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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Jul 06. 2022

뛰는 시어머니 위에 나는 며느리

(글, 그림 출처: 강춘)

나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이 심각하게 왔었다.


시댁 문제뿐 만 아니라 다른 문제들도 많이 겹쳐 있었기에 굉장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것 같다.


이 모든 상황들을 버텨나가기에 내 마음 상태는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아이 치료를 받으러 간 김에 나의 심리 상태도 체크해봤는데 전문가가 보기에도 나는 심각한 우울증 상태였다. 내 마음은 너덜너덜 그 자체였다.

 

앞에도 언급했었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길게 늘어진 샤워기 줄을 보면 목을 아보는 상상을 했었고, 차를 몰고  때면 핸들을 충동적으로 틀어버리고 싶었. 매일 그렇게 상상하며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보면,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충동적인 감정으로 인해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각을 해봤을  너무 끔찍했다. 세상에 남아 계시는 나의 소중한 부모님은?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때문에 아까운 내 목숨을 버리기 싫었다. 그들이 죽으면 죽었지, 내가 죽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내가 지켜야 될 것들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들이 그들보다는 많았다.  


나는 이 상황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내가 그동안 가졌던 선한 마음을 가지면 절대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정말 치가 떨릴 만큼 독하게 마음을 먹었고, 그때 당시에 내 눈에는 악만 남았을 정도로 악이 가득 찬 상태였었다.


외국까지 따라온 시어머니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분명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서


| 시어머니 :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했다"라고 하셨는데


미안하다!! 예시 출처: News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죄인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있고, 의자에 앉아 계셔서 나 조차도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었다.


아들 입장에서는 오죽했겠는가.

괜히 며느리 앞에서 본인의 엄마가 의기소침해서 지내는 모습을 매일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겠는가.


남편은 나에게

| 남편 :

"엄마가 우울증도 있으시고, 엄마가 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드셔서 그래. 곧 괜찮아지실 거야. 너도 너무 그러지는 마. 우리 좀 잘 지내자"  


하면서 본인 엄마가 왜 그러시는지에 대해 나에게 설득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상황이 되면 그녀는 희한하게 180도 다르게 돌변하였다. 앞뒤가 다르게 하는 행동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예로는, 남편이 4시 반 반 거리에 있는 직장에 출근을 했을 때였다. 남편은 주로 일주일에 2-3일은 직장에 있다가 다시 집으로 와서 일을 하곤 했는데, 이때 남편은 나와 시어머니를 두고 가는 게 불안했는지 하루만 집을 비운 날이었다.


나도 그다음 날 있을 미팅을 준비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가 아팠던 시기였기에 난 집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시어머니께 아래층에서 아이를 좀 봐달라 부탁을 하고 나는 2층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딱 2시간 정도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외국에 도착한 후, 내가 시어머니에게 한 첫 부탁이었다.   


그 두 시간 동안, 아이는 거짓말 안 하고 10번 가까이를 내방으로 올라왔고, 나는 전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며느리 :  "어머님, 제가 지금 급한 일이 밀려 있어서 잠시 아이를 부탁드릴게요"

라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네가 일을 하던 말던 니 사정이지" 라는 마인드로, 아이를 봐주실 생각을 안 하셨다.


아이를 어떻게든 구슬려서 2시간 데리고 있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건지, 내 기준에서는 일부러 안 하시는 거라는 답밖에 나오질 않았다.


나는 다시 꾹 참고 부탁드렸다.


| 며느리 : "어머님, 저 일을 해야 돼요. 일을 마쳐야 되니 아이 좀 안 올라오게 부탁드릴게요."


| 시어머니 : "지가 올라간다는데 내가 어떻게 하냐. 올라가면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저런 시어머니 말에 화가 났지만, 일단은 참았다. 그녀에게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어떤 말을 시어머니에게 하면, 내가 어떤 말을 좋게 하던지 간에 저 시어머니는 아들이 오면 내가 자기를 못살게 굴었다고 내가 하지도 않을 말을 지어낼게 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단 시어머니에게 꾹 참고 두 번째 부탁을 드렸다.  


| 며느리:

"어머님, 이제 저녁 식사 시간인데, 저는 괜찮으니, 어머님 저녁 드시고 아이 저녁 식사도 좀 부탁드릴게요."


"아이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일찍 재워야 될 것 같아서요. 식사만 도와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 시어머니 : 알겠다

중간중간 아이가 안 먹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는 또 내 방으로 올라왔다.


