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셜리 Jun 13. 2022

선택의 몫은 타인이 아니다.

엄마의 연애와 결혼





생각해보면 어릴 때 엄마 주변에 남자가 많았다. ‘친구’라는 이름의 남자, ‘아는 남자’ 등등 나는 그들을 삼촌이라 불렀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삼촌도 있었지만 그중에 특별히 어린 내가 봐도 엄마를 참 좋아했던 삼촌이 있었다. 그 삼촌은 그때 내 눈에도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선물을 사주거나 하지 않아도 항상 엄마의 곁을 지켰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다들 일을 제쳐두고 달려왔다. 이사를 해야 할 땐, 흰색 트럭을 빌려왔다. 내가 기억한 삼촌은 트럭에 걸쳐 앉아 바람을 맞으며 패션감각을 뽐냈다. 이사하는데 흰 티를 입고 멋지게 연청의 청바지를 입었다.


짐이 많은데…, 다 옮겨야 하는데….


그땐 삼촌의 그 패션이 멋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 멋지지만 굳이 그래야 했나 싶다. 패션도 패션이지만 삼촌의 매력이 따로 있었다. 나와 엄마에게만 한정된 자상함과 다정함이다. 가끔 속이 보이는 행동도 했다. 내 생일이 되거나 조금 특별하게 여러 사람과 만날 때 꼭 삼촌은 나를 따로 불러 가장 비싸고 갖기 어려운 것을 직접 구매해서 그 자리에서 선물해줬다. 그게 어린 내가 그걸 받으면서 생각한 말이 있다.


‘흥, 속이 너무 뻔하잖아. 엄마한테 잘 보이려는 수작이네.’


정말이다, 저렇게 생각해도 웃으면서 “삼촌 감사해요~.”라 말하고 삼촌이 엄마한테 말 잘해달라고 부탁하면 선심 쓰는 척 말하곤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한다.

아이는 어려도 알 건 다 안다는 것이다. 삼촌이 그렇게 말했기에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른과 달리 아이의 눈엔 작은 것도 크게 보여 잘 알게 된다. 삼촌은 늘 언제나 정말 대놓고 엄마에게 표현했지만 엄마는 매몰찼다. 아닌가, 잔인한 건가? 삼촌이 필요할 땐 엄마는 고민도 없이 삼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럼 또 역시 삼촌은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달려왔다. 매번 이사할 때가 되면 트럭을 빌린 것처럼. 내가 다니는 어린이집 학부모 총회가 있었는데 거리가 멀고 일하다가 잠깐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때도 삼촌은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빌렸고 나와 엄마는 그 삼촌 등 앞, 뒤로 타고 간 기억이 있다. 무사히 도착했는데 엄마는 형식적인 말로 인사만 하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그런 엄마가 뭐 좋다고 대체 그리도 달려오시는지…


어릴 적 나에게 엄마는 맞선 자리, 소개팅 등 꼭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도 삼촌은 알고 있어도 헌신적이었다. 그래서 내 눈엔 삼촌이 어떤 조건이라도 엄마를 끝까지 쫓아다니며 결국 아빠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물론 나도 삼촌이 좋아서 내 아빠였으면 한 적이 많다. 아쉽게도 실질적인 아빠 자리는 엄마가 허락하지 않으셨다. 선 볼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간 엄마는 늘 나에게 물어본 말이 있다.


“저 사람은 어때?”


