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으로 책을 고르기
세상에 읽을 책과 읽고 싶은 책은 너무도 많다.
이렇게 선택지가 광범위하면 선택장애가 올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장르라도 뚜렷하다면 그나마 책을 선정하기는 수월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장르만 계속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이 광활한 책의 세계를 골고루 탐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자꾸 마음속에서 꼬물대기 때문이다.
나도 옛날에는 좋아하는 장르만 읽었다.
베스트셀러는 늘 있었고, 그것만 읽는다 해도 못 읽은 책이 언제나 더 많았기에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이기에 휘몰아치듯 읽으면 이틀에 한 권은 꼬박꼬박 완독이 가능했다.
독서법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던 그 시절에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왕 시간을 투자해서 독서를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더 유익한 독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법을 찾다가 알게 된 독서법이지만,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독서에는 나름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독서생활 20년 만에 알게 되었다.
도서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계획독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협찬도서를 중구난방으로 받아 읽게 되고 그랬던 달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렇게 되면 도서 전문 블로거로서 독자들에게 보여줄 책이 지극히 한정적이 된다.
협찬도서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주로 신간도서이기에 신인작가들의 책도 많고, 사실 그런 책들은 가끔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수준인 책도 많았다.
처음 원고료를 받는 리뷰제안을 받으면 그저 신나고 들떠서 책에 대한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한 5개월은 제안이 들어오는 대로 받았고, 그 목적은 내 블로그에 제안받은 책을 많이 쌓는 것이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5개월 동안 느낀 바 허무함과 '지금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는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양서를 읽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이런 잡책이나 읽으며 좋은 말로 독자들을 우롱해야 하는 리뷰를 써야 한다니. 자존심도 상했다.
그다음부터 나는 계획독서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계획독서
계획독서를 하는 데에는 자기만의 룰이나 조건등을 세워두면 좋다. 그렇기에 정답이 없고 매뉴얼 또한 없다.
나의 경우 계획독서는 우선 한 달 동안 협찬받을 책의 수량을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 4권이 마지노선이다.
어떤 달에는 책을 골라 받느라 4권을 미처 못할 때도 있지만, 아무리 협찬 메일이 넘쳐나도 아무 책이나 4권 이상으로 받지 않는다.
그랬더니 비로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생겼다.
그다음의 계획은 테마독서이다.
테마독서는 주로 3개월. 6개월. 1년을 기간으로 정하고 매월마다 어떤 주제나 어떤 콘셉트로 읽을 것인지를 미리 독서노트에 적어두는 것이다. 나는 1년을 계획한다. 다만 3개월마다 적는다.
물론 계획했다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획을 한다. 변경하더라도 계획하는 습관에 따라 중구난방 책 읽기를 방지할 수 있다.
독서모임을 운영할 때 책 선정에도 아주 도움이 된다.
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그때그때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이렇게 계획을 세워두면 연계독서도 가능해지고, 독서모임 멤버들에게도 뭔가 이야기할 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기도 하다.
멤버들도 계획적인 리더를 더 잘 따른다.
테마를 정하는 방법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엘리트 대학들의 필독서 리스트라든지, 유명 교수님이 추천해 주는 필독서 또는 어떤 작가가 추천해 준 책들이든지 사실 마음먹고 검색하면 테마 정하기는 세상 쉬운 일이다.
주로 작가, 장르, 주제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기본이고 자신만의 프로젝트 공부를 위해 책을 선정해 두는 것도 좋다. 나의 경우로 예를 들면 책을 쭉 읽어오다가 어떤 때에는 책 속에서 읽은 궁금점들이 생겼을 때 그것만 파고드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곤 한다. 글쓰기를 하지만 뭔가 더 알아야 할 내용이 있을 것 같으면 글쓰기 책을 연이어 여러 권을 읽는다든지,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면 프랑스문학이나 여행서들을 모아 읽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어떤 목적이 있는 독서를 할 때 프로젝트 독서를 테마에 넣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테마나 콘셉트를 정해두면 다방면으로 독서를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장르만 찾는 편독을 피할 수 있으며, 나에게 지식적으로 공부가 되는 독서도 병행할 수 있게 된다.
책 속의 책
도서 인플루언서로서 내가 책을 선정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책 속의 책이다.
많은 책들 속에는 작가가 언급하는 책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럴 때 끌리는 책이라면 나는 바로 읽을 도서 목록에 적어둔다. 그렇게 당장 읽지는 않을지라도 읽을 목록을 쌓아가다 보면 어떤 시점에서 테마를 정하거나 어떤 책을 읽을지 모를 때 그 목록을 펼치면 된다.
읽고 싶어서 적어둔 목록이니 다시 안 읽고 싶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그렇게 쌓아둔 목록이 이미 100권이 넘었다. 읽을 때마다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는 작은 행위조차도 그렇게 뿌듯하고 힐링이 될 수 없다.
목록은 멈추지 않고 새로 읽게 되는 책들 속에서 매번 새로운 목록이 탄생된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언제나 읽을 책이 쌓여있기에 무얼 읽을까 하는 걱정은 할 일이 없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만 해도 그 책 속엔 추천해 준 책 리스트가 80권이 넘는다. 그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다. 혹시 몰라 국내 번역본이 있는지도 체크해 가며 번역서가 있는 리스트만 적었더니 82권이 되었다.
이렇게 읽을 책이 많은데 뭘 읽어야 할까 고민할 새가 어딨겠는가.
만들어둔 목록은 나의 블로그를 채울 서평리스트가 되고, 독서모임의 선정도서가 된다.
미리 준비해 두면 점점 편해지기 마련이다.
추천받은 책
사람이 어찌 계획대로만 살겠는가
한국인은 쌀을 먹어야 한다지만 그렇다고 매번 쌀밥만 먹는 것은 아니듯, 아무리 계획을 세워두고 몇 년치 읽을 책을 선정해 둔다 해도 그렇게만 실행하기엔 삶은 변수도 많고, 재미난 일도 많다.
나는 주로 계획적으로 독서를 하지만 개인 SNS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책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게 아무리 출판사의 마케팅이라 할지라도 그 마케팅에 동참한 독자들이 많다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나는 계획한 책들과 갑자기 훅 들어온 책을 함께 읽는다.
베스트셀러 소설보다는 스테디셀러 위주로 읽지만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책은 궁금하니까 또 사서 읽는다.
독서를 하는 데에도 참 재미난 세상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끔씩 계획에 없던 책들이 내게 신선한 설렘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얻은 활기로 이내 독서를 이어갈 수 있다.
도서 인플루언서라고 매번 책 읽는 것이 좋기만 할까
그들은 이미 독서가 습관이 되었기에 스며들듯 책과 With 하지만 그럼에도 읽던 책을 중단하고 아주 황당무계한 책으로 갈아타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책을 안 읽는 날도 있을 수 있다.
책을 선정하는 방법을 많은 이들이 물어오곤 했다.
"웬디님은 독서모임 책 어떻게 정하세요?"
"웬디님이 추천해 준 책은 정말 다 너무 좋아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인데 사실 내가 추천해 준 책이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책을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계획독서를 하다 보니 좋은 책을 선정하는 안목이 생겼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으나 예전처럼 좋아하는 장르만 읽었더라면, 장르불문하고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편독하지 말고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읽으라고 하는 말이 정답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 편에는 좋아하지 않는 장르를 완독 하는 법과 내가 독서를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