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 국밥

by 발돋움

인적이 드문 자동차 도로에서 시작된 고샅길. 양 옆으로 허리춤까지 자란 관목들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잔잔한 자갈길을 걸어 들어가면 후미진 길 끝에 대나무로 병풍을 둘러친 국밥집이 자리하고 있다. 산속에 덩그러니 놓인 이 국밥집은 벽체를 흙으로 메꾸고, 검은 기와를 올린 동네와 외떨어진 집이었다. 기와 사이로 들쑥날쑥 솓아오른 와송과 그 위로 내려앉은 늦가을의 낙엽은 소인국의 소나무 숲 속처럼 조화로웠고, 균열이 생긴 외벽 틈에는 색색의 국화들이 아직 피우지 못한 꽃망울을 머금고 건물 주위를 빙 둘러 끌어안듯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집은 허물어져 가는 패가라기보다 작은 소나무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국화로 지은 옷을 입고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소녀가 연상되듯 아기자기하면서도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우면서 잔망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곳이 김교수의 소울푸드를 파는 [희수국밥]이었다.

김교수가 이 국밥집을 처음 찾게 된 것은 납골당에 들렀을 때였다. 가족을 모두 잃었다.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의 벼랑 끝에 놓인 그였다. 그 혼돈과 심란함을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어 쉬는 날마다 김교수는 납골당을 찾았다.

[여보, 지민아. 나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은데. 보러 가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네. ]

적막하고 서늘한 죽은 자들의 공간. 참 많은 이들이 제각각의 연유로 집사람, 지민이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 머물고 있으련만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 않아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주저리주저리 푸념을 늘어놓는 김교수의 말소리 끝에 묻어나는 것은 창밖에 팔을 쭉 늘어트린 버드나무줄기 사이로 스치는 호젓한 바람소리뿐이다. 창문과 봉안당이 맞닿은 모퉁이에 주저 않은 김교수는 30cm 간격 유리 바둑판처럼 빽빽이 들어찬 칸막이를 올려다보았다. 이토록 많은 망자들이 있는데, 왜 김교수에겐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만이 들리는 걸까? 집사람과 지민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날도 올까?

이유도 영문도 모른 체 김교수 주위로 불어닥친 많은 상실과 변화들로 김교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소주병에서 술이 술잔으로 똑똑 떨어졌다. 벌써 두병을 비웠다.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설 시간이었다.

[여보, 지민아. 아빠는 이제 가볼게. 그래도 그곳에선 둘이라 마음이 좀 놓이네. 또 올게.]

삐걱거리는 무릎을 모으고, 오른손으로 창턱에 힘을 주며 끙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검은색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소주병과 안주 봉지를 챙겨 건물 현관 입구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넣었다. 밖은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싸늘한 가을바람이 어둠 속을 휘젓고 있었다. 왼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하자 벌써 시간은 8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버스가 끊겼을 것 같은데.]

납골당을 찾을 때는 늘 소주를 챙겨 왔던 김교수라 버스를 이용하곤 했는데, 오늘은 넋을 한참이나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납골당 버스정류장엔 이미 끊긴 막차 버스 일정표가 몇 안 되는 버스 시간표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택시를 부를 기력도 없어 김교수는 구불구불한 산복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몰아치듯 공복이 몰려왔다. 근처에 밥집이 있을까? 30여분을 걸어 내려왔을 때 즈음 왼쪽 도로변 풀숲 사이로 작은 이정표가 보였다. 허리춤까지 올 듯한 높이 10cm 폭 나무 기둥에 붙여진 화살표에는 [희수 국밥]이라고 적혀 있었다. 글씨 주위로 정성스럽게 꽃무늬를 새겨 넣은 표지판의 색이 바래지 않은 것을 보아 입간판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숲 속에 국밥집이?라는 의구심은 들었다. 뱃속에선 공복을 넘어, 허기로 굶주린 호랑이 한 마리가 활개를 치는 듯 꾸르륵 꾸르륵 연신 밥 달라고 재촉을 해댔다. 김교수는 까치발을 들어 숲 안쪽을 살폈다. 숲 속 깊은 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늦거나 재료가 소진되거나 만약의 경우 장사를 접었다고 한들 사람이 있다면 한 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풀숲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사위가 어둠으로 잠식된 길을 더듬더듬 걸었다. 시각이 잠자는 곳에선 촉각, 청각, 후각, 미각이 폭발한다. 선득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 이파리들이 서로 흉흉한 소리를 내며 손을 비벼대고, 멀리서 구슬프게 울어대는 새소리. 발바닥 밑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각거리는 불규칙적인 자갈소리. 김교수 주변을 타고 흐르는 을씨년스러움에 김교수는 취기가 싹 가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배고픔을 넘어선 공포에 발이 덜덜 떨려오자. 김교수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죽으려고 수면제를 한 움큼 삼킨 자신에게 공포가 몰려오다니. 죽을까 봐 겁이 나다니. 헛웃음이 났다.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한껏 웅크렸던 어깨를 쭉 편 김교수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밤길을 걸어 앞으로 향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코끝으로 진한 국물냄새가 스며들었다. 아직 가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영업 중인 것은 확실한 듯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 모퉁이를 돌자 드디어 가게가 나타났다. 창문으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오래된 한옥집. 건물 뒤편 어두컴컴한 대나무 숲이 있어 가게가 대조적으로 더 돋보여 보이는 듯도 했다. 걸음을 옮겨 현관 입구에 이르자 원목 간판에 적힌 희수국밥의 아기자기한 글씨와 그 아래 나무격자무늬에 국화가 세겨진 아름다운 가게 출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100년은 넘어 보이지만 낡았다가 아니라 고풍스럽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랑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문에 달린 풍경소리가 가게 안에서 은은하게 흘렀다. 홀엔 4인용 테이블이 3개 놓여 있었고 각각의 테이블 위엔 검은색 갓모양 펜던트 조명이 식탁을 밝히고 있었다. 가게 출입구 양옆엔 가장자리를 원목 격자로 덧댄 창문이 있어 첫 번째와 세 번째 테이블에선 낮에 경치를 구경하며 음식을 즐길 수 있겠구나라고 김교수는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화이트와 우드의 조화를 이룬 공간에 멀뚱히 서 있자 곧 홀의 중앙에 위치한 통로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어서 오세요. 희수 국밥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50대로 보이는 여주인은 갸름한 얼굴에 푸근한 인상과는 대조적인 단호한 눈매와 말조가 인상적이었다. 홀의 가장 오른쪽 자리로 손을 뻗어 김교수를 자연스럽게 에스코트하며 고개를 숙이자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이 호리호리한 몸매를 감싸고 있는 다크그레이 철릭원피스 오른쪽 어깨로 쓸려 넘어왔다.

