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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샘 Jul 12. 2022

침묵이라는 긴 터널의 끝

어머니와 나 사이의 일들은 결혼 후 11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친정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 동료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왜 침묵을 택했는지는 어렴풋이 내 마음을 알고 있다. 남편도 자식이니까. 내가 엄마의 마음을 늘 걱정하듯이 그도 그럴 거라는 걸 아니까. 내가 아는 어머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싶었으니까. 생각보다 긴 시간, 아닌 결혼 생활 전체 13년 중 11년을 침묵했으니 결혼 기간 거의 모든 시간을 침묵했다고 해야 맞을 거다. 앞으로의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흘러 갈지 잘 모르겠다.


그 시간은 철저히 혼자였다. 말할 곳이 없었다. 침대 누어 혼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던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내게 일어난 일들에 너무 의미부여를 했는지도 모른다. 곱씹고 곱씹고를 반복하면서. 누군가는 뭘 그리 마음에 담아두냐며 피곤하게 산다고 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왜 혼자 참냐고 화를 내라고 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수다라도 떨며 풀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줌마들이 흔히 모이면 주로 얘기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자식에 대한 이야기.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고 일하느라 바쁘고 정말 친구 한 번 만나기가 어려웠던 시간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한가로이 친구 만난다며 아이 맡길 곳이 없었고 남편이 두 아이를 다 돌보는 건 어릴 때는 힘든 일이었고. 기댈 곳 없는 엄마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하리라. 결혼 11년째. 나도 친구들도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모임을 갖기로 했다. 뭔가 낯선 느낌이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어색함은 잠시였다. 식사를 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여러 주제를 지나 단골 메뉴로 접어들었다. 고부 이야기, 시댁 식구 이야기. 다들 시댁과의 관계 갈등을 이야기한다. 내 귓가에 들리는 이야기들은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내 경험이 너무 최악이라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입을 뗄 수 없었다. 창피했던 것일까?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이 두려웠던 것인가? 내가 너무 작아질까 두려웠던 것일까? 자존심인가? 테이블 주변에 둘러앉아 친구들 사이에서 앉아있었지만 내 마음은 내 문제 속으로 들어가 가라앉아버렸던 시간이었다. 그냥 친구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나에겐 별일 없는 냥 앉아있었다.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은 나에게 슬픔을 가져왔다. 조금 예민해지고 짜증도 났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지난 묵은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집어삼키려 하는 듯했다. 외출 후 돌아온 내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하지 않았을까? 원망의 마음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남편도 미웠다.


친구들과의 만남 후 나는 침묵을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했다. 긴 시간 관계의 문제를 어쩌면 나만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갈등을 주변에서 모른다고 한다면 나에게 정말 관심이 없는 것일 거다. 알지만 말하지 못하는, 알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입장이랄까. 그 시기 남편은 또다시 복직 후 6개월 만에 다시 일이 힘들어 쉬고 싶어 하고, 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남편은 어머니에게 가볍게 이야기를 한다. 늘 그랬다. 그러면 그 후 어머니를 나를 찾았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왜 나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없는 사람으로 늘 대하시면서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가족이 된다.


그 쯤 시어머니 칠순이 있어 우린 어찌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의논은 나를 빼고 시작되었다. 어머니와 시누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 했고 여행을 계획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 남편과 의논해서 가족이 다 가기에는 부담이 되고 우리 부부는 일을 하고 있고, 아들은 너무 어려서 못 가도 4학년이 된 딸을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나 보다. 난 몰랐다. 퇴근을 해서 귀가했더니 딸이 해외여행 가게 되었다며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순간 무슨 얘기인지 몰랐다. 딸은 엄마는 왜 몰라라고 묻는다. 남편에게 들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딸에게 좋겠다며 학교 수업도 빼고 방학도 잘 활용해서 갔다 오면 좋은 경험 되겠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그렇게 몇 날 며칠 신이 나서 들떠 있었고, 걷기 힘들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올 것이 와버렸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남편이 왜 또 이직을 하려고 하는지 물으셨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달해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남편과 이야기했는데 일을 일정기간 쉴 수 있다고 하니 산티아고 갈 때 같이 가면 마음도 정리하고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남편도 동의를 했고. 그래서 딸도 아빠랑 같이 가면 더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그 애는 안 가야지. 가면 아빠 귀찮고 힘들어서 도움 안 된다. 이번에는 우리 셋이 가고 다음에 기회 되면 가도록 해라”라고 말하셨다. 너무 쉽게 우리 딸의 의견 하나 물어보지 않고, 동의도 구하지 않고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결정을 혼자 하셨다. 누가 간다고 했던가? 자신들이 데려가겠다고 얘기하고, 이제 와선 안된다고 하고. 이유가 납득이 안되었다.


