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꼬마 때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먹였던 아침밥인데, 요즘 들어 입맛 없어한다는 것. 아침부터 소고기 초밥부터 흔한 들기름 계란프라이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다 실패. 요 며칠 우유 한 잔으로 합의하던 중이었다. 우유 한 잔이면 속 쓰릴까 봐 먹여왔던 고함량 비타민 B는 먹여야 돼 말아야 돼 가 큰 숙제라면 숙제. 그나마 요즘 이 자식 대문 나서기 전에 한 번 뒤돌아 선다. 뭐야. 뭐지? 난 얼른 안아 궁둥이 두들기며 차조심해 잘 지내라. 아이를 보내곤 했다.
4시 반쯤 돌아온 아들은 여느 때처럼 시원한 물 한 컵 준비하는 나를 다시 불렀다.
엄마
응
나 여자 친구 생겼어
(내 마음 빠르게 이하생략)
그래?
일단 안아줌(나도 모르게 아메리칸 마미됨. 닥치면 그런가 봄)
그렇구나, 언제?
한 50일쯤 됐어
(뭣이라? 이하생략)
그래? 진작 얘기하지 그랬니? 누군데(내 표정 웃고 있음)
여자 친구가 오늘까지 엄마한테 공개 안 하면 내 폰 뺏어서 자기가 전화하겠다고 하잖아, 같은 반 친구야
(여친 말은 철석같이 듣는다는 뜻)
어머, 너무 괜찮은 친구다. 야! 너도 말하지 그랬니
엄마가 이렇게 나올 줄 나도 알았지만 그러게.. (그걸 알면서 그랬다는 3.97킬로로 목숨 걸고 낳아 금싸라기같이 키운 하나뿐인 아들의 배신)
이 날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더 묻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랬구나 뭐 그럴 수도 있지. 당황 그 잡채 볶음밥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가정교육 똑바로 시켰나 하는 물음표였다. 수많은 유튜브로, 책으로 미리미리 공부했던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아들의 말을 듣기 무섭게 안아줬던 건 분명 미국 엄마가 하는 건데. 그건 멀뚱멀뚱 서서 뭐라도 해야 했던.. 그렇다. 평소에 하던 습관이 나온 듯하다. 중고등 시절 연애 경험이 없는 나는 요즘 아이들은, 요즘 엄마는 어때야 했더라 그 간 나름 잘 안다고 착각하던 걸 떠올려보려 쥐어짜며 아들 먹일 고기를 굽고 있었다.
'엄마! 엄마 손자 여자 친구 생겼데
여자 친구가 먼저 고백했데
윤이가 한 번에 안 받아주고 이틀쯤 고민했데
공부나 생활, 성격 모두 자신과 잘 맞다고 판단이 들어서
오케이 했다나? 허.. 참..
너무 빨리 왔어. 우리 윤이 초등 때도 연애 안 했다고. 근데, 그 아이 참 괜찮아 보였어. 윤이에게 꼭 고백했어야 했을까? 차라리 빨리 겪어보는 게 나을까? 이럴 때 엄마가 계셨다면 얼마나 좋아.
가볍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