밖으로도 흘러넘쳤던 구수한 국밥 냄새가 홀에 진동 하자 김교수는 숨어 있던 시장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가게의 벽면 어디에도 테이블 위에도 여주인의 손에도 메뉴판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바삐 홀 안으로 들어간 주인은 잔잔히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낸 후 이내 요리용 카트를 밀고 음식을 내왔다. 돼지국밥 단일 메뉴를 파는 가게인 모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뚝배기와 옹이 그릇에 소복이 담긴 흰쌀밥, 섞박지가 김교수의 앞에 그릇들의 오른쪽엔 국화 문향 나무 받침대 위에 수저 한벌이 놓였다. 뚝배기 안에서 뽀얀 국물이 채 썬 파, 넉넉한 살코기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뚝배기에 밥을 말아 섞박지를 보태어 가며 김교수는 맛깔난 국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뜬 숟가락을 수저 받침대 위에 올렸다. 국밥 한 그릇을 비웠을 뿐인데 마음속에 뻥 뚫린 구멍 속으로 무시로 드나들던 허한 바람이 잦아든 기분이었다.

[음식은 마음에 드셨나요?]

[네. 하루 종일 음식다운 음식을 먹지 못해. 허기가 심했는데. 너무 잘 먹었습니다. 메뉴판이 없는데 음식값은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요?]

만족스러워하는 김교수를 보고 웃음을 짓던 여주인이 잠시 머뭇거리며 당황한 듯 눈알을 굴렸다. 얼마를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김교수 입장에선 국밥 한 그릇이 10만 원이라 해도 선뜻 가격을 지불할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얼마가 되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말씀해 보시라는 듯 입고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우셨다면. 음... 1000원 정도 가격 어떠세요?]

[1000원이요? 너무 저렴한데요. 산속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려면 손님 유치가 힘들어서 가격을 더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괜찮습니다. 마음 놓고 가격을 말씀해 주세요.]

머뭇거리던 여사장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저희 사장님 가게 운영 방침이 음식값을 최대한 적게 받을수록 좋다입니다. ]

음식을 내온 사람이 사장이 아니라는 말에 살짝 놀라고 음식값을 적게 받을수록 좋다는 말에 모두 김교수는 황당했다.

[아. 그럼 얼마를?]

[그럼 100원 어떠세요? 아니면 10원? 아니다 다음에 오실 때 그때 같이 주세요.]

놀라 눈만 껌뻑이던 김교수에게 안녕히 가시라는 듯 여지배인이 김교수를 입구로 몰자 김교수는 그래도 그건 아니라는 듯 손바닥을 앞으로 보이며 출입구에 막아섰다.

[제가 국밥을 먹고 있을 때. 어린아이 목소리를 주방 쪽에서 들은 것 같은데. 그러면 지배인님이나 사장님 두 분 중에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시는 상황이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돈을 받지 않고 가게 운영하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간 지배인의 단호한 눈이 반짝 빛나며 환희에 찬 웃음이 입 밖으로 빠져나올세라 입을 틀어막고 그 자리에서 통통 뛰었다. 자신만의 환호 속에서 기쁨을 만끽한 지배인은 다시 한번 김교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식사를 하시면서 여자 아이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거죠?]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식당 밖으로 나온 김교수는 뭔가에 홀린 듯 몇발자국을 걸어가다 다시 식당을 뒤돌아 보았다. 식당 외벽에 흰색 국화꽃이 듬성 듬성 피어 있었다. 김교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처음 가게에 들어설때 건물 벽에 꽃이 피었던가? 아니다 분명 그때 꽃은 없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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