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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Aug 22. 2024

기록에 진심인 편

하브루타 독서노트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쉬지 말고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 다산 정약용



다산 선생의 말씀대로 나는 기록하기를 좋아한다. 동트기 전에는 못 일어나지만.

기록을 좋아하게 된 건 어쩌면 정리하기를 좋아하는데에서 비롯된 듯하다.

뭔가를 정리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여기저기 흩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도, 물건도.

그래서 기록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사실 나의 기록은 국민학교시절부터 일기 쓰는 것이 전부였으나 그 습관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제대로 기록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무언가를 계속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 일기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일기장이 한 권 두 권 쌓여갈수록 마치 더 많은 내가 생성되는 듯했다. 오픈하지 않고 꽁꽁 숨겨둔 내가 그렇게나 많았던가.


대학에 가서는 리포트를 무척 잘 쓴다고 교수님께 칭찬을 받곤 했다. 졸업할 땐 전공교수님께서 내 리포트를 학교에 남겨두고 가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할 만큼 기록하고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을 곧잘 했나보다.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잘하고 싶어지고,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 졌고, 

그러다 보니 자꾸 개발하고 연구하고 탐색하게 되었다.


나는 기록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시도와 실패를 통한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기록의 중요성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록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차이점은 말하기에도 입 아플 정도지만, 무엇보다 계속 기록을 했더니 삶이 계획적으로 살아지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모든 기록을 하는 편이지만 내가 도서 인플루언서이니만큼 독서에 대한 기록은 정말 잘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고도 독후감은 꼭 쓰는 편이었어서 20년 전에도 쓴 독후집이 여러권있는데, 그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렇게 기록이란 놈은 언제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선물 같은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아닌걸로.)

 

독서노트에 진심인 편이라 참 다방면으로 시도를 해보았었다.

다른 사람들은 독서기록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매일 각종 SNS를 뒤졌고, 책은 기본이며 (의외로 많지 않았다.) 강의들도 많이 들었다. 그런 시도들에서 아주 유용해 보이는 건 접목시키고 불렛저널에서 사용하던 형식들도 가져와보면서 독서노트를 나만의 방식으로 써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하브루타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요약과 자기화이다.

책의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나 자신의 성장이다.

저자의 생각보다 그 생각을 통해 내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브루타 교육법이 딱 그런 것이다. 그래서 세계 40%의 경제를 유대인들이 끌고 가는 것이겠지.


생각이란 건 하지 않을수록 더 못하게 된다.

늘 고만고만한 생각밖에 못하는 건 우리 뇌가 그렇게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의 능력은 얼마나 놀라운가. 뇌는 내가 트레이닝하는 대로 따라올 수 있다. 마치 스펀지처럼 좍좍 다 빨아 당기는 것이다.

나는 독서노트를 쓰면서 나의 뇌에게 무진장 일을 시켜보았다.

그랬더니 처음엔 곤욕스러웠으나 이내 독서모임을 리드 하면서도 막힘없이 술술 말도 잘하게 되더라.

스스로 만족해서 독서노트를 만들어 많은 독서가들에게 쓰게 하고 싶었다.

2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써보다가 마침내 정착한 형식으로 독서노트를 제작했다. 하브루타 독서노트라고 이름 지은 것은 독서노트 쓰는 방식에 하브루타 스타일을 집어넣었고, 아직까지 하브루타식의 독서노트는 내가 만든 노트가 유일무이한 듯하여 매우 뿌듯해하는 중임을 밝힌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하브루타 독서노트를 검색하면 뜨는 핑크색 섬네일이 내꺼다!!)



내가 처음 독서노트를 쓸 때는 그냥 무지 노트에 직접 라인을 그려가며 탬플릿을 일일이 만들어 썼다.

글씨로만 쭉 나열하듯 쓰는 것보다 훨씬 눈에 잘 들어오고 효율적이라 매번 자를 대로 줄을 그으며 만들어 썼는데 노트가 채워질수록 다시 들춰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님은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주 들춰보기라고 하셨다.

글씨로만 채운 독서노트는 어쩐지 다시 보게 안되던데 나름 템플릿을 만들고 색칠도 하고 스티커도 붙이며 놀이처럼 노트를 꾸미니까 자꾸 다시 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노트를 제작하기로 했고, 내가 쓰던 형식들 중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넣어 완성했다.



비침이 없도록 두꺼운 내지를 사용했고, 커버는 하드커버는 아니지만 그래서 훨씬 손에 잘 잡히는 것 같다.

완성된 노트를 보니 정말 뿌듯했고,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누군가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이 드는 노트를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하지만 야금야금 아직도 잘 판매되고 있다. (그게 더 신기)



구성은 다이어리처럼 일 년 계획, 한 달 계획, 주간 계획으로 4주를 하게 만들었고, 네 권의 독서 기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이 노트의 핵심은 독서기록하는 부분이다.


제목과 서지정보를 적고 키워드와 한 줄 평을 적는다.

책의 전체를 간단하게 나의 생각대로 핵심정리를 하고 좋았던 목차 부분을 정리하고 질문 만들기를 한다.

질문 만든 것은 뒷장에서 답을 써보도록 했다. 하브루타란 짝 토론을 말하는 것인데 어떤 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짝과 돌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반대의견일수록 더 좋고 네 생각은 틀렸어가 아닌 그럴 수도 있구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노트에도 그 부분을 적용시켜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고 아래에는 '네 생각은 어때'하며 다른 의견과 질문을 제시해 보도록 했다.

필사부분도 칸을 적게 해 베껴쓰기보다 선택한 문장에 대한 나의 경험을 적고 그로 인해 얻은 인사이트가 무엇인지 확인하며 계획을 세워볼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은 마인드 맵으로 책 한 권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는데, 대부분 처음이 어렵지 쓸수록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피드백들을 많이 주셨다.


책 한 권을 A5 노트 4쪽에 걸쳐 요약하고 정리하는데도 사실 처음엔 두 시간씩 걸렸다.

질문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일수록 시간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정리를 끝내고 나면 작지 않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어려운 책 한 권이 딱 요약된 느낌이라 그렇게 내가 자랑스러울 수가 없음을 느낄 수 있다.

기록을 하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독서노트가 되겠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다 어려운 법이니까.

스스로 극복하며 써낼 생각과 의지만 있다면 점점 더 빠르게 노트를 써 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하려 하면서 쓰는 노트라 책을 읽고 휘발되는 것을 확실히 많이 방지해 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정리했다고 그 책이 평생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노트가 남아있지 않은가. 언제든 다시 들춰보면 된다.

독서노트 쓰기를 습관화하면 재독 한 책을 쓸 때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이전에 읽고 썼던 노트와 재독 후 다시 써 본 노트의 내용을 비교하면 어떤 책은 같은 내용일 수도 있고, 어떤 책은 전혀 다른 책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생각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엔 이만한 게 없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노트 쓰기를 권유한다.

독서노트 전도사라고 해도 될 만큼 독서 노트를 왜 안 쓰냐며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한다. ㅎㅎㅎ

꼭 내가 만든 노트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읽고 난 뒤엔 반드시 자기화해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다. 그것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독서 기록으로 시작한 기록 습관은 일상 모든 곳에서 기록화되고, 그 습관은 나의 공부와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꼭 독서 부분에서만 기록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기록하는 습관은 꼭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기록부터 해야 할지 막막할 때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독서기록부터, 그 외에는 일상기록부터 시작해 보시면 좋겠다.


다음 연재에는 기록습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이어리 같은 플래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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