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의 변화를 소망하며 나만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 시작은 초라했고, 넘어짐은 무한 반복이었다. 잦은 자극에 헤진 내 마음은 가끔 너무 격한 화와 슬픔을 오갔다. 그것도 혼자서. 누가 알까? 누군가 없는 사람인 내게, 존재로 인정해 주지 않던 내게 말을 걸어온다.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순간순간 눈을 감고 이를 물고 참았던 말들.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지 몰랐던 말들. 그 말들이 반복될 때면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면서 무언가 다 하지 못한 의무에 대한 요구를 쏟아냈던 말들. 이 말들도 나에게만 쏟아졌다. 당신에게 나는 누구인가요?
시댁과 친정 모두 가까워 가끔 주말이면 방문을 하곤 했는데, 가끔 선물, 용돈, 먹거리를 가져가기도 하고 그냥 갈 때도 있었다. 시누이가 석사 과정 입학을 했던 시기 필요한 책을 구매해 보라고 봉투를 준비해 갔다. 시댁에 가서 식사 준비도 돕고 설거지하고 그러다 보니 준비한 선물을 못 건넸다. 사실 마흔이 넘은 시누이에게 입학 선물이 뭐라고 대단하지 않은 것이고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에 돌아올 때쯤 건네주려 하는데 어머니께서 “아버지도 계신데 왜 빈손으로 오냐?”라고 물으셔서 너무 당황한 나는 얼어버렸고, 남편은 “내 집에 오는데 뭘 꼭 사 와야 해요?”라고 말하곤 짐을 들고 아이들과 나가버렸다. 어머니 못다 한 말을 하셨다. “넌 이런 것도 모르니? 뭘 배웠니? 결혼해서 네가 한 게 뭐니? 정말 참! 시누이가 대학원에 입학을 해도 챙기지도 않고, 넌 뭐 하는 애니?” 옆에 있는 시누이는 곤란한지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 말이 쏟아져내렸다. 그냥 듣고 준비한 봉투를 시누이에게 건네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차에 타서 이무 말없이 집으로 가다 남편에게 “언니 필요한 책 사 보라고 준비한 거 건네고 왔어요.”라고 말했더니 “언제 다 준비했어?”리고 묻는다. 난 결혼해서 너무 많은 걸 했는데.. 포기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대와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다시 요동쳤다. 어머니 말을 다시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어머니는 “없는 사람”인 내게 뭘 원하시는 걸까? 그날도 쏟아지는 말을 아무도 모르게 삼켜 버렸다.
나는 결혼 후 13년째 전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자다. 운이 좋아 이사는 딱 2번 했다. 24평 아파트에서 8년을 살았다. 주인이 바뀌어도 세입자는 그대로 남아서 말이다. 중간에 전세난이 있어 집 값이 오르고 그때 운영하던 아동발달센터 이전으로 큰돈이 필요해서 전세금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했다. 여유가 없어 남편이 어머니께 돈을 융통해 달라고 했다. 흔쾌히 해주신다고 했단다. 그런데 나에게는 “차용증 써야지.”라고.. 놀람의 연속이었다. 전세 명의가 나라서. 가족 간에도 차용증을 쓸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섭섭하고, 내가 누구인지 확인이 되는 것 같아 서글퍼졌던 순간이다. 나는 어머니가 돕고 함께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둘러쳐둔 울타리 경계 밖의 사람이었다. 그 경계 안에는 시아버지, 남편, 시누이, 그리고 애매한 경계에 있는 내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확실히 경계 밖에 있었다. 나를 향한 마음 때문에 손자와 손녀도 울타리 경계 안에만 있지 않고 안과 밖을 오가는 대상 같았다. 그래서 참 슬펐다. 나는 모르겠지만, 손자와 손녀는 다함 없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젠 바라지 않는다. 내가 다함 없이 사랑하고 있으니까.
이 날도 나는 화자인 어머니의 말을 듣는 청자이고 싶지 않았다. 말을 듣는 건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비언어적 메시지를 안아가는 거라 생각한다. 난 그날 화자의 비언어적 메시지와 혼자라는 외로움에 잠겨 버린 듯했다. 그 이후 나는 어머니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전제 보증금을 어머니께서 융통해주셨고 원금을 상환하는 날, 은행 이자보다 더한 이자를 준비해 드렸다. 이제 당당하고 마음 편하게 은행에서 빌린다.
