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적 독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어떻게든 두꺼운 책을 완독 하면 그때부터 책과의 인연이 시작된다는 경험담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자기 성취감이란 그렇게 큰 힘이 있다.
어른들의 독서도 나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책을 굳이 읽어야 할까? 세상엔 읽을 책이 넘쳐나는데, 좋아하는 책만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판에 굳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어떤 책에서 저자는 좋아하지 않거나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히 패스하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말은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조언일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가끔은 억지로 겨우 끝낸, 좋아하지도 않는 그 프로젝트에서 두 번 다시는 안 해!! 했을지라도 분명 얻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인내하며 끝냈다는 자기 성취감, 만족감. 그로 인해 얻게 된 그릿 같은 것들 말이다.
독서에 있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만 읽고 살 수 없다.
때로는 업무적인 차원에서 읽어내야 할 책도 있고, 개인적인 공부를 위해서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일은 우리 인생에서 호락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책도 읽고 살아야 한다. 그런 책과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왜냐고? 그것이 곧 나의 성장이니까.
그렇다면 좋아하지 않는 책 완독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웬만한 쌈마이웨이 정신이 있지 않는 한 혼자 읽기는 사실 불가능에 더 가깝다. 좋아하지도 않는 책인 데다가 대개 그런 책은 나에겐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책을 혼자 꾸역꾸역 읽어봐야 지속적이지 못하고 어찌어찌 읽어냈다 해도 독서를 하는 그 과정이 괴로움으로 남아 진짜로 더 이상은 이런 책은 읽고 싶지 않다는 느낌만 남게 될 것이다.
해서 좋아하지 않는 책을 즐겁게 완독 하는 방법은 단연 독서모임이다. 혼자 어려울 것 같은 책은 함께 읽으면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고, 완독을 자연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같은 책을 읽고 여러 사람이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다 보면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책의 재미와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읽게 된 책이 다시 보이게 된다. 그런 경험을 하게되면 어떤 책에도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사라지고만다. (다 덤벼!)
혼자의 힘이 아직 부족할 때에는 함께의 힘을 빌어 일정 기간 나를 트레이닝하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의 장르를 가리지 말고 모든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현인들의 말을 생각해 볼 때 다양한 장르를 통한 사고확장은 좋아하는 장르들만 파고 있는 애서가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좋아하지 않는 부문의 책이라도 연계하며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그렇게 영역을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고 그 투자가치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의 그 이상으로 돌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실제 독서모임에 참여한 분들을 보면서 확인한 사실이기도 하고.
독서 초보때에는 당연히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어야 한다. 그건 독서와의 만남에서 좋은 인상으로 계속 만나고 싶어지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재미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내게 독서의 힘이 조금 쌓였을 때는 점점 넓은 영역으로 여러 장르를 두루 읽기 시작해야 한다. 독서로 인해 자기 성장하는 법이다.
독서는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큰 매력이 있다. 여러 장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졌을 때 어떤 때에는 읽고 싶은 책만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전혀 읽지 않았던 장르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엔 집약적으로 주제를 파는 독서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보니 독서란 정말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모험이자 놀이가 아닌가.
내가 독서하는 방법은 전투적 독서다.
1. 나는 책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 끄적이며 읽는다. 여기서부터 전투적 태세를 갖추는 셈이다. 그래서 책은 항상 바로 메모하며 읽을 수 있는 책상에서 읽는다. 간혹 침대에서 잠들기전이나 화장실에서 읽을 책들은 굳이 메모까지하며 전투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에세이나 재미위주의 소설로 구분해놓는다.
2. 책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 10쪽마다 생각을 정리요약한다. 단 3줄 정도로만 한다.
3. 하나의 장이 끝났으면 그 장을 요약한다. 10쪽마다 정리한 생각이 큰 도움이 된다.
4. 이런 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필사할 문장이 유독 많은 책은 필사와 생각적기를 함께 한다.
5. 읽는 동안 밑줄 긋기와 플래그 포스트잇을 붙이고 책에 바로바로 메모도 하는데 밑줄 긋기는 키워드 위주로 짧게 포인트를 준다.
6. 완독 후 반드시 서평을 쓴다. 조금 더 빠른 서평을 쓰는 데 도움이 됐던 건 플래그를 따로 표시해 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좋은 문장들이 있는 페이지에 가로로 플래그를 붙였다면 서평이나 독서노트에 쓸 나에게 핵심 되는 주제 부분은 책의 세로 부분에 붙인다. 좋은 책들은 플래그가 수도 없이 붙어져 있다. 그걸 다시 요약하려면 책을 그냥 다시 보는 것 같을 정도니까. 해서 쓸 부분은 딱 2-3군데 세로로 플래그를 붙인다.
7. 세로 플래그와 장마다 생각정리를 해 두었던 막노트를 토대로 독서노트에 마지막 정리를 한다.
8. 내 도서의 마지막 여정은 블로그에 서평을 쓰는 것으로 그 책은 책장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한 권을 읽고 독서 노트와 서평을 바로 못 쓰는 경우에는 (허다하다) 진즉 읽은 책이 한동안 내 책상 위 책꽂이에 있다.
내 책상 위 책꽂이에 없는 책들은 나의 독서루틴을 다 끝내고 거실 책장으로 옮겨간다.
마치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듯, 내 거실 책장 속 모든 책들은 그렇게 독서노트로, 블로그 서평으로, 만능카드로 정리되어 있다.
그저 읽기만 하고 끝냈던 아주 오래전 나의 독서를 가끔 돌아보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부터 제대로 독서했다면 지금 더 많은 자료와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내 보물박스에 남아 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독서를 읽기에서 끝내지 않고 쓰기와 말하기로 확장시키면 확실히 머릿속에서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이 주는 신비한 힘은 알고 고른 책도 아닌데, 이상하게 바로 전 완독한 책이 새로 읽는 책 속에서 리마인드된다는 점이다. 책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 준 것도 쓰기를 하는 독서를 하기 때문이다.
쓰기 독서는 필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필사도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사실 매우 작은 부분일 뿐, 책의 내용을 자기화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좋은 쓰기 독서이다.
쓰기가 되면 말하기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모임에서 토론을 할 때 마치 큐시트처럼 요약정리를 끝낸 독서노트가 있다면 말할 내용이 명확해지고 횡설수설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독서노트 쓰기를 적극 권장하고 다닌다.
모임에 오시는 분들에게도 독서노트를 꼭 쓰기를 강조하고 그래도 부족한 듯하여 직접 독서노트를 쓰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기도 한다.
내가 가장 효과를 본 것이 바로 독서노트이기 때문에 '저는 읽고 나면 기억을 못 해요'하는 분들에게 중간중간 생각정리하고 독서노트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 권 두 권 쌓여가는 독서노트를 보면 그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수 없다.
내 아들에게 물려줄 요량으로 매우 정성스럽고 깨끗하게 쓰고 있는데 그런 노력이 노트에 더 집중하게 하는 것도 같다. 독서를 전투적으로 해야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취미로 독서를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고 했다. 시간낭비라는 뜻이다.
책을 좋아한다면 왜 책을 읽으려하는 것인지 스스로 잘 알것이다.
우린 모두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읽지 않는다. 무엇이라도 하나 내것으로 만들고싶고, 배우고 싶고, 얻고 싶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댓가를 치뤄야한다. 그 댓가가 바로 전투적 독서이다.
다음 화에는 내가 만든 독서노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독서노트 궁금하신 분들은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