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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n 22. 2022

버리려 하는 자와 놓지 않으려 한 자의 싸움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면 혼자 덩그러니 있는 방의 형광등을 꼭 켰다. 그렇게 해도 무서워 엄마를 찾아다녀야 했다. 엄마가 늦게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리고 갔을지 모른다는 분리불안이 극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가끔 툭하고 버리고 간다는 말을 했었다. 그게 나에겐 정말 큰 공포였다. 가끔가끔 절실하게 행동하길 원하는 엄마의 감정을 읽고 나는 엄마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엄마가 극도로 싫어하는 행동으로 어떻게든 예쁨 받으려 했는데 그건 설거지하는 일이다. 퐁퐁을 야무지게 짜서 그릇을 깨끗하게 문지르고 거품을 씻고 했다. 키가 작아 싱크대가 안 닿아도 목욕용 의자를 이용해 서서 설거지를 했다. 문젠 손이 미끄러워 그릇을 하나씩 깨 야단을 크게 들었다. 매번 깨는 그릇으로 엄마는 설거지하는 내가 싫으셨다. 퐁퐁을 많이 써 싱크대가 거품으로 아무것도 안 보여서 더 혼내셨다. 매일 보는 엄마의 슬픈 표정을 볼 때마다 미칠 때도 있었다. 그러다 툭 던진 돌에 맞아 개구리가 죽는 것처럼 엄마는 장난으로도 버리고 떠난다는 소리를 해 난 매일 심적 고통이 굉장히 큰 아이였다.


설거지를 하지 말라고 엉덩이를 맞아도 한 이윤 이렇게 하면 엄마가 날 미워하는 걸 느끼지 않고 어떻게든 예쁨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서 시작됐다. 나에게 진짜 강하게 남은 기억이 있다. 실제로 엄마가 지칠 때로 지쳐서 날 버리고 가려한 것이다. 그때가 고작 6살 정도로 생각된다. 굉장히 어린 나이에 버림받을 뻔했었다. 나에게 지쳤다며 엄만 한 겨울에 흰색 롱 패딩과 백화점에서 산 가방 하나를 들고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그런 엄마를 붙잡고 싶어 동네가 떠나가라 울며 엄마의 가방을 내가 온 힘을 잡아 계속 대치했다. 그때 내가 엄마를 어떻게, 무엇으로 지쳤는지 모른다. 엄마를 지치게 했다는 자괴감이란 감정도 있으나 혼자 엄마를 기다리며 느낀 외로움과 슬픔이 앞으로 평생 이어질 것 같고 엄마가 없는 나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매일 어두운 방에서 있다 엄마가 오면 불을 켜거나 겨우 무서움을 달래던 시간이 늘 고통인데 엄마가 날 버리려 했다. 내 체감상 최소 2시간은 엄마의 가방을 온 힘으로 잡아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추운 겨울에 엄마의 옷을 잡으면 떠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겨 가방을 놓고 빠르게 엄마의 흰 롱 패딩을 껴안았다. 이 정도로 오랜 시간 대치를 하고 패딩을 잡았으니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 잘못된 판단이다. 내가 엄마의 패딩을 잡고 늘어지려 하자 작정하고 기다렸다는 듯 바로 패딩을 허물 벗는 듯 벗어 떠나려 했다. 너무 놀랬고 충격이었으며 무서웠다. 당장 한 발만 더 떼면 대문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벗겨진 흰색의 롱 패딩을 얼른 바닥에 두고 가방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엄마,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절 두고 가지 마세요!!


울고 또 울고 빌고 또 빌었다. 엄마와 키운 메추리도 날 떠났고 엄마와 같이 한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 같아서…, 엄마는 정말 장난이나 협박이 아닌 날 떠날 작정을 하고 영하의 온도에도 패딩을 벗어던지며 발걸음을 옮겼기에 나는 패닉이었다. 따뜻하게 입은 엄마와 달리 패닉 상태에서 살려달라, 잘못했으니 가지 마라 하는 난 내복 한 장 걸친 채 영하의 온도에서 울며불며 애원도 아니고 그냥 바짓가랑이를 잡고 어떻게든 해보려 무릎도 꿇고 했었다. 한참으로 그렇게 있으니 엄마가 하, 하는 한숨과 함께 다신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곤 패딩과 가방을 챙겨 집으로 다시 들어갔고 나도 맨발로 따라 들어갔다. 무엇을 다신 그러지 말라는 건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심지어 지금은 엄마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후론 내 분리불안은 더 극도로 심해지며 모든 것을 조심했다. 내 행동에 엄마가 분노를 느끼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하나 둘 엄마가 만들어 놓은 상황과 환경에 나를 잃어가며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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