그 시기 남편은 휴직을 했다. 오랜 기간 업무와 인간관계 속에 힘들었는지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크게 당황했다. 물론 경제 상황으로는 남편이 일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말리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 피할 곳과 쉴 곳이 필요한 것 같았다.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전환. 씀씀이를 줄이고 쉬어 보기로 했다. 남편은 반나절은 자신의 시간으로, 반나절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휴직 이야기를 남편이 자세히 하지 않아 어머닌 나를 찾아오셨다. 묻지 않고 또 쏟아내셨다. “네가 센터 확장해서 네 일 하려고 쉬라고 했냐? 너 때문에 쉬니? 애 힘들게 아줌마는 왜 안 쓰냐? 건물 짓는 건 왜 반대하니?”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던 이야기들. 숨이 턱까지 찼다. 차분히 말을 시작했다. “휴직과 제 일은 전혀 상관이 없어요. 힘들어서 쉬고 싶다 해서 동의했어요. 저도 남편이 휴직 안 하고 일하면 좋겠어요. 수입이 줄어 모아둔 돈도 쓰지만 넉넉하지 못해서 시터는 남편이 쓰지 말자고 했어요. 건물 짓는 건 저랑 의논하신 적 없으시잖아요? 어머니께 어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어요. 남편이 제 생각 묻길래 말한 거고, 저희 전세 빼서 건물 짓는 거 함께 하고 싶지 않아요.”하고 답했다. 이 날 나는 처음으로 청자가 되었다. 상대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청자!
어머니는 조금 당혹스러워하셨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셨다. 무언가 모를 허전함과 후련함이 찾아왔다. 화자에게 청자가 되었다. 그날 옆에 우리 예쁜 딸과 아들이 있었다. 딸은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엄마를 혼내는 듯해서 슬펐나 보다. 두 녀석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가시고 딸이 “엄마 할머니 화나셨어요? 왜 엄마한테 화내면서 말하세요?”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아니라고. 할머니가 놀라서 궁금한 거 물어보러 오신 거라고. 그렇게 그날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최근에도 난 어머니의 청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전과 같다. 하지만 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신혼 초에 20대 초반에 발병한 난치병을 발견해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최근 증상이 너무 심해졌지만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검사도 진료도 같이 가고, 한의원도 알아봐 한약의 도움을 받았다. 스테로이드제를 두 달째 복용하며 다소 호전이 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증세가 걱정되셨는지 찾아오셨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오셨다. 이전에 못 보던 모습이다. 요즘 조금 달라지셨다. 그래도 늘 내 마음에는 “기대하지 마. 언제 변할지 몰라.”라는 외침이 머문다. 기대했다 더 상처받는 것도 싫고 기대는 이제 내려놓기로 했다. 그냥 그때 그때 주어지는 작은 표현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증세를 얘기하는데 “병이 결혼하고 생긴 거지?”라고 물으셨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모르셔서.. 이미 오래전 첫 발견 때 이야기를 나눠 알고 계셨던 사실. 난 반응을 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 병이 결혼 전에 생겼던, 후에 생겼던 뭐가 중요하랴. 남편이 너무 당혹스러웠는지 결혼하고 확진을 받았지만 증상이 20대 초반부터 계속 있었던 거라고 무슨 소리를 하냐며 응대해주었다. 아들이 아픈 것도 며느리 탓으로 돌리고 싶으신 듯한 뉘앙스의 말. 하지만 이젠 개의치 않는다. 사실이 아니니까.
주말은 워킹맘인 내게 쉬는 날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일하며 밀린 집안 일과 밑반찬 준비, 여러 식재로 준비, 육아 관련 여러 가지 일들, 특히 병원 진료와 준비물 준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여러 해결해야 할 일들을 하는 시간. 그러다 보니 조금 피곤한 건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가 자라면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은 줄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모든 엄마들이 동의할 거다. 분주하고 바쁘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어 우린 시댁과 친정을 방문한다. 사실 친정보다는 시댁에 자주 간다. 시댁에 가면 어머니와 같이 식사 준비를 돕는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설거지도 한다. 여럿이 모이고 음식을 했으니 설거지 양은 적지 않다. 그 사이 시누이가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설거지를 해주겠다 나서기도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데 양이 많아 시간이 한참이 걸렸다. 그 사이 남편은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나 보다. 설거지를 하고 앉으려고 하는데 어머니께서 “너는 안 피곤하지? 멸치 다듬어야 하는데, 줄 테니 좀 다듬어라.”하신다. 너는 안 피곤하지? 이건 어떤 질문인 건가? 왜 안 피곤하겠는가?
시누이가 옆에서 당황하며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멸치를 가져다주신다. 대꾸할 가치가 없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시누이와 앉아 멸치 한 상자를 다듬었다. 한참 다듬는데 아이들 소리에 깬 남편도 도왔다. 그날도 난 어머니 경계 밖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돌아왔다.
상담을 하며 사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상담이 이뤄지는 시간 동안 상담자인 나는 화자의 입장이 되기보다는 청자의 입장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화자, 청자의 경험을 모두 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렇지 못한 경우 우린 상처받고, 상처를 준다. 그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 마음이 바탕이 된다면 말은 달라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모두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한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 질문이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