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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Dec 30. 2023

나도 떡볶이 먹고 싶다

어린이 셋이 빡빡한 도서관 문을 잡아당기고 번잡스럽게 들어온다. 손에 무엇인가 들려있어 행동거지가 엉거주춤하다. 한 손에는 떡볶이를 다른 한 손에는 이쑤시개를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온 떡볶이 용기를 겨우 내려놓고, 가방과 외투를 벗어던진다. 한일이와 두이가 떡볶이를 즐길 채비를 하는 동안 석삼이는 진즉에 가뿐한 몸이 되어 두리번거린다. 석삼이 손에는 떡볶이가 들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일이와 두이의 주위에서 석삼이는 어색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먹고 싶지만 먹고 싶다고 말 못하고, 자존심에 나눠먹자고 말 못하는 아이의 심정을 읽었다. 어릴 때 무수히 느껴본 기분이다. 석삼이의 자존심도 지키면서 다른 두 아이들에게 나눠먹는 즐거움을 느낄 방법을 생각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와~ 떡볶이 맛있겠다~ 나도 먹고 싶다~” 

했더니, 다행히 한일이가 되받아준다. 

“좀 드실래요?” 

초등 4학년한테서 이토록 예의바른 응수를 받고 보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정말? 진짜 고마워. 너무 멋진데. 그럼 석삼이도 같이 먹어도 될까?” 

두이가 “당연하죠.”라고 말했다. 나는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서 포크 두 개를 가져왔다. 떡볶이 양이 많지 않아 나는 거의 먹는 시늉만 해야 했지만 정말 맛난 떡볶이였다. 


내 어릴 적 같은 동네 친구 00이는 자주 과자를 사먹었다. 나로서는 소풍 갈 때 외는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00이의 마르지 않는 과자 값은 용돈이 아니라 부모님의 돈을 훔친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소문은 00이가 직접 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꾸며낸 말인 것 같기도 했다. 당시 00이의 아버지는 사진관을 운영했으므로 늘 집안에 현금이 있어 소문이 쉽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친구가 돈을 훔친 건지 아닌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직 00이와 함께 하교하면 콩고물이라도 튀지 않을까하는데만 관심이 쏠렸다. 달콤한 과자를 마음껏 사먹는 00이가 부러웠지만 부러움은 딱 거기까지였다. 


내 아이가 남들 살 때 못 사서 기죽을까봐, 내 아이가 남들 다 하는 거 못해서 의기소침해질까봐 우리는 전전긍긍하기 십상이다. 모르면 몰라도 막상 내 눈 앞에서 그런 관경을 목격한다면 속상할 수도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엄마의 포물선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은 사소한 것까지 엄마가 해결해 준다. 과자가 들린 친구의 뒤를 따라다니는 일도 포켓몬 카드의 등급이 높은 친구를 우러러 보는 일도 떡볶이를 사먹는 친구 옆에서 구경만 해야 하는 기회도 없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아이들은 돈을 가지지 않은 자신을 자책할까. 그런 일들에 쉽게 상처를 받을까. 잠시 부러워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때로는 친구에게서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내가 나눌 수도 있다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 기회가 아이 마음을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더니 편의점을 다녀왔다. 한 친구에게만 돈이 있었나 보다. 손에 마이쮸가 하나씩 들려져 나타났다. 돈을 쥐고 있던 친구가 다른 친구들것까지 사준 모양이었다. 헤어질 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다음에는 내가 사줄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빵 터졌다. 어른들한테만 있다고 생각했던 ‘다음엔 내가 살께’라는 멘트가 어린아이 입에서 나오니 어울리지 않으면서 재미나게 들렸다. 사준 친구도 받은 친구도 마음 속 충만함을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주는 뿌듯함, 나누는 즐거움은 누구라도 느껴봄직 하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이 앞으로 크게 벌린 입을 ‘아~’하며 내민 적 있지 않은가. 침 묻은 떡뻥을 내 입에 넣어준 순간 물개박수와 함께 폭포수 같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때부터 아이는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경험해왔는지 모른다. 


옆 친구를 잠시 부러워하고, 잠시 옆 친구의 추종자가 되고, 또 잠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까지 옆에서 누군가가 다 방어해 줄 수는 없다. 그것보다는 어른으로써 아이를 함부로 무시하고, 속마음을 몰라주고, 공감 해 주지 못하는 일들이 아이 마음에 더 큰 생채기를 낼 수 있다.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지는 마음은 곧 잊혀질 수 있으나 받고 싶은 마음을 못 받으면 평생의 아픔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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