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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n 09. 2022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






매일 전쟁이었다. 엄마는 일터에  데려가기를 꺼렸고 나는 엄마 옆에 붙어 있기를 좋아했다.  모두 고집과 자기주장이 있어 누구 하나는 포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꾀를 냈다. ~ 어린 유아기  보육시설에 맡겨져 지냈는데 엄마가 일에 바뻐 늦게 하원하는 일이 많고 선생님 눈에 찍혀 문제아. 그때 기억으론 엄마가  옷을 항상 예쁘게 만들어 주고 예쁜 옷만 사서 입혔는데 가끔 -.. 이상한 행동을 해서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내가 아니라 엄마가.


한 여름에 매미가 정말 많았다. 엄마는 퍽하면 여름에 나무를 타서 매미 잡는 행동을 하고 나에게 매미를 보여줬는데 어느 때와 같이 엄마 손을 잡고 등원하는데 엄마가 매미에 꽂혀서 초등학교에 들어가 매미를 한 30분 넘게 잡더니 안 놓고 날 데리고 가더라. 당연하게 등원한 나를 받으신 선생님을 보고 씨익 웃더니 엄마는 “매미예요~!” 정말 매미를 던지고 빠르게 문 닫고 가버리셨다. 나는 원래 이런 일이 많았어서 별 다른 반응을 안 했는데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 한바탕 난리가 난 후에 매미가 문 밖으로 나가자 날 째려 보신 선생님…, 한동안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내가 배의 때가 보여 파는 행동을 하면 엄청 큰 문제마냥 엄마한테 수시로 문제를 삼고 나를 붙잡아 화 내기도 하셨다. 사실 진짜 별 거 아닌 문제인데 왜 다들 내가 배꼽에 집착하는 미친 아이로 봤는지 의문이다.


난 그때 배에 검은 때가 보여서 그런 거라고요!


내가 어느 정도 크고 날이 정말 맑은 여름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미술 학원처럼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일하는 일터 근처로 해서 아침에는 엄마가  어린이집에 두고, 저녁쯤 대부분 어린이집에서 차로 엄마한테 가고 일정이  맞거나 너무 바쁠  일터의 삼촌이나 엄마의 지인이 데려오셨다. 어린이집의 일화가  가지 있다. 재미있다면 재미있게   있고, 독자 보기 나름이겠지만 조금은 슬프게 보일  있다.


처음 다니기 시작할  어린이집이 굉장히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유독 내가 누군가랑 친해지는   좋아해   또래 친구랑 놀면 일하다가도 당장 집으로 데려와 1시간, 2시간 같이 놀지 말라고, 조용히 혼자  지키라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알려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 !” 일터의 있는 이모들 혹은 삼촌들과도…, 그래서 엄마한테 혼나면  그래야 했는데 나는 호기심이 강하고 하고 싶으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라 몰래 놀거나 최대한 아닌 척을 자주 했다. 문젠 그걸 항상 들켰다.

일터에선 무조건 엄마 옆에만 있었다. 그만큼 엄마는 무언가 폐쇄적인 환경에 나를 두곤 했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어린이집이라는 드넓은 공간에  두고 여기서 놀고 오라니 이상하지만  세상처럼 좋아했다. 풀장도 있고 다른 교실을 가면 미술공부를 하는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미술학원 형태라 석고상도 많아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미술에 대해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보따리를 가장 좋아했다.


달마다 생일잔치도 해 주인공이 되는 친구들이 부러워 맨날 엄마에게 ‘난 왜! 생일잔치 안 해줘?!’ 타령해서 어느 날은 투정에 질린 엄마가 나 보라는 듯 어린이집에 전화해 생일잔치에 대해 물어봤고 생일잔치를 곧 해줄 거라는 말에 신나서 방방 뛰는 날 보고 한숨을 쉬더라.


하지만, 어린이집도 엄연히 사회생활!


편 가르기 하기 위해 난 그 수단이 된 적도 있다. 엄마가 사준 크레파스를 어떤 여자애가 훔쳐 자기 이름을 썼다는 걸 어떤 1살 많은 언니였나? 알려줬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땐 어리둥절했지만 편 가르기에 수단으로 쓰였다는 건 나중에 커서 생각해보니 알게 된 거지. 일단 어찌어찌 그걸 되돌려 받았지만…, 그때 감정을 내가 생생히 기억한다.


‘엄마가…, 힘들게 사준 크레파스인데.. 이렇게 막 쓰다니…’


너무 미안했다, 엄마한테. 어떤 마음으로 사줬을지 나는 아는데 훔친  나쁘지만 그래도 남의 것을 이렇게  쓰다니. 항상 무슨  있으면 엄마가 제발 그만 말하라고  정도로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는 ‘였지만 이건 나만 아는 일이다. 엄마가 모르는 어린이집의  번째 사건이 있다. 다들 어디서 그렇게 나에 대해 알아 왔는지나는 어린이집에서도 왕따였다. 아니,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이윤 생각보다 간단하다.


“넌, 아빠가 없어.”


손을 씻으러 가도, 풀장에서 놀아도 물건을 도둑질당해도. 그렇게 당해도 괜찮은 아이였다, 아빠가 없으니까.  언제나 눈치를 받으며 지냈고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다.