아이도 시어머니랑 있는 시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전 글에서 일부러 생략한 부분이었지만, 사실 시어머니가 나 와의 갈등에서 화가 나셨을 때, 내 옆에 잠시 온 아이 앞에서 시어머니는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내 아이는 그 모습을 정확하게 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어머니가 내 아이 보는 앞에서 소리란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그녀의 뺨을 후려칠 뻔했다. 하지만 옆에는 내 아이가 있었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뺨을 칠 수는 없었다.


나는 애 앞에서 소리는 지르지 마라고 했었고,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많이 울었다.


그 이후에 아이는 시어머니 옆에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할머니는 본인이 사랑하는 엄마에게 소리를 친 사람이고, 그로 인해 엄마가 울고 속상해 한걸 다 봤기 때문에, 아이는 할머니를 그날 이후로 따르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었다.


이후에 시어머니에게 아이에게 사과는 하셨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시어머니가 아이 저녁을 먹였는데, 내 아이는 불안한지 나에게 여러 번 올라왔었다.


그때 내가 직접 챙길걸 지금 와서 후회가 된다. 그때 당시에는 굳이 내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시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없을 때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나는 아이를 내려보내고 다시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 시어머니:

"니 애가 굳이 안 먹겠다는데 나보고 어떻게 먹이라는 거니"  


보통 이런 상황이면, 할머니라는 분이 손자가 아프면 소화하기 쉬운 죽이라도 끓여줄 텐데, 그녀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맨밥에 소화 안 되는 반찬을 먹였던 것 같다. 소화가 되지 않았던 아이는 결국 울면서 먹은걸 다 토해냈다.


나는 이런 시어머니의 배 째라 하는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본인 아들 앞에서는


| 시어머니 :  

"알겠다, 내가 더 많이 도와주고, 내가 할머니로서 아이도 잘 케어할게. 걱정 마 조심히 일 다녀와. 미안하다" 이렇게 말해놓고


아들이 없는 하루 동안 그녀의 행동은 마치

"니 아이인데 네가 봐야지. 나한테 맡겨서 어쩌라고.

니 새끼 네가 돌봐라. 난 모르겠다" 식이었다.


그녀에게 내 아이보다 한 살 어린 외손자가 한 명 있는데, 과연 그 외손자가 아픈 상황이었을 때도 시어머니는 소화 안 되는 음식을 외손자에게 꾸역꾸역 먹이면서, 죽 한 번을 안 끓여주고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아이가 아플 때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따뜻한 음식에 보리차 끓이고, 과일에 그렇게 정성스럽게 챙겨 주셨었는데. 참 씁쓸했다.


나는 잠시 아이를 다른 방에 올려놓고, 시어머니 옆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와이프 :

"남편,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어. 옆에 어머님도 계셔.

내가 이 일들을 너에게 알려줘야 될 것 같아"


"내가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좀 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도, 시어머니께서는 아이를 전혀 돌보시지 않으시네? 아이가 최소 10번은 내 방으로 올라와서 내가 일을 할 수가 없네? 넌 어떻게 생각하니?"


"그리고, 지금 아이가 기침도 많이 하고 좀 아파서, 내가 저녁 식사만 처음으로 부탁을 드려봤는데, 보통 이렇게 손자가 아플 때는 죽이라도 좀 끓여서 먹일 만도 한데,"


"아이 말로는 할머니가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는 표현을 쓰네, 결국 오늘 저녁 먹은 거 아이가 다 토했는데, 너 생각엔 너희 어머니께서 하시는 이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생각이 드니?"


시어머니는 옆에서 아이가 기침을 해서 토했다, 아이가 울어서 토했다 라는 등 내 옆에서 주구 장창 본인이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남편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난 오늘 처음으로 딱 두 가지를 부탁드렸었어. 하나는 아이를 잠시 봐달라는 거였고, 하나는 식사를 부탁한다는 거였어."


"시어머니는 너 앞에서는 그렇게 미안하다, 잘 도와주시겠다 약속을 하셨었는데, 이 두 가지도 네가 없는 동안 이렇게 행동하시는 부분에 대해 너는 아들로서 어떻게 생각하니?"


"네가 내일 차를 몰고 오면서 한번 잘 생각을 해보면서 와봐. 너희 어머니께서 네가 없을 때 하시는 행동들에 대해서 말이야"


그리고 나는 방으로 올라가서 아이를 재우려고 올라갔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 열이 났고, 토를 하고, 기침을 하고 힘들어했다. 나도 꼴딱 밤을 새웠었다.


