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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30. 2022

얇은 건 어려울걸?

쿼츠와 기계식의 얇은 시계 만들기 경쟁

쿼츠 시대에 기계식 시계가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1976년 스위스의 진 라슬(Jean Lassale)이라는 상표로 피아제의 얇은 시계 기록을 경신하는 시계가 등장하게 된다. 진 라슬은 1976년에 설립되어 그해 4월의 바젤 페어에서 이 시계와 함께 처음 등장한 브랜드였다.


이 시계에 사용된 무브먼트는 1970년 피에르 마티스라는 라쇼드퐁의 시계기술자가 발명한 무브먼트였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무브먼트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볼베어링을 이용하며 하나의 플레이트에 부품들을 직접 조립하는 방식으로 수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1200은 두께 1.2 밀리에 불과했고, 같이 개발된 자동 무브먼트인 칼리버 2000은 2.08 밀리였다. 덕분에 완성품 시계의 두께가 5밀리도 안 되는 얇은 시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진 라슬이 개발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수동과 자동 시계는 1976년 바젤 페어를 시작으로 제네바 살롱의 그랑프리와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77년에는 뉴욕의 엑스포 77에 출품되어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 라슬의 등장을 보며 일본의 세이코와 시티즌 사이에 정확한 쿼츠와 디지털시계를 넘어 쿼츠 시계를 얇게 만드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세이코가 진 라슬의 전부로 여겨졌던 특허며 제조권을 모두 포기하고 브랜드를 구입했던 이유일 것이다. 슬림한 시계는 세이코가 기계식 시계를 만들던 시절에 결코 스위스를 이겨보지 못한 유일한 분야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만년 이인자에 머물렀던 시티즌이 쿼츠로 진 라슬을 넘어서는 얇은 시계를 개발하여 1978년에 무브먼트 0.98 밀리에 시계 두께 4.1 밀리의 'Exceed'라는 가장 얇은 쿼츠 시계를 발표했다. 시티즌한테 뒤지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던 세이코는 1978년 시티즌의 발표에 뒤이어 즉각 총 두께 2.5 밀리의 쿼츠 시계를 발표한다. 그러자 티파니는 1978년 11월 뉴욕타임스에 새로운 기록을 세운 이 시계를 7명에게 판매한다는 광고를 내게 된다.



미국의 그린버그는 자신이 미국의 독점 판매권을 가진 피아제와 콩코드를 비롯하여 스위스 시계의 우월성을 믿어 의심치 않던 사업가였다. 그는 일본의 적극적인 쿼츠 개발을 지켜보면서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스위스 브랜드들의 대응에 답답함을 느끼며 스위스의 무브먼트 개발회사인 ETA를 방문하게 된다. 당시 스위스는 자금력이 충분한 롤렉스 같은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는 ETA를 중심으로 쿼츠 무브먼트가 개발되고 있었다. 그린버그는 이 상태로는 일본에게 미국 시장을 완전히 빼앗기게 될 거라며 각성을 촉구하며 일본과 쿼츠 기술로 정면 승부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세이코보다 얇은 시계를 만들어준다면 그 시계를 미국 시장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대가로 20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로써 1976년 쿼츠로는 도달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진 라슬의 1.2 밀리의 무브먼트에서 시작된 얇은 시계에 대한 도전이 세계에서 가장 얇은 쿼츠 시계를 만드는 쿼츠 개발 전쟁으로 변경되어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1979년 10월 ETA에서 시계 케이스에 무브먼트를 조립하는 대신 시계 다이얼의 뒷면을 무브먼트 기판으로 사용하여 세이코보다 얇은 시계가 만들어졌다. 그린버그가 ETA가 체결한 계약에 따라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콩코드에서 데릴리움(Derilium)이라는 이름으로 독점적으로 발매된 이 시계는 무브먼트가 아닌 시계의 전체 두께가 1.98밀리였다. 그리고 데릴리움 2, 3, 4로 차례로 발표된 데릴리움의 마지막 버전인 데릴리움 4의 두께는 0.98밀리에 불과했다. 손목에 차고 힘이라도 과하게 주면 망가지는 수준의 얇기였다. 세이코와 시티즌도 이쯤에서 경쟁을 접게 된다. 이로써 쿼츠 기술에서는 일본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였던 스위스의 쿼츠 시계는 적어도 얇은 시계 제조에서는 일본을 앞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린버그와 계약대로 이 시계는 미국 시장에서는 콩코드의 데릴리움으로 발표되었지만, 유럽 등 다른 시장에서는 론진, 에터나 등의 쿼츠 시계로 발매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시장에서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이 시계들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이 시계는 '콩코드의 데릴리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콩코드의 그린버그는 데릴리움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모바도를 인수하여 모바도 그룹을 만들게 된다. 결국 얇은 시계 전쟁에서도 쿼츠가 기계식 기술을 넘어서며 승리를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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