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면 다른 일을 구할 줄 알았지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줄곧 다 잘 해내던 아이였다. 아니, 어쩌면 줄곧 잘 해내야'만' 하는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둘째라면, 위에 언니와 아래 남동생이 있는 둘째라면 대부분 다 가지고 있는 그런 흔한 이야기다. 아들을 낳기 위해 둘째를 낳았지만, 나는 원하던 남자아이가 아니었고 남자아이를 낳기 위해 낳아진 아이라는 이야기. '아이고 이렇게 귀한 아들 낳으려고 둘째 딸을 낳았구먼' 하는 어른들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나는 혼자서, 스스로 잘 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4개월 간의 무급 인턴, 9개월 간의 아르바이트를 버텨서 정규직을 받아냈다. 고작 두 달 만에 정리해고를 당했지만. 곧 정규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지 반년이나 지나 정규직을 받아냈고, 타지에 혼자 있는 둘째 딸이 평균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은 우리 엄마 아빠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역시 너는 어디 내놔도 알아서 참 척척 잘한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 이모에게, 고모들에게, 그리고 엄마 아빠의 친구들에게 캐나다에 있는 둘째가 정규직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안심이자 자랑거리인지 알았기 때문에 정리해고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늘 자식 걱정이 끊이지 않는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얼른 자리를 잡고 싶었다. 그래서 정규직 제안을 받았을 때 드디어 아빠에게서 나에 대한 부담을 내려주는 것 같아서 기뻤고, 돈을 모을 계획부터, 영주권 신청을 할 때 쓸 돈, 월세까지 시작해서 모든 계획을 끝냈다. 하지만 역시 계획은 세워도 지켜지지 않는 게 룰이라는 말을 뒷받침해주듯이 정리해고 소식을 통보받았다. 잠깐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듯 아찔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그냥저냥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근무일 기준으로 벌써 2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 안에 직장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길래 내가 그걸 해내겠다는 포부는 사라지고, 어느덧 연말은 지나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라며 점점 받아들이고 있다. 빨리 해내고 싶은 마음과 순리를 따라야지 하는 마음이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괜히 또 기대되게 다른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1차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리해고는 엄마 아빠에게 영원히 묻어두겠지만, 이직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 아빠는 몰라야한다, 나의 해고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