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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Aug 06. 2023

무비토크 #30. 밀수

범죄, 대한민국, 2023 개봉, 감독:류승완


올여름.

<밀수>를 필두로 본격적인 영화들의 여름 나기가 시작된다고 뭇 영화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이제 <더 문>도 개봉했겠고 <비공식작전> 그리고 내가 기대하고 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곧 개봉 라인업에 합류할 예정이다. 대표적인 텐트폴 영화의 첫 시작인만큼 이 작품의 성과가 주목되는 가운데 우연히 대전에서 영화를 보게 된 리뷰를 몇 자 끄적여 보기로 한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계실 것 같지만 리뷰를 위해 약간의 스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스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살포시 스킵하셔도 좋을 듯하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이어진 이번주 출장은 정말 힘들었다. 무려 인천에서 대전까지 가서 받은 연수였는데 전국에서 모인 선생님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라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자극을 한껏 받을 수 있었고, 우리 반 강의를 맡은 대구교대 이 교수님은 거의 나랑 동년배인 엄청 젊은 분이라서 더 욕심이 났달까? 같은 학위를 받고도 이렇게 가는 길이 달라질 수 있다니... 나는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약간의 샘도 나고... 하여간 여러 가지로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된 연수였다.

그리고 같이 방을 쓰게 된 룸메이트는 나보다 3년 후배인 천안에 계신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같은 고향 출신이라 그런지 더욱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틀차 연수를 겨우 마치고 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저녁에 근처 CGV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육아에 지친 후배는 몇 년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털어놓아 같이 보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밀수>를 예약했다.


영화를 보고 난 개인적인 총평은?? 오락영화로 딱인 영화.


스트레스에 허덕이던 나에게는 깊은 주제의식이나 압도적인 서사를 감당할 에너지가 없었기에 생각 없이 그냥 눈이 흘러가는 대로 보기에 딱 알맞은 재미와 액션. 그리고 마지막 통쾌한 결말까지 아주 안정적인 연기력의 베테랑 배우들이 펼치는 오락영화로 그만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뒤쪽의 젊은 분들은 부정적인 의견이 난무했지만 70년대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어렴풋이나마 공유할 수 있는 나이대의 나에게는 보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작정하고 넣은 듯한 촌스러움과 우리 엄마가 청년이었을 때 많이 들었을법한 배경음악은 정말 자연스럽고 특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

풍성한 혜수언니의 저 헤어스타일은 70년대 당시 멋쟁이였던 사진 속 우리 이모와 똑 닮았다.


김혜수, 염정아가 1970년 군천이라는 가상의 바다 마을의 해녀로 나온다. 이 둘은 극 중 실제 자매는 아니지만 자매처럼 정을 나누며 한 집에서 자라왔는데 '밀수'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되면서 겪게 되는 한 가족의 비극과 갈등, 분열 그리고 마지막엔 화해와 끈끈한 연대를 특유의 연기력으로 잘 풀어낸다. 특히 이 두 분 모두 70년대의 시대 분위기를 정말 위화감 없이 잘 소화해 낸 부분이 인상적인데 캐스팅을 기가 막히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캐릭터가 완전히 다른 이 두 분이 잘 융화가 될까? 따로 놀지는 않을까? 살짝 어울리지 않는 두 분의 조화가 의외라고 생각되었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 서로 대조되는 매력이 서로를 보완하는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인성과 충무로 치트키 박정민.

20년 전부터 내가 정말 좋아했던 배우 조인성 님은 그 비현실적 꽃미모와는 달리 주로 조폭 세계에 다양한 이유로 휘말려 살다가 죽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의 남주인공을 많이 맡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는 메인 주연은 아니지만 혜수언니와 함께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비정하면서도 묘하게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로 등장한다. 조인성의 장점은 누구와 붙여 놓아도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아닌 영화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쌍화점에서 송지효와는 정말 안 어울렸다.)


그리고 박정민.

<밀수>에서는 자신에게 그간 은혜를 베풀어 준 모두의 뒤통수를 때리고 돈 때문에 배신하는 비열한 인물을 기가 막히게 소화한다. 박정민은 정말 여러 캐릭터로 변신이 가능한 부분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둔하고 미련하기도 하고, 정의에 불타기도 하고, 순수한 청년의 모습 그리고 정 반대의 악의 화신이 될 수 있는 천의 마스크를 지니고 있다. 아니 오히려 본인의 마스크가 뚜렷하기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채로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외모가 너무 화려하면 호환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이야기의 전개상 조인성, 극중 권상사와 장도리(박정민)는 군천의 밀수 판을 두고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전국구 오야붕인 조인성이 군천 시골바닥 건달인 박정민에게 당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조인성이 이길거라고 생각했는데 박정민이 우스꽝스럽지만 옷 속에 나무판자를 덕지덕지 대놓아 칼을 맞아도 목숨을 건지고 오히려 조인성을 때려 눕힌 그 장면에서 류승완의 메세지를 읽었다. 


일류를 뒤엎는 이류의 반전이랄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라는 그 끈질긴 생명력의 위대함. 멋진 것 보다는 지저분하고 더럽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그 잡초같은 근성. 맹목적인 것의 위험성과 파괴력.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처럼 느껴졌는데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도 최근 올린 밀수 리뷰에서 이 부분을 꼬집어 말씀하셔서 놀랐다.  

 

그리고 가장 나쁜 놈으로 등장하는 세관 감독관 아저씨.

돈에 눈이 멀어 모두를 죽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배우 고민시 씨는 <마녀>에서 나왔다는데 내가 <마녀>를 보지 않아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만 기억하다가 밀수에서 내게 눈도장 꽝 찍은 배우다.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확실한 분인 것 같다. 여기에서는 다방 마담으로 분했는데 고민시가 연기한 옥분은 해녀들과 밀수꾼들을 오가며 정보통이 되는 캐릭터다. 다방 막내로 시작해 가게 사장까지 된 인물로 당당하고 능청스러운 매력을 갖고 있다. 다소 촌스럽지만 진짜 70년대 다방 마담이 입고 있을 법한 한복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그 장면은 압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튼 다소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는 영화에 통통 튀는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타민 같은 존재랄까?


 

바닷속에서 벌이는 해녀와 조폭들의 수중 액션신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수중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대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문어 머리를 집어던진달지, 성게 가시에 손을 찌르는 등 다소 코믹한 부분들로 칼부림만 난무하는 고전적인 액션신에 웃음 한 스푼을 첨가했다.


마지막은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선과 악이 확실히 분리된다.

악한 사람은 모두가 죽었고, 선한 사람만 살아남아 다이아몬드를 갖게 되는데 다소나마 삶이 힘들어 단순한 오락영화를 찾으시는 분들께는 꽤나 흡족한 결말일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이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이며 전문 영화평론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 쓴 내용이라 전혀 공감이 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와 비슷한 심적 상태로 가벼운 리프레시가 필요한 분들께 즐거움을 줄만한 영화를 찾고 있다면 살포시 추천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으면 재밌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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