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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9. 2022

시계, 이쁘면 그만이지!

패션 액세서리에서 럭셔리 제국으로

1968년 미국 최대의 시계 회사였던 블로바는 '크리스찬 디오르 컬렉션'이라는 명칭으로 블로바와 크리스찬 디오르의 더블 네임 시계를 출시하게 된다.



블로바는 디오르 컬렉션 출시를 위해 Dior의 디자이너들과 만나 상담하던 상황을 첫 번째 Dior 컬렉션을 출시하며 광고 문구에 담았다. 당시 블로바는 어큐트론의 성공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곳이었다. 패션 브랜드인 Dior에서 어떤 수준의 시계들을 고르게 될 지 몰라 어큐트론과 기계식 시계 등 다양한 컬렉션을 가지고 갔다. 



쿼츠 혁명 이전의 시계 가격이란 시계의 재질은 물론 정확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제품이었다. 시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디자이너들에게 무브먼트와 재질의 종류에 따라 가격을 설명하면 어느 하나의 제품군을 선택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Dior 디자이너들은 블로바에서 가져간 시계들의 디자인만 보고 여러 제품군에 속하는 시계들을 고르는 것이었다. 특히 시계의 가격을 결정하는 정확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블로바 영업담당자는 Dior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블로바에서 제조한 Dior 컬렉션을 판매한 지  3년 후인 1971년 디오르는 블로바에 50가지의 디자인을 보내며 자신들의 디자인대로 시계를 제조해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한 쪽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비대칭적인 디자인이었다. 시계의 역사에도 1920년대 '아르 데코의 시대'에 다양한 디자인이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모양은 달라도 다 대칭이었다. 시계 다이얼과 같은 색의 가죽 밴드를 사용한 것이며 품위 없게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기존의 시계에서는 사용한 적이 없던 원색의 밴드를 사용한 시계들이었다.


블로바에서 1970년까지 3년간 만든 초창기의 Diro 시계가 블로바가 제조하는 시계들 중에서 고른 것이라면 1971년에 등장하는 디오르 시계들은 기존의 시계들과는 전혀 다른 디오르만의 디자인 시계로 변화하게 된다. 디오르의 시계란 Dior 부띠끄에서 판매하는 액세서리의 하나였으므로 시계를 자신들의 패션에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Dior에 의해 시계가 패션의 일부가 되었다. 보석 브랜드의 시계 처럼 고가로 구입하여 평생을 사용하는 시계가 아니라 패션 의류처럼 유행이 지나면 버리는 시계였다. 그런 시계를 보석이나 귀금속으로 만드는 것은 넌센스이므로 스텐레스며 도금 시계들이 등장하며 보석 시계들보다 저렴해 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오르의 시계들은 패션 시계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다. 파텍 필립의 선전문구인 자손에게 물려주어 세대를 넘어 착용하는 시계가 아니라 패션과 함께 변화하는 시계였다.


디오르 이전에도 카르티에, 티파니, 불가리 같은 보석 브랜드들이 귀금속 제품과 함께 시계도 판매했었지만 패션 업체에서 액세서리의 일부로 시계를 판매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디오르는 패션 시계의 원조로 여겨지고 있다. 디오르는 또 다른 원조가 될 운명이었다.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 'LVMH 그룹'이 Dior에서 시작된다.



1984년 프랑스의 젊은 기업가인 베르나르 아르노(1949-)가 브삭 세인트 프레레를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1971년 22살의 아르노는 프랑스의 명문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설회사인 페레-사비네트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아버지를 설득하여 건설 부분을 매각해 버리고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게 되며, 1978년에는 사장으로 취임한다. 그리고 6년 후인 1984년 아르노는 프랑스 정부와 은행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브삭 세인트 프레레라는 직물과 패션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대기업의 매각에 참여하여 1 프랑의 상징적인 금액으로 인수하게 된다.


브삭 세인트 프레레는 1947년 크리스찬 디오르의 창업을 도우면서 크리스찬 디오르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아르노는 브삭을 인수한 후 'Dior'와 르 봉 마르쉐 호텔을 제외한 다른 자산들을 모두 정리하고 9,000명의 직원을 해고하여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아르노는 그 후 지방시 등 향수를 중심으로 회사들을 인수하던 루이뷔통, 코냑과 술을 중심으로 회사들을 인수하던 모에 헤네시와 투자그룹을 만들어 1987년 LVMH 그룹을 설립한다. LVMH라는 그룹명이 만들어진 이유이다. 


당시 아르노의 지분은 루이뷔통과 모에 헤네시에 비해 매우 적었다. 그러나 그룹의 주도권을 쥐려는 루이뷔통과 모에 헤네시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아르노는 영국의 맥주회사 기네스의 투자를 받아 이들의 지분을 인수하여 LVMH 그룹의 회장이 되며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LVMH 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후 아르노는 M&A를 통해 80개에 이르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을 차례로 인수하여 '럭셔리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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