그렇게 내가 밤새도록 고군분투하는 동안,


시어머니는 본인  안에서 단! 한 번도! 나와서 

"아이는 괜찮니?" 혹은 "아이는 어떻니?" 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시지도 않으시고, 아이가 자지러지던 말던 아예 무관심이었다. 너무 기가 찼었다.


나와 관계가 안 좋던 좋든 간에, 본인 손자라고 조금이라도 생각을 했더라면, 아이가 아프면 걱정도 될 만도 할 텐데, 아니면 일단 싸움은 싸움이고 이런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이 될 텐데, 시어머니는 절대 그런 게 없었다.


끝까지, 니 새끼 아픈데 내가 뭐 어쩌라고. 니 새끼 아픈 거 네가 챙겨야지. 이런 주의였다.


너무 많이 화가 났고, 집안에 그녀와 단 둘이 있는 그 시간들이 지옥 같았다. 당장이라도 문 열고 들어가서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올 때까지 꾹. 꾹. 참았다.


그다음 날 남편이 왔다. 남편은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자고 정신없이 운전해서 온 것 같았다.


남편은 나를 통해 그간 이야기를 전달받고 어머님을 불렀다. 나도 그녀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서 소파에 앉아 둘의 대화를 지켜봤다.


| 남편 :

 "엄마. 내가 간곡히 부탁했었잖아. 나 없는 동안 와이프가 일을 해야 되니 아이 좀 봐달라고 좀 부탁했었잖아. 아이가 2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0번이나 올라가서 엄마를 찾으면 와이프는 결국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리고 엄마 손자이기도 하잖아. 엄마 자식이기도 하잖아. 왜 그렇게 나 몰라라 해."


"와이프랑 안 좋은 감정이 있어도, 그건 와이프, 나 그리고 엄마 문제지, 아이는 아무 잘 못이 없잖아"


"엄마 누나 아이 었어도 그렇게 할 거야? 아니잖아"


"엄마가 여기 외국까지 진짜 오기 싫었지만, 힘들게 결심하고 왔잖아. 그럼 이왕 왔으니 잘 도와주고, 지금은 서로 안 좋아도 서로 오해도 잘 풀고, 있는 동안 잘 지내고 가면 되잖아"


"엄마, 와이프 그렇게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아. 와이프가, 내 철없는 행동 때문에 그동안 화가 많이 났었는데, 내가 장모님 왔을 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해서 더 악에 받쳤어."


"그리고 한국에서도 아빠 알잖아 어떻게 와이프랑 장인 장모님께 했는지. 지금 와이프는 우리 가족과 나 때문에 많이 힘들어."


"그래서 우리가 많이 도와줘야 돼 그래야 와이프가 마음을 좀 풀 수 있어. "


"아무리 내가 와이프 마음 풀려고 해도 잘 안돼. 엄마가 많이 도와주고, 엄마가 어른으로서 품어주고, 위해주면 많이 괜찮아질 거야"


"진짜 엄마 도움이 필요해서 부탁하는 거야, 어른으로서 마음을 넓게 가지고 많이 보듬어 주고 품어줘"


시어머니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나는 남편이 뭐라고 하는지 계속 듣고 있었다.


| 남편:

"엄마, 내가 이런 말을 엄마 앞에서 하면 안 되는데, 나 정말 여기 운전 4시간 반 하고 오는데 오다가 트럭이 날 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왔었어. 나 정말 그동안 너무 많이 죽고 싶었어"


남편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도 금쪽같은 아들이 죽고 싶었다는 소리를 하니 엉엉 울기 시작하셨다.


| 남편:

"엄마, 우리 정말 경제적으로 힘들어 많이. 내가 그냥 빈말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지금은 와이프가 벌고 내가 조금 벌어서 그나마 버티는데, 여기 우리 사는 곳 물가가 보통이 아니야. 한국보다 심각해."


"그리고 우리 버는  월세로 150만원 이상 나가고, 아이 유치원 비용 100만원 이상 나가고, 건강보험료,  보험료 나가면 우리 진짜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너무 여기서 둘이 아등바등 사는 게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해서 아빠한테 집 렌트비라도 해결하게 해달라고 집을 말한 거였어. 정말 너무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해서 말한 거야."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데 최선을 다해도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는데 이건 해결이 안돼."