대부분 상대가 자리를 비울 때 물어봤는데 대놓고 물어본 적이 간혹 있다. 그게 아마 상대를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장난식으로 물어본 척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엄마는 자신 앞에 앉은 남자가 마음에 안 들어 내 핑계를 한다는 사실을. 눈치가 있는 난 엄마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면 이 이상의 관계 유지는 안 했다. 웃기게도 엄만 그런 자리에 날 데려가서 상대방에서 우리 사진을 찍게 했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고급 레스토랑 또는, 어디 고급 승용차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 그때 탄 승용차 속 날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 차 내부에 찍힌 간식 등의 사진을 내 어린이 때 추억인 척 지금도 엄마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게 엄마가 당시 어떤 남자 만났을 때 기록해주는 하나의 장치 같은 거다. 한 번 보고 찬 사람도 있듯 에프터로 꽤 만난 사람도 있었다. 내 기억에 강하게 남은 사람이 있는데 몇 번 만남을 갖고 나랑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 그 남잔 초대형 유람선이 있는 외각 바닷가에 데려가 구경시켜줬다. 이 사람이 고급 승용차를 가진 사람이다. 체구가 큰 곰인형같이 좋았는데 허세가 있었다. 고급 차를 타게 하고 마치 내 눈앞에 있는 멋들어진 유람선을 태울 것처럼 굴다가 곰인형 아저씨도 결국 엄마의 도피로 더 이상 연락되지 않았다.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놓고 나에게 물어봤고 난 그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것으로 대부분의 관계가 끝났지만 상습적인 방법은 무조건 연락을 안 받고 전화가 울려도 신경 안 쓰며 피하는 것이 거부 표현이다. 성인이 돼서 생각해보면 진짜 나빠도 이렇게 나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수많은 남자를 걷어 차고 당당하게 사는 척했지만 누구보다 회피적인 엄마에게 마지막 남자가 찾아왔다. 엄마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가 결혼한 계기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병원에서 만난 외할머니와 지금 새아빠의 엄마이신 친할머니. 둘은 병원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외할머니 눈엔 ‘남자에겐 인기 없는 우리 엄마’, 친할머니 눈엔 ‘노총각으로 평생 살 것 같은 새아빠’를 서로 맺어 주고 싶어 하셨단다. 그래서 두 분은 꾀를 내셨고 병원에서 엄마와 지금의 아빠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 하셨다. 두 분은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단 둘이 만나다 엄마가 날 소개했고 아빤 엄마도 좋았는데 날 보고 더 좋아하신 눈치였다. 엄마와 아빠는 나와 같이 만나는 시간 외에도 생각보다 꽤 오래 만나셨다. 어느 날은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셨다. 그리고 그날, 나에게 보라색 구슬로 된 목걸이를 선물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보라색 구슬 목걸이를 찬 사진이 있는데 둘째 이모 식구들과 어린이공원 같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며 찍은 사진이다. 내 목에 길게 주렁주렁 달린 보라색 구슬 목걸이 메고 햇빛이 강해 찡그린 모습이었다. 나중에 커서 보니 그 사진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둘째 이모는 지금보다 더 욕심과 시기 질투가 많으셨는데 엄마는 그 심보를 항상 어떻게든 건들까 내심 궁리한 적이 많았다. 처음 그 목걸이를 한 날이 둘째 이모 식구들과 자전거 타러 놀러 간 날이라니, 엄마의 속이 뻔하게 보이더라. 그때 그 목걸이를 하고 나타난 날 보며 이모와 사촌언니, 동생 모두 그거 어디서 났냐, 네가 어떻게 그런 걸 갖고 있냐 등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엄마가 “아휴~, 글쎄 그 사람이 주지 말라고 거절해도 줘서 얘가 오늘 이걸 꼭 하고 가야겠다는 거야… 한바탕 하다가 ‘알아서 해!’ 하고 냅뒀어.” 능글스럽게 이겼다는 듯 기뻐하는 내색을 애써 감추며 말하는 엄마가 생각나 그 사진을 보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아빠의 선물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있었지만 내 마음을 정말 크게 감동시킨 노란색 리본핀이다. 혼자 엄마가 일하는 곳을 가는 언덕길에 작은 액세서리 가게가 있었는데 그 문에 걸린 노란색 리본핀이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도 보이고 엄마 만나러 갈 적에도 보이고 항상 갖고 싶어서 사달라고 고집부려도 가질 수 없는 핀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그 가게로 날 데리고 가셨다. 물론 옆에 엄마도 있었다. 그리곤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며 내 의견을 물어보셨다. 나는 당연히 그 노란 리본핀을 가리키며 사달라고 했고 아빠는 쿨하게 ‘이거 주세요.’ 그렇게 아빠는 그 핀 하나로 나의 환심을 제대로 샀다. 매일 밤 엄마와 아빠는 통화를 했고 꼭 마지막엔 나와 통화를 했는데 연애기간이 지날수록 아빠는 나에게 “아빠”라고 불러 달라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쑥스럽다, 부끄럽다 등의 말로 대충 변명 후에 전화를 끊어 아빠가 포기할 때쯔음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했고 놀란 아빠가 “어…?” 당황하자 키득키득 웃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당시 살면서 처음 말해본 단어, “아빠”는 노란 리본핀을 사준 이후 자연스럽게 아빠는 나의 아빠가 되었다.


고질병은 고질병인가 보다.


연애 잘하시다가 엄마는 중간에 또 잠적을 선택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상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밤이 되면 n통씩 오는 전화를 무시하셨다. 아빤 정말 받을 때까지 매일 하셨다. 하루는 매일 몇 번이고 울린 전화의 이름을 보고 핸드폰을 가리키며 “왜 안 받아?”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누군지 안다는 듯 쳐다도 안 보고 날 안고 잘 준비를 하며 단호하게 말하셨다.


“받지 마, 신경도 쓰지 마.”


