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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8. 2022

적은 게 많은 거보다 나아, 정말?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끝판왕

패션 시계도 그렇지만 디자인을 하다 보면 자꾸 이것저것 추가하기 마련이다. 그 반대로 디자인하는 것이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모토가 'Less is More'이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라고 하면 융한스의 막스 빌과 독일 글라슈테의 노모스가 먼저 떠오른다. 시계를 소개할 때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이 등장하는 시계들이다.


심플한 시계를 선호하는 소비자라면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던 독일의 시계 회사들인 NOMOS의 탄젠트와 Junghans의 막스 빌은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바우하우스의 모토처럼 참 단순한 디자인이다. 얼마나 더 단순해질 수 있을까?


바우하우스의 끝판왕이라고 할 '모바도의 뮤지엄 시계'가 있다. 그런데 적어도 너무 적어서 고생했던 시계이다. 그리고 바우하우스의 모토와 달리 조금씩 더 보태자 베스트셀러가 된 시계다.



이 시계를 디자인한 나단 조지 호윗(Nathan George Horwitt, 1898-1990)은 산업 디자이너였다. 디자인 초기부터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던 호윗은 시계 다이얼에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제거하는 방식으로 뮤지엄의 디자인에 도달했다고 한다. 뮤지엄의 다이얼은 12시에 둥근 점 하나 남긴 것이 전부인 것이다. 12시의 점은 정오의 태양이었을까?


이 시계는 시계 브랜드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된 시계가 아니다. 도리어 이를 처음 디자인하여 수많은 시계회사들에게 상품화를 의뢰했던 나단 조지 호윗은 실패만 맛보며 자신의 자금으로 3개의 샘플을 만들게 된다. 결국 호윗이 디자인한 지 13년 후에야 스위스의 시계 회사 모바도가 상품화 제의를 받아들여 판매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나단 조지 호윗은 유대인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나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뉴욕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의 'Art Student League'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프리랜서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베타 의자(Betha Chair)', '테두리 없는 유리 액자' 등을 디자인했고 테두리 없는 유리 액자가 200만 개나 팔리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의 이름은 모바도 뮤지엄 시계의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있다.



호윗은 디자이너를 꿈꾸었지만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라이터로 1920년대를 보낸 후 1930년 'Design Engeers Inc.'라는 회사를 차려 혼자서 탁상시계, 라디오, 램프, 냉장고 등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매샤츄세츠 레녹스에서 400 에이커의 농장을 구입하여 마지막 40년간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뮤지엄 시계를 디자인하기 전인 1939년에 다이얼의 중앙에 시간을 표시하고 외각을 회전하는 원형 구멍에 분이 표시되는 싸이클록스(Cyclox)라는 탁상용 시계를 디자인했었다. 1947년 뮤지엄 다이얼의 디자인을 완성한 후 호윗은 제네바를 방문하여 바쉐론 콘스탄틴에 자신이 디자인한 시계를 상품화할 것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다. 제품화가 지연되자 1956년에는 미국 특허청에 의장등록을 신청했으나 '디자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며 거절당했다가 2년 후에 간신히 등록을 마친다.


1958년 당시 미국의 바쉐론 콘스탄틴과 르 쿨트르의 연합법인이었던 '바쉐론 콘스탄틴-르 쿨트르'에 의뢰하여 화이트골드 금시계로 3개의 프로토타입을 제조하게 된다. 다이얼은 블랙 에나멜 다이얼에 12시에 금색 혹은 은색의 점 하나를 표시하고, 시계 바늘도 은색이었다. 


결국 자신이 희망하던 바쉐론 콘스탄틴에서 주문 제작한 3개의 고급한 샘플들을 제시하며 1958년에서 1960년 사이 스위스와 미국의 여러 회사들과 다시 상담을 하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이 너무 없었던(?) 탓에 '과감하고 미래적'이라는 이유로 모두 거부되었다. 결국 13년간의 힘든 과정을 거쳐 1960년에서야 미국의 모바도에서 출시하기로 하여 오랜 기다림 끝에 제품화에는 성공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주문 제작한 1번 시계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하여 1960년부터 전시되고 있다. 이 디자인으로 고가의 시계를 만들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미국의 모바도 브랜치는 스위스 본사에서 무브먼트만 들여와 미국 내에서 다이얼과 케이스를 만들어 소량 제조하여 판매하였다. 시계 판매가 부진하자 호윗이 모바도가 선전 비용을 너무 아낀다며 불만을 털어놓게 된다. 찝찝해진 모바도는 1962년 호윗의 시계가 뉴욕현대미술관에 진열되어 있다는 이유로 '뮤지엄'이라는 이름을 붙여 잡지를 통해 선전하게 된다.


이때 마케팅을 위해 선정된 이름이 '뮤지엄 와치'였고 이 시계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모바도를 인수하여 모바도 그룹을 창업했던 그린버그가 이 시계의 상품성을 처음 확신하게 된다. 호윗의 디자인이 인정받는 데 36년이나 걸린 것이다. 다행히 호윗이 죽기 전이었다. 말년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호윗은 행복했을까? 현재 호윗의 이름은 뮤지엄 시계의 디자이너로 남아 있다.



그린버그는 1983년 모바도를 인수하고 대표 모델로 뮤지엄 시계를 선택한 후, 천문학적인 금액을 광고에 투자하여 뮤지엄 다이얼을 모바도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나갔다. 1987년에는 '모바도 뮤지엄 디자인 국제 회사'를 설립하여 벽시계, 탁상용 시계, 문구, 액세서리, 가방, 주얼리와 피혁 제품까지 만들어 모바도 상점은 물론 백화점에도 납품했다. 1988년에는 뉴욕에 모바도의 제품만 판매하는 전용 상점도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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