"최선을 다해서 여기서 아이랑 살아 나가려고 하는데 그게 우리 맘대로 안돼"


"우리가 외국인 신분이라 대출도 안되고 사업이나 장사도 할 수 없고, 너무 막막한 현실이야"


"그래서 진심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거야. 아빠는 내 말을 아예 듣지도 않겠지만, 엄마는 우리를 이해하잖아. 우리말을 들어줄 유일한 사람이잖아."


"정말 우리가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하루빨리 자리 잡아서 다 보답할게. 정말 이렇게 내가 부탁할게"


남편은 울면서 절실하게 말했고, 시어머니도 눈물을 흘려가며 아들의 절실함에 알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나도 말씀드렸다


| 며느리:

"어머님, 저한테 앙금이 있으신 거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도 어머님 아버님께 좋은 감정이 없는데, 어머님 아버님은 당연히 저한테 좋은 감정 없으시겠죠"

 

"하지만, 저한테 안 좋은 감정을 가지는 건 좋지만, 그걸 아무 죄가 없는 제 아이에게 투영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이는 부모 잘못 만난 죄 말고는 없는 아이예요"


"그리고, 저는 아이가 아프면 죽이라도 끓여주실 줄 알았어요. 외손자가 지금 제 아이처럼 아파도 어머님은 밥 꾸역꾸역 먹이실 거예요? 제 아이는 어머님 손자 아니에요?"


"저한테 쌓인 앙금 있으시면 지금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다 듣고, 어머님 속상하셨던 부분 다 오해 풀어드리고, 앙금 풀어드릴게요"


"이제 이만큼 소리 지르고 하셨음 됐잖아요.  바로 마음의 앙금이 풀리지 않겠지만, 지금 서운한 거 저한테 다 이야기하세요. 이제 아이도 너무 힘들어하고, 남편도 저도 어머님도 힘드니 여기서 그만해요"


시어머니는 나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시어머니:

"이게 다 내 잘못이지, 나는 너한테 앙금 가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내가 좀 더 아이를 더 잘 봤어야 하는데 다 내가 잘못한 거지"


"그리고 내가 너한테 앙금 가질게 뭐가 있냐. 내가 뭘 잘했다고. 내가 앞으로 더 잘할 테니 걱정마라.

내가 진짜 이제는 앙금 다 풀고, 너한테 아이한테 많이 도와주고 갈게"


"우리 잘 지내자"


"그리고 (아들 이름)아, 돈 부분은 나는 내가 아무 능력이 없어서 모르겠다. 일단 이야기는 해볼게."


"네가 정 지원을 받고 싶음 네가 네 아빠를 죽이던, 네가 집에 불을 지르던 해서 가져가던 해봐. 내가 어떻게 하겠냐 난 아무 능력도 없는데"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내 아들이랑 손자한테 집을 해주는 건 안 아까운데, 며느리한테 이 돈이 들어가는 건 아까워. 뭐 그렇다고. 뭐 네가 예쁜 며느리도 아니고 한데 아깝지 뭐"


| 며느리 :

" 어머님께 제가 지금은 이쁜 며느리도 아니고, 이 사단을 만든 미운 며느리란 거 다 알겠어요"


"그런데 어머님, 제가 집 관련해서 금전적인 도움을 받게 된다면, 그 금전적인 부분은 저 혼자 사용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머님 아들이랑, 어머님 손자가 같이 사는 집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행여나 금전적인 지원을 받음, 제가 그 돈으로 명품을 사요? 제 차를 사요?"


"그 돈이 다 어머님 아들과 손자 밥 먹을 때 들어가고, 잘 때 들어가고, 먹고사는데 들어가지 제가 그 돈을 어디 훔쳐가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신다는 자체가 너무 서운하네요"


|시어머니 :

"그럼 막말로, 너희 집에서도 반반하고 그래야지 왜 우리만 하니?"


"요즘은 다 반반 하는 세상이야"


"남자만 집 해 오고 그런 거 없어 요즘 세상은"


| 며느리 :

"어머님, 그건 남자가 능력이 있고 직장도 있고 할 때 해당되는 말이고요"


"지금 어머님 아드님은 저 중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어머님도 키우시기 벅찬 저 아드님을 제가. 지금. 태평양 건너. 키우고 있잖아요. 제 아이랑 같이요"


"제가 지금 결혼 6년 넘게 남편 외국에서 대학원 뒷바라지하고, 밥 차리고, 아이 키우고, 제 일하고, 이 모든 걸 다 제가 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어머님 아드님 건강보험료, 무슨 추가로 나가는 비용들도 다 제가 케어했었어요."


