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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Oct 28. 2022

디자인, 디자인, 디자인

전쟁 후 손목시계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해밀턴은 미국의 대형 시계회사였지만 2차 대전 중 군사물품을 생산하느라 시계 생산은 중지한 상태였다. 전쟁이 끝나자 중립국이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스위스 시계들이 미국 시장을 장악해 버렸던 것이다.


해밀턴은 전시에 개발된 전기 기술을 이용해서 스위스에서 만들지 못하는 새로운 손목시계를 만들기로 했다. 전기 시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에는 수정(quartz)의 진동을 이용하는 대형 전기 시계까지 발명되었다. 하지만 탁상시계까지는 몰라도 손목시계의 사이즈로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 미국의 해밀턴과 엘진, 프랑스의 LIP, 독일의 융한스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강대국들을 대표하는 시계 회사들이었다. 전쟁 전에는 대형 시계 회사들이었지만 해밀턴처럼 군수물자를 만드느라 시계를 만들지 않았던 회사들이다. 이 회사들이 스위스 시계와 경쟁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전통적인 태엽 대신에 배터리를 사용하는 시계였다. 진자시계의 진자에 해당하는 밸런스에 전기적인 자극을 가하여 진동시키는 방식이었다. 오랜 연구를 통해 기계식 시계(2~5 헤르츠)와 비슷한 2.5 헤르츠로 진동했다. 해밀턴은 기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1952년 기존의 손목시계들과 달리 배터리로 작동하는 획기적인 시계를 개발 중이라고 발표도 했다.


미국의 엘진과 프랑스의 LIP에서도 1952년 전기시계의 개발을 발표했으면서도 이런저런 문제로 공식 출시는 지연되고 있었다. 개발 속도가 비슷했던 경쟁자들에게 뒤처지기 싫었던 해밀턴에서 1957년 서둘러 신제품 시계를 발표한 것이다. 


리처드 아비브와 그의 디자인


1957년 첫 번째 무브먼트인 해밀턴 500에 대한 수리 매뉴얼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호텔에 기자들을 모아 세계 최초의 전기 시계를 발표하게 된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이에 대한 기사를 썼고, 벤츄라로 대표되는 해밀턴의 전기시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아직 시험적인 제품이었지만 스위스 시계가 미국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 서둘러 발표해서 스위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어야 했다.


해밀턴은 유명한 산업 디자이너 리처드 아비브(Richard Arbib, 1917-1995)에게 시계 디자인을 맡겨서 최초의 전기시계 '벤츄라'를 발표했다. 배터리 시계가 처음이었으므로 기존의 시계와 다른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했고, 리처드 아비브는 자동차 등 미래형 디자인으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다.


해밀턴의 벤츄라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다이얼에 전기 표시를 한 삼각형의 비대칭적인 디자인이었다. 손목시계에서 처음 보는 디자인이었으므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 미국 최고의 미남이자 가수였던 엘비스가 영화에 출연하며 이 시계를 사용했다. 영화 외에도 공연 중에서 이 시계를 착용하면서 현재까지도 '엘비스의 시계'로 부르기도 한다. 디자인도 독특했고 엘비스 덕분에 유명해져 출시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실생활에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지 충분한 확인을 거치지 않은 탓에 시계들은 발표되자마자 대부분 고장이 나서 판매점과 서비스센터로 되돌아왔다. 아직 수리 매뉴얼조차 만들지 않았으므로 해밀턴의 수리센터에서도 수리가 불가능했다. 해밀턴에서 잦은 고장을 해결하기 위며 1961년에 개발한 것이 해밀턴 505 무브먼트이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수리 매뉴얼도 만들어졌고 고장도 적었지만 출시 후 몇 개월도 못되어 고장 난 다는 악명이 자자했던 해밀턴의 전기 시계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1963년까지 총 11,000개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디자인만 좋았지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나버리는 시계라 소비자들이 외면해 버린 것이다. 그 사이 소비자들은 더 신기한 시계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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