어머니가 나를 어머니의 경계 밖 사람으로 대하시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내 아이를 그렇게 대하시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아이들을 자신이 쳐둔 경계 안과 밖을 오가며 대하시는 그 태도에. 그 대화 후 나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출근을 하는데 운전대를 잡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누구를 향해 지르는 것인지 모를 소리를.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연인 여행 안가. 절대 안 보내. 너 혼자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상황을 몰랐다. 퇴근 후 남편이 눈치를 살핀다. “왜 서연이 여행 가지 말라고 해?”라며 묻는다. 오전에 한 통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당황스러워하며 “같이 가도 되는데 그럴 기회가 언제 온다고.”라며 말을 흐린다. 그 후 며칠 남편과 말을 섞지 않았다. 폭발한 내 감정을 지니고 얘기를 하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시간을 갖고 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야 했다.


며칠 후 남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얘기하자고, 이직 결정에 대한 내 의견을 물으려 했다. 나는 그날 11년 내 기억 속의 어머니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했다. 침묵의 긴 터널의 끝이었다.  이번 여행 관련한 이야기를 차분히 하고, 이젠 어머니와 남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 직접 통화해서 본인이 본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이중적으로 나를 대하시는 태도에 대해 말했다. 남편이 있을 때, 없을 때 너무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고 힘들다고. 남편은 왜 말지 않았냐고 말한다. 그래서 말했다. 지금 말하고 있다고. 오랜 기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남편도 충분히 예측이 되리라 생각했다.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남편에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고? 몰랐냐고? 물었다. 남편은 자신도 엄마랑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고, 안 했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남편은 어머니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또 고민해봐야 했다. 남편과 얘기하며 참 많이 울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런 상황이면 미안하고 먼저 말해야 하는 게 아닌지. 나라면 어찌했을까?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한 거였는지, 안 한 거였는지 정확히 모른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 대화 후에도 나는 감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가족 단톡방에서 나왔다. 그들의 대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남편이 톡 봤지?라고 묻는다. 나는 단톡방 나와서 모르는데라고 말했다. 남편이 “참 가지가지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뭘 했단 말인가? 남편도 친정 가족 단톡방에서 활동은 안 하니까 나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족이라 하기엔 뭔가 구색도 맞지 않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시누이가 나를 다시 초대했다. 왜 그랬는지는 묻지 않았다. 시누이도 나에게 왜 나갔냐고 묻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수락을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이젠 그 방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었다. 내가 꼭 답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남편이 대부분 하면 되는 것이다. 뭔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울렁이는 파도에 흔들리는 배 같던 내 감정은 조금씩 평정심을 찾아가고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거리를 더 두고 싶어졌다.


현장에서 만나는 내담자들도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그 어려움을 어찌 극복해야 할지 두려워하고, 방법을 알아도 좀처럼 해결을 위해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관계가 얽혀있어서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 그리고 그 관계들은 새로운 역할을 만들고 내가 아닌 누군가도 생각하며 무언가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 나 역시 그랬다. 긴 기다림의 시간과 고민 끝에 내가 받고 있는 이유 모를 미움과 존재를 인정받지 못함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그 문제는 내 문제도, 내가 원인도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며 난 어둡고 외로웠던 긴 터널 끝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수 있었다. 상대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니,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상대가 자신의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감정을 인식하고 해결하길 바라고, 난 그 문제에서 자유하고 싶어졌다. 이젠 상대의 감정의 문제로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긴 여행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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