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콘서트를 세 번이나 다녀왔다. 3월에 전역한 것을 생각하면 4개월동안 3번이니 꽤나 자주 다닌 편이다. 오늘은 김사월 콘서트를 다녀오며 커다랗고 푸른 수국을 준비했다. 꽃을 선물할 때는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선물 받는 사람의 이미지, 꽃의 꽃말, 나의 미감에 일치하는지 등등을 고려하다 보면 꽃집에서 쭈뼛대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곱게 포장된 꽃다발만이 시선에 놓인다. 꽃을 선물한다는 건 그래서 특별하다. 꽃은 인터넷으로 클릭 한 번을 통해 고를 수 없다. 가게에 놓인 기성품 중 하나를 고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생각할 게 많고 선물 받는 사람에 대해 알아야할 것이 많다. 그래서 오늘 사월님께 선물한 수국의 꽃말처럼, 어쩌면 모든 꽃말은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누군가를 보며 특별하고 고유한 낱말을 연상하게 된다. 그 사람에게 적절한 어휘, 문장, 표현들은 그 사람의 세계가 나를 휩쓸고 지난 후에도 나에게 잔존한다. 서로의 우주가 서로를 지나쳐도 고유어들은 생채기처럼 남아 때때로 마음을 간지럽힌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 수록,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릴 수록 우리의 언어는 진화하고 조금씩 새로워진다. 생채기의 언어들은 각자에게 남아 말의 세계를 확장하지만 연상시킨 사람이 없는 한 그 의미는 퇴색되고 어느 순간 소리를 잃을 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낱말들은 선물할 수 없는걸까. 선물하고자 떠오른, 구해놓은 낱말들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까. 나를 떠난 이들에게 단어들을 선물하면 나에게는 더이상 어떤 말들이 남을까. 의미 없는 단어들과 문장만 남아 목소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