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분카레 Jan 06. 2024

여행이 불발되더라도

오매불망 그리던 중국여행을 결정하고 기다리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지금껏 미뤄왔던 일, 망설였던 일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걸로 새해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리 살리라 결심했다. 몇 년째 중국문화기행 작가가 운영하는 밴드에서 눈팅만 해왔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중국역사문화기행을 기획하여 소수정예의 사람을 모집하여 떠난다. 큰 규모로 하는 패키지 상품들과는 결이 달라보였다. 우선 코스가 실크로드, 차마고도, 운남성 등 트랙킹이나 오지체험 같은 코스가 많았다. 소수민족들의 역사와 문화를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이다. 혼자서는 가기 힘들고 그렇다고 패키지 상품에 이러한 찐 여행을 할 만한 상품은 없다. 무엇보다 작가의 해설과 함께 많이 걷고 문화를 느끼는 여행인 것 같아 더욱 끌렸다. 


중국의 도시여행은 여러 번 다녀왔다. 상하이, 항조우, 베이징, 칭다오, 황샨, 하이난다오, 난징, 홍콩 그리고 대만까지. 닝보에 살 때 주로 다녔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학원 학생들과 두어 번 다녀왔다. 팬데믹 이후로는 이번이 첫 중국여행이라 더욱 설레었다.  


전생이 있었다면 나는 중국인이었나 할 정도로 중국이 흥미롭고 정이 간다. 특히 중국 말이좋았다. 어렵다기로 소문난 한자, 병음에 딸린 성조를 구사하기란 또 얼마나 난해한지, 그래서인지 힘 뺀 중저음으로 솰라솰라 시조를 읊듯 말하는 중국남자의 목소리는 얼마나 매력적인지. 어느 곳, 어느 때라도 달려가고픈 곳이었다. 그러나 발목을 잡는 일은 어쩜 그리도 다양하던지. 가족 행사가 있어서, 스케줄이 겹쳐서, 아이 일정 땜에,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이유들은 차고 넘쳤다. 그것들이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 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는 핑계 속에 나를 가두기보다는 박차고 나아가리라 마음먹었다.

이제는 적절한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발목에 걸려 자빠질 만큼 커다란 바위 같은 것은 없다고 여겼다. 여행 주관하는 작가님께 여유자리가 있는지 확인 하고 남편한테 컴펌 받고 예약금 보내 티켓팅 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남은 한 달 반 정도를 설레는 맘으로 사전 정보수집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즐길 생각하니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결정하고 난 다음부터는 줄곧 들뜬 마음이었다. 지난 주 아들이 올라와서 졸업식 일자를 알려주기 전까지. "엇! 내가 왜 미리 아들 졸업식 날짜를 체크하지 않았던가?" 오직 여행가는 일에만 몰두하다 그만 놓치고 말았다. ‘졸업식 날이 여행 떠나는 날과 완전 일치 할 줄이야~’ 대학졸업이 뭐 대수냐며 안가도 된다고 주위에서 말들 한다. 그런 생각이 내게도 없는 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내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아들 대학입시 때 포항이며 대전에 면접을 보러 갈 때 직장 때문에 동행을 하지 못했다. 입시를 같이 가는 아이 엄마에게 내 아들을 부탁했다. 포항은 거리가 멀어 하룻밤을 묵어야 했었는데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여간 맘이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 엄마에게도 아들에게도. 두고두고 그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입시에도 입학식에도 함께 하지 못했는데 졸업식까지 못가는 건 마음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 살던 대로 사는 거지! 바뀌기가 어디 그리 쉬울라고'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결심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전히 나의 선택이다. 여행 때문에 아들의 졸업식에 가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이다. 아들은 엄마의 계획이 더 소중하다며 참석 못해도 괜찮다고 했다. 가족들로부터 독립 못하고 이런 눈치 저런 눈치 다 보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는 오만가지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다. 

하루 정도 고민하다 비행기 티켓 취소를 요청했다. 다행히 취소 수수료 25%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서 이번 여행을 깨끗이 단념했다. 허탈하기만 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시도한 것만으로 다음번의 도전이 한층 더 쉬워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남편은 불발된 여행에 위로를 해 주었다. 자신이 졸업식에 참석 가능했더라면 여행을 취소하지 않아도 되는데 가까이 있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나는 멀리 혼자 있는 남편한테 미안해서 여행 이야기도 겨우 꺼낸건데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주니 고마웠다. 

처음부터 척척 잘 풀리는 일에 한번쯤 의심이 들기도 하고 사단이 나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내성이 생긴 건 고마운 일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너무나 흔하디흔한 일이다. 이후 다시 나와 일정이 맞는 여행이 올라오면 그땐 무조건 go다. 믿거나 말거나!!!

이전 09화 나도 떡볶이 먹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