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래닝을 한다
언제나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습관처럼 많은 노트를 만들곤 했다.
기록하는 것은 정리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내 머릿속은 무엇이 그리 복잡했는지 그 속을 정리하고 싶어 기록을 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기록 습관은 초등학교 때 숙제로 쓰는 일기 덕분이다.
그때 일기를 쓰기 싫었는지, 좋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내가 결혼할 때 한 권도 빼지 않고 모아둔 일기장을 엄마가 내게 박스채로 넘겨줄 때 나는 놀랐었다.
그걸 다 모은 엄마도 엄마지만 그렇게 많은 일기를 쓴 나에게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였는지, 그저 숙제라서 성실히 이행한 것뿐인지는 모르겠다.
왠지 그 일기장은 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매일 일기를 쓰다가 점점 가끔 생각나면 쓰는 일기로 변하게 되었다.
매일 뭔가를 적지 않으면 개운치 않아서 매일 쓰기 힘든 일기대신 다이어리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어째서 다이어리는 3월을 넘기지 못하는 것일까
매년 새로 장만하지만 매년 빈 페이지로 가득한 다이어리만 쌓여갔다.
나를 기록하고 싶었을 텐데 결국 나를 기록하는 일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자꾸 기록은 하고 싶어서 눈을 돌린 것이 독서노트다.
독서노트의 기록은 책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그 책을 읽을 때의 나를 기록하는 것과도 같다.
일기보다 더 열심히,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고 쓰고 있다.
자기 계발이라는 영역에 눈을 뜨면서 알게 된 플래닝. 불렛저널.
다이어리보다 나에게 맞았다. 쓰는 건 비슷한데 왜 맞을까? 생각해 보니 불렛저널은 내 맘대로 구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템플릿이 다 들어있는 일반적인 다이어리는 특별히 불필요한 부분도 없었지만 딱히 도움이 되는 부분도 없었다. 먼슬리 위클리 데일리는 어디에나 똑같았지만, 유난히 넓은 칸이 필요한 데일리나 위클리도 내 맘에 드는 구성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불렛저널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필요한 형식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었다.
줄 긋고 칸 만들고 하는 게 귀찮은 사람은 못하겠지만, 나는 그런 것조차도 재미있어한다.
원하는 세팅을 하고 쓰다 보니 다이어리 쓸 때보다 훨씬 잘 써졌다.
매일 쓸 수 있게 되었고, 매월 셋업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관찰자로서 나는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기록 관련 책인 <거인의 노트>와 <파서블>은 나의 기록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해 주었다.
온라인대학으로 유명한 그곳에서도 다이어리 쓰기를 강조하지만 나는 그곳보다는 김교수님 스타일이 더 맞았다.
확실히 김교수님의 플래닝은 힘들다.
힘들기 때문에 결괏값이 좋을 수밖에 없다.
강의를 들으며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우고 나서 정착한 나의 플래닝은 김교수님이 만드신 월간 다이어리의 구성과 기존에 내가 즐겨 쓰던 불렛저널을 합쳐서 나만의 플래너로 만들었다.
그리고 세 달째, 이제 나는 책상에 앉기만 하면 시시때때로 플래너를 펼치는 사람이 되었다.
플래너는 먼슬리부터 시작해 인생지도 그리기, 감정 기록하기. 한 달 프로젝트 로드 맵, 루틴플랜, 하루 한 줄 일기 등으로 구성하고 위클리로 넘어간 뒤 데일리로 만들어두었다.
한 달 플래너에는 기록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기록하게 했다. 버킷리스트도 매 달 적고, 내 꿈과 목표를 적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실천할 부분들을 5개의 주제로 나누어 지난달과 새로 만난 달의 계획과 돌아보기를 동시에 할 수 있게, 고정 지출과 충동구매 등을 기록하는 가계부도, 매주마다 내가 새로 알게 된 것들과 매일매일 구상기록, 일상기록을 할 수 있도록 치밀하고 섬세하게 나만의 템플릿을 완성했다.
하루의 시작은 요가를 하고 나의 책상에 앉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자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플래너를 펼친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에 잠들기 전 플래닝은 할 때보다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럼 그다음 날 그 전날의 플래닝을 마무리하곤 한다.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틈만 나면, 하루를 보내다가 어디에라도 앉는 순간이면 바로 플래너를 펼치고 내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했는지를 바로바로 적으라고.
그래서 데일리 레코드라고 하는 서식은 하루를 보내는 시간시간마다 꼼꼼하게 적도록 되어있다.
바로 적지 않으면 두 시간 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조차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그게 싫어서, 나의 하루 중 그 두 시간이 날아가는 것 같아서 나는 매번 신경 써서 적는다.
플래너를 펼치지 못하는 상황에는 작은 메모노트에 내가 몇 시에 무엇을 했는지 간단히 적어두고 하루를 끝낸 저녁에 플래닝을 할 때 채워 넣는다.
시작하는 플래닝은 그날 하루를 온전히 만드는 시간이다.
오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지 리스트도 적어보고,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해나갈지도 그려보고, 전체적인 하루 계획을 세우며 나의 하루를 상상하는 시간이다.
저녁의 플래닝은 열심히 살아낸 나의 하루를 영화처럼 돌려보는 시간이다.
아~오전엔 이런 거 이런 거를 했구나. 잘했네. 어? 이건 왜 이렇게 했지? 내일은 다르게 해야겠다. 오늘도 정말 정성스럽게 살았구나 수고했어. 라며 칭찬도 해주고, 오늘 내가 새로 배운 것은 무엇인지, 오늘 하루가 조금 아쉬웠거나 부족했던 부분은 어떤 것인지, 좋았던 순간, 계속 유지할 습관 등을 적는다.
그리고 나를 칭찬하며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내가 플래닝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느낀 단 하나는, 잠들기 전 내일을 생각할 때 설렌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아서 빨리 내일이 와서 다시 또 충만한 하루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기록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플래닝을 하다 보니 독서도 계획을 세워서 하게 된다.
모든 일에 계획을 먼저 세우는 일이 즐거워지고 그것을 잘 실행해 냈을 때의 성취감은 말도 못 한다.
자존감이 높아지려면 작은 성취감을 자주 맛보라고 한다.
작은 성취감의 최적화가 바로 플래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소소한 기록들이 나를 점점 더 전문적으로 만들어준다.
도서 인플루언서에게 어울리는 습관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미루고 귀찮아하는 마음을 다 잡기도 한다.
하루를 체계적으로 살고 기록하는 습관은 사고를 폭넓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기억을 잘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고, 논리 정연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능력은 독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책을 잘 읽어야만 좋은 서평이 나온다.
그러므로 기록은 서평을 잘 쓰게 도와준다.
책을 읽으면서, 기록을 하면서 나는 어떤 단 하나의 깨달음에 이르렀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결국엔 어느 한 지점으로 모여들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전혀 달라 보여도 그 관계 속에는 분명 어떤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 있다.
멀리 돌아 돌아가더라도 마침내 도착하는 곳은 같은 곳이다.
참 재미있는 인생이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