싫으면 싫다고 거절하면 되는데 왜 항상 잠적, 연락두절을 선택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하도 울린 전화에 내가 지쳐 엄마 몰래 받았고 결국 난 또 호되게 혼이 났다. 지금의 결말을 알고 과거로 되돌아가면 난 또 똑같이 전화를 받을 것이다. 왜냐면, 전화를 쉬지 않고 한 아빠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셨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아빠가 연락두절인 적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아빠에게 집착을 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너무 외롭고 엄마가 대체 어디서 일하는지 몰라서 심심해 죽으려 할 때였다. 정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내가 인정한 아빠니까. 보고 싶어서 수신자 요금 부담서비스인 콜렉트콜로 받을 때까지 전화해 내 전화에 지친 아빠가 밤에 엄마한테 고자질한 적이 있다.


그렇게 둘은 ‘나’라는 매개체로 또다시 연애를 이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결혼하기 전 엄마와 아빠는 서울과 광주라는 장거리 연애를 하셨는데 서울에 사는 우리를 보러 아빠가 버스를 타고 오셨고 그런 아빠를 반기기 위해 엄마와 난 마중을 나갔다. 그때 엄마 신발들 중 가장 화려한 빨간 큐빅이 나열된 샌들 형식의 힐이 있었다. 엄마가 가장 애정 하지만 아껴서 안 신는 신발. 빛만 받으면 여기저기 반사를 한 통에 그 힐을 신고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가 꼭 한 말씀하시는 신발이다. 아빠를 만나러 갈 때 그 힐을 꺼내 신으셨는데 누가 봐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꾸미고 나간 모습이었다.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아빤 날 보자마자 어화둥둥 안고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순위에서 밀린 엄마가 삐진 목소리로 자길 봐달라고 하니 아빠가 딱 한 마디를 하셨다. 그 말을 들은 엄마가 제대로 삐져서 그 후로 그 신발을 꺼내지 않았다.


‘발이 왜 이렇게 못생겼어?’


내가 엄마였어도 다신 안 꺼낼 것 같다. 하여간 아빤 여자를 모르는 사람이다. 예쁘게 보이려 백화점에서 산 힐인데, 아빠와 하루 종일 그 힐을 신고 데이트한 엄만 괜찮냐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광주행 막차를 타는 그 순간까지 발이 못생겼다며 놀림만 받았다. 난 어땠냐고? 발이 못 생겼다는 말에 웃어 그 하루는 엄마의 눈치를 피할 수 없었다. 데이트가 일반적인 데이트가 아니었다. 내 수준을 맞추려 무슨 동굴을 가고 사진도 찍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그때 진짜 재미가 없었다. 유일하게 재미있던 순간은 아빠가 버스를 타기 전 캐릭터 시계를 사줬을 때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아빤 여자의 마음을 모르지만 여자아이의 마음도 몰랐다. 내 나이 때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비비인형을 정말 좋아했었다. 난 그런 인형이 하나도 없어, 아빠에게 항상 비비인형을 사달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빠는 인형이면 다 같은 인형이라 생각했나 그때 유행한 토끼 캐릭터가 있었는데 대왕 큰 토끼 인형을 선물해줘 “이거 아냐!!”하며 내가 인형을 두들겨 팼다. 나중엔 그 인형도 엄마의 아랫 동생 큰 딸에게 뺏길까 봐 숨기고 다녀야 했다.


그날은 장거리 연애를 하다 드디어 외할아버지에게 결혼 승낙받으러 외가에 온 날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외할아버지는 아빠가 마음에 안 드셨고 반대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말로 그렇단다. 일부는 믿는다. 엄마랑 광주에 오면 외할아버지가 엄마가 못 나가게 대문을 틀어막으셨고 엄만 그걸 못 참아 이모의 도움으로 신발을 들고 창문을 넘어 아빠를 만나러 가셨다. 창문 넘어 만나러 갔다는 그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 할아버지가 망연자실해 한 표정을 유심히 본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빠를 만나러 간 날의 밤이 되면 엄마는 꼭 손에 무언가 많은 것을 가지고 오셨고 방에서 혼나셨다.


철없는 난, 날 빼고 아빠를 만나러 갔다는 사실에 배신감에 절어 있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미꾸라지처럼 도망가 만나는 모습에 할아버지는 백기를 들었다.


“그래…, 너 알아서 해.”


백기 든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만나 당신의 딸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며 나와 가정을 어떤 책임을 지고 살 것인지에 대해 한두 시간 가량 까다로운 면접을 봤으며 그날은 제대로 나에게 비비인형을 선물로, 엄마와 아빤 결혼을 하셨다. 그렇게 난 서울이 아닌 광주로 내려가 새로운 생활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전 03화 버리려 하는 자와 놓지 않으려 한 자의 싸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