운함이 넘치는 이상한 새벽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언제나 일어나서  2시간이 지날 즈음이면 책을 읽다가도 졸렸는데 오늘은 어쩜 이렇게도 맑은 정신이란 말인가.


나이 50이 되었어도 나는 저절로 새벽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 물론 옛날 50이었으면 할머니 취급을 받았으니 노인네들의 특성인 새벽에 눈뜨기가 자동으로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의 50은 할머니 축에도 못 끼는 그냥 49세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되었던 일들이 안되기도 하고, 안되던 일이 갑자기 되기도 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그냥 50이 된 아줌마일 뿐이다.

3,40대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자기 합리화도 하고 아직 덜 자란 어른처럼 그렇게 남들이 젊음이라 부르는 그 나이의 사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50을 시작했을 뿐이다.

오늘도 50세인 나는 아침에 제때 일어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아주 작은 일들과 씨름을 하고 오늘은 내가 이겼네 니가 이겼네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은 꼭 해야 하냐고?

그렇다. 꼭 해야 한다.

몽롱한 안개가 걷히면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를 기꺼이 상상하면서, 나의 하루의 안개를 걷는 의식은 역시 새벽에 치르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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