"그동안  어머님 아버님께 저 시집올 때 폐물 안 해주셨어도, 집도 안 해주셨어도, 애 낳았을 때 아무것도 안 해주셨어도,  제가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님 아버님께 뭐 해달라 말씀드린 적 있어요?"


"정말 단 한 번도 없죠?"


"제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겠다고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저희가 지금 당장 어려우니 이 부분만 좀 도와달라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세요. 집이라도 안정된 거 있음 나머지는 다 채워 주신다고"


"그리고 저도 한마디 드리자면, 아드님이 사위로서 저희 집에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아 있다. 저희 엄마한테 상해 입히고, 소리 지르고, 말 같지 않은 행동 하며 사위노릇을 아주 톡톡히 했는데, 집까지 저희 부모님이 해줘야 된다는 말씀이세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 시어머니:

"도대체 내 아들이 뭘 그렇게 안 했다는 거냐? 그럼 너는 며느리 노릇 뭐했냐 그동안?"


| 며느리 :

"제가 외국에 있어서 찾아가지 못해서 매번 죄송한 마음에, 항상 한국에서 설, 추석, 생신 등  집안 행사 있을 때마다 신경 써서 매번 선물 보내드렸는데 어머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보내지 마라, 쓸데없는 거 보내지 마라, 이제 절대 안 받는다 하셨잖아요"


"하도 안 받는다고 거부하셔서 제가 어머님 부담스러우실까 봐 안 보냈어요"


"제가 외국에 있어서 한국에 찾아가서 제사 못 지내 드리고, 김장 같은 거 못 도와 드리는데, 외국에 있는 저한테 어떤 며느리 도리를 원하시는지 말씀해 보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음 딱 부러지게 해 드릴게요."


시어머니는 내 말에 아무 말도 못 하셨다. 나는 덧붙여 말씀드렸다.


| 며느리 :

"어머님이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정말 힘드실 때 누군가가 어머님을 도와주신 적이 있으세요?"


| 시어머니 :

"예전에 하도 남편이 깽판 치고 애도 낳았는데 혼인신고도 안 해준다 했을 때 우리 오빠랑 올케가 와서 남편이랑 같이 싸워주고 경찰서 가고 그랬었지"


| 며느리:

"그때 어떠셨어요? 어머님이 힘드셨을 때 누군가 와서 도와주고, 지지해줬을 때 어머님은 그분들 잊으실 수 있으세요? 그때 어머님을 위해 싸워주시는 그분들께 고마우셨죠?"


|시어머니 : 고마웠지


| 며느리 :

"저희가 지금 그런 상태예요. 저희는 지금 둘 다 너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예요."


"돈도, 육아도, 지금 저희 부부는 인생 과도기에 있어요. 하지만 이게 평생 가지는 않을 거예요. 누구나 다 인생에서 이런 과도기는 경험하니깐요. 누구나 다 이런 경우가 생기니깐요."


"어머님 아버님은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이 되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부탁드리는 거예요. 지금 절실하게 힘든 시기에 잠시 좀 도와주시라고 저희가 손을 내미는 거예요 지금."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저희 이제 더 내려갈 바닥이 없어요. 앞으로 제가 계약이 8월에 끝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도 있어요. 남편 외벌이가 돼서요"


"외국에서 지금 남편이랑 저 둘 다 우울증 심각하게 왔어요. 저희 버틸 만큼 이 악물고 버티는데도 코로나에 많은 상황들이 겹쳐서 버거운 상황이고, 저희 엄마도 저희 사는 거 보고 혀를 내두르고 가셨어요."

 

"저희 잠시 안정적으로 될 때까지만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앙금 있으신 거 다 풀고, 이젠 남은 기간 저랑 아이랑 남편이랑 다 같이 좋은 시간 보내고 가세요."


"제가 한국에 어머님이랑 있었을 때 어머님이랑 아버님이 저보고 시댁에 애랑 혼자 와서 5박 6일이나 있다가 간다고 착한 애다라고 하셨었잖아요."


"지금은 서로 안 좋은 모습 많이 봐서 서로 억한 심정이 있지만, 어머님께서 저희 사는 거 보고 도와주시러 오셨으니, 아버님께 잘 말씀해주시고 저희 부탁 들어주세요."


나는 서울시 댁에 방문한 이후에 다시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녀의 아들도 그날은 정말 진심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 시어머니 :

"알겠다. 이제 내가 너희 맘 다 알았다. 내가 도와줄게. 내가 아버지랑도 잘 이야기해볼게.

그리고 남은 기간 잘 지내자. 아이랑 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라고 다시 한번 말하셨다.


