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맛이 남긴 길고 긴 여운

by 유리의아빠

나는 술을 늦게 배웠다.


요즘 신입사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등학생 때 이미 술맛을 봤다는 이들이 꽤 있다.
중학교 시절에 마셔봤다는 사람도 있고.
농담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그들이 술과 조금 더 일찍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반면, 나는 대학 1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맥주를 입에 대봤다.
그리고 그 첫 잔의 주인공은, 맥주의 왕이라 불리는 버드와이저였다.
국내 생산 버전이 아니라, 미국 원액 그대로인 ‘진짜’ 버드와이저.

그 사실만으로도 첫 경험의 기억은 더 또렷해졌다.
비록 정확한 맛은 흐릿해졌지만,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여전히 버드와이저라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다.

마트에는 전 세계의 맥주가 끝없이 늘어서 있다.
새로운 맛을 찾아 떠나볼 만한 시대지만,
사람의 입맛이라는 건 결국 ‘처음’이라는 기억의 온도에 오래 묶여 있다는 연구처럼
나 역시 그 첫맛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일과 술 사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술은 자연스레 곁을 차지한다.
일에 몰두하며 잊고 있다 보면, 어느 날 슬쩍 회식이 잡히고,
숙취의 기억이 흐려질 때쯤 또 다른 약속이 생긴다.
피한다고 사라지는 종류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간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따금 이런 술자리가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하루에도 여러 번 머릿속을 치고 들어오는 생각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들.
아이의 교육 철학부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현실적 고민까지,
모든 것이 쉼 없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술자리에 앉아 잔을 하나 둘 비우다 보면
그 분주한 생각들이 조금 느슨해진다.
잠시나마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멈춰 서고,
1~2시간 정도의 ‘간이 휴식’이 허락된다.

그 시간은 짧지만,
그만큼 소중하다.


짧은 도피, 작은 위로

어쩌면 술은 내게
기호품을 넘어선,
조용한 위로 같은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미래 대신 현재의 나에게 잠깐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시간.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 배운 그 맛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나 오래 달래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신기하고 따뜻하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 첫 맥주 이야기를 들려줄 날이 오겠지.
그때도 여전히,
첫맛이 남긴 이 긴 여운이
나를 부드럽게 이끌어주고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조용히 잔을 들어 올리며.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