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텍 필립과 롤렉스
'당신은 파텍 필립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돌보고 있을 뿐입니다.'
파텍 필립을 상징하는 선전 문구이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시계이니 비싸게 샀더라도 억울해하지 말고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착용하라는 말일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파텍 필립은 중고가 되어도 가격이 많이 내려가지 않는 시계이다.
파텍 필립의 디자인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932년에 처음 출시한 '칼라트라바' 디자인(Ref. 96)을 지금도 만들고 있는 회사이다. 칼라트라바는 파텍 필립을 상징하는 마크의 이름이다. 시계 디자인에 넘버(Ref. 5196 등)만 붙여서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칼라트라바도 시대에 따라 그 디자인이나 사이즈가 조금씩 변화했다.
파텍 필립보다 심한 경우가 롤렉스이다. 1945년에 처음 만든 '데이트 저스트'는 정말 디자인 하나 변하지 않고 사이즈며 이름까지 그대로 지금도 판매하고 있다.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결혼 예물의 정석으로 통하는 시계가 '데이트 저스트(Date Just)'이다. 남자용 데이트 저스트의 36 밀리 사이즈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판매되고 있다. 80년이면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세대가 롤렉스 매장에서 정말 똑같은 시계를 고르게 된 시계이다. 몇 세대까지 이 전통이 이어질지 가장 궁금한 시계다.
바우하우스의 모토와 달리 롤렉스의 매장에서 시계를 고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다들 경험하는 일이지만 more is better이다. 날자창이 없는 '오이스터 퍼페츄얼', 날자창을 가진 '데이트 저스트', 날자창과 요일 창을 가진 '데이-데이트'의 순서로 고급 모델이다. 같은 모델이면 콤비, 18K 통금 모델, 텐 포인트 다이얼, 다이아몬드 베젤이 추가될수록 롤렉스는 비싸지게 된다. 매장에서 예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게 만들고 구입한 다음에 more가 더 좋은 선택이었을 거라고 후회하게 만드는 브랜드이다.
바우하우스의 Less is More는 제품 종류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었다. 오메가는 제품이 가장 다양한 브랜드다. 오메가의 상징적인 제품인 스피드 마스터의 한 분류인 '스피드 마스터 프로페셔널(Moonwatch)' 모델 한 가지만 해도 책 한 권은 읽어야 이해가 되는 시계이다. 오메가의 역사는 설립연도 이후 시계의 역사다. 롤렉스는 반대로 가장 단순한 브랜드다. 결국 100년 전쟁을 통해 현재까지는 롤렉스가 승리자이다.
하지만 예물 시계를 고르는 입장이 아니라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컬렉터라면 롤렉스보다는 오메가야 말로 수집할 매력이 넘치는 브랜드이다. 시계 대학의 입학시험을 시계의 역사만으로 치르다면, 오메가는 난이도 조절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브랜드이다. 파텍 필립의 매장을 방문했다가 디자인이 지루했다는 소비자라면 비슷한 프레스티지를 가진 바쉐론 콘스탄틴을 방문하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롤렉스 vs 오메가, 파텍 필립 vs 바쉐론 콘스탄틴은 취향의 문제이다. 다채로운 디자인? 변함없는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