하지만, 나는 시어머니의 능구렁이 같은 행동을 계속 쭉 봐왔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똑같은 레퍼토리의 말이

진심으로 와닿지 않았었다. 싸한 느낌은 여전했었다.


이전에도 시어머니, 시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약속을 하셨었다. (시아버지와 협상 테이블 글 참고)


내가 그때도 정말 간절하게 부탁을 했었는데 그들은 알겠다고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진심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결과는 뒤통수를 세게 맞았지만.


외국에 시어머니를 데리고 와서도 그녀와 나, 남편은 여러 번 이야기를 하였었고, 시어머니는 매번 미안하다 앞으로 잘 도와주겠다고 했었지만, 시어머니는 남편이 없을 때마다 행동이 달라졌었다.


그걸 거의 매일 난 경험했었다.


나는 이제는 시어머니의 진심을 알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다짐한 말들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차후 내 행동에 많은 변화가 올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우리 앞에서 한 말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위한 진심이 있었더라면,


나는 정말 100% 그녀에 대한 내 앙금을 털어내고, 남은 기간 동안 그동안 외국에 있는다는 핑계로 못했던 며느리 도리 할 생각이었다.


그간 맘고생하셨을 시어머니를 위해 좋은 곳에 여행도 데려갈 생각이었고, 허리가 아프신 어머님께 젤 좋은 신발도 하나 사드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 노릇을 제대로 해드리고 싶었다.


비록 외국까지 와서 안 좋은 모습 지금은 보셨을지 언정,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는 웃으면서 행복한 기억 가지고 돌아가시게 할 생각이었고, 이건 내 진심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시어머니에게 여러 번 물어봤었다.


 좋은 감정 있음 여자대 여자로서 이야기하고 풀어 주시라. 내가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고 사과드릴 부분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하겠다.


어머님께서 이렇게 있으시면 나도 불편하다. 아이도 많이 힘들어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풀고  지내다 가자 하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전혀 쌓인 거 없다. 전혀 화난 거 없다. 전혀 서운한 거 없다, 다 내 잘못이다라고 했다.


그다음 날이 되면 이상하게 그녀의 행동은 180도 달랐지만...


나는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남편에게 물어봤지만, 그 아들도 사랑하는 엄마 입장을 옹호하는 중이었기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아들은 내 뒤통수를 여러 번 쳤기에 난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시어머니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던 방법은 이거 하나 말고는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쓸지 아님 다른 것으로 에둘러 표현을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오랜 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사실대로 언급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였기에 나는 사실대로 내 잘못된  행동에 대해 여기에 적도록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까지 했어야만 했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 내 주변엔 시어머니, 남편, 아이밖에 없었고, 이 방법 말고는 내가 시어머니의 진심을 알 방법은 없었다.


시어머니가 미안하다고 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듣고 상황을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 시댁 가족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후였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진심이 어떤지에 대해 모른 상태로, 그냥 넘기고 내가 가진 마음을 풀자 할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남편에게도 와이프로서 쌓인 게 많았던 시기였기에 또 저들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의 진심을 아는 건 나에게 아주 중요했었다.


여기서 명확하게 언급을 하겠다.

지금부터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란 걸 인정하고 적어 나가겠다. 

그때 당시 내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이 방법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 제 글을 읽으시는 구독자 분들께 미리 죄송하다는 양해를 구하고 다음 이야기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시어머니가 남편과 나와의 대화 후에 언젠가는 시아버지와 통화를 한번 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는 몰랐지만, 전혀 예상을 할 수 없었다.


나의 희망은 적어도 시어머니가 진심이라면 남편과 나의 절실함을 진심 어리게 시아버지께 말은 해주겠지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런 모습만 보여도 나는 시어머니가 우리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우리를 위해준다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시어머니에게 가진 모든 마음의 앙금을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그녀의 통화를 엿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운 좋게도, 한 번만에 나는 그들의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후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의 통화 내용을 들었을 때 그때 내 느낌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소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돋았었다

두 번째, 손이 부들부들 떨렸었다

세 번째,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지금도 드는 생각이었지만,


내가 만약, 그때 시어머니의 진심을 의심을 안 하고 상황을 그냥 넘겼더라면, 지금 쯤 나는 시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 제목 : 독사 머리 밟아 죽여 먹어 치우는 '걸크러시' 새.  출처: 핫이슈 고명훈 기자


역시 여자의 촉은 무섭다.


뛰는 시어머니 위에 나는 며느리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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