어느 날은 또래 아이들이 단체로 몰려와 내게 화풀이를 했다. 애들이 괴롭히던 무시를 하든 말든 신경  쓰거나 말에 따박따박 대꾸하니까 성질이 났는지 아무튼  둘러 서서 사정없이 밀쳤다. 오기에 붙인 내가 계속 일어나니 나중엔 머리를 부딪히게 밀어서 결국 울어 버렸다. 아빠가 없다는  죄가 아닌데,  엄마, 외할머니 그리고 내가 사랑한 외할아버지도 있는 아이인데 아빠가 없다고 밀치고 괴롭히고…,  혼자가 되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한  아닌가.  기억으론 당시 다니던 어린이집이  괜찮은 곳으로 이전을 하면서 환경적으로 많이 좋아지고 세분화된 반으로 교육열도  높아졌다. 그러나  그저 다니는 거에 대해만 생각했지, 공부를 같이 하거나 그런  싫어해서 수업시간이 되면 맨날 나보다 어린아이들 혹은 태권도 수업을 정말 좋아했다. 농땡이를  피워 선생님들한테 찍혔다.  생각해보면 이유가 따로 있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마주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선생님들도 딱히 잡는 척하기만 하시고 따로 어떠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물론 당연히 시도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한테 전화해 모든 부분을 문제 삼아 이야기하실 ,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엄마는 내가 공부  하는 거에 답답해서  그러냐고 다그쳐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입 밖으로 나올 말은 ‘아빠가 없어서 친구들이 괴롭혀.’ 평생 아플 테니까.


그러다 어린이집에서도 고학년으로 취급받았을  내게 아주 멋진 어른이 나타났다. 아니,  어른은 나의 어린이집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신 분이다.  투명인간이거나 괴롭힘의 대상인 내가  이상 도망치기 어려워 수업을 듣게 되었고 매시간마다 괴롭힘에도 굴하지 않으며 당돌하게 있다 반에서  권력이  어떤 여자애에게 샤프로 조금 세게 손등을 찍혔다. 피가 살짝 났는데 쫄거나 하지 않고 되갚아주고 똑바로 쳐다보며  목소리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순간 담임선생님이 오자  여자애는 우는 척하며 내가 괴롭혔다고 말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어린이집에선  번도  편인 사람이 없었으니까.


선생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고 혼날 것을 인지해 입을 꾹 다문 나와 자신이 당했다며 우는 애, 이 둘 사이에서 한 명을 호되게 혼냈는데 내가 아닌 그 여자애였다.

처음 있는 일이라 순간 어? 하며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내가 다 봤어, 너 괜히 얘 건들다가 샤프로 찍었잖아. 피가 나는 건 얘(‘나’)인데 네가 울어?”


마지막은 내가 웃고  여자애는  째려보는 것으로 그때  시간은 끝이 났다. 물론 나중에 그만큼의 대가를 친구들 사이에서 당했지만 딱히 크게 신경을  썼다. 항상 혼자여도, 항상 눈초리를 당해도  슬펐는데 어린 마음에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다가가 “고맙습니다, 선생님…” 인사했다. 선생님은 당연하며   아니라는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항상 혼자 지내는지 궁금해하지 않으셨고

그냥 그 얘기는 선생님과 나만의 작은 통로 같았다, 마음의 통로. 내가 궁금한 시계에 대한 이야기,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들을 주고받으며 한 1년은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 그 단발머리에 남색을 자주 입던 시크한 선생님이 아무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나의 친구였다.



이전한 어린이집에 간식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매일 다르게 제공이 됐다. 붕어빵을 먹는 날도 있었고 과자를 먹는 날도 있었다. 달콤한 간식이 주는 행복이  다들  시간만 엄청 기다렸다.  역시 그랬다.

아이들이 주는 눈치와 지루한 수업을 피하기 위해  ,   다니다 간식을 주는 모습을 보고 주변을 서성거리며 말도  하는 내가 선생님은 안쓰러웠나 하나 주셨다. 처음 받아서 먹어본 간식은 정말 달콤해  시간 즈음되면 간식 주는 곳을 방앗간처럼 다녔던 기억이 있다. 결국  매일  시각, 그곳을 찾아가 간식을 먹었다. 어느 시점이 되니까 정해진 양이 있었는데  때문에  하나가 부족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만!’ 하셨으나 이미 달콤함에 물든 나에게 ‘그만이란 단어는 통하지 않았고 간식을 정말 끊기 어려웠다. 그렇게 하나씩 먹던 간식이 매일 쌓여 어떤 시점부턴 선생님도 말리지 않았다. 그저 회심의 미소를 짓고 나에게 “맛있어요?” 물어봤다. 그날 저녁 하원할  원장님이 엄마를 부르셨고 어린이집에서 나온   엄마에게 혼났다.


“왜 자꾸 간식을 먹어? 너 때문에 간식비도 내야 하잖아!!!”


시무룩했다. 간식비를 내야 한다니… 나는, 다들 먹길래

나도 먹어도 되는  알았을 뿐인데. 간식이 맛있으니까, 선생님이 주셔서 하나  먹었던 내가 정말 크게 잘못한  같았다. 엄마가  말은 내가 간식을 먹어 빠듯한 형편에 짐이 되어 버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 내가 엄마한테  무게가 됐구나. 엄마의 얼굴이 나로 인해 일그러졌구나. 그리 생각하니 슬펐다. 내가 아무 말하지 못하고 시무룩하니 엄마는 한숨  쉬고 “이젠 그냥 먹어…, 엄마가 간식비도 냈어.”


방금까지 분명 엄마한테 미안해서 입을 꾹 닫았는데 그 한 마디로 활짝 웃으며 엄마의 손을 더 꼬옥 잡고 집에 갔다.

그 후론 더 당당하게 간식을 먹었다. 물론 그 전에도 당당하게 가서 요구해 먹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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