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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Jan 10. 2024

이별의 후폭풍을 견디는 자세

아픔이 지난 자리에 성숙이 남기를

이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이고 불태워 버리고자 다짐했던 주황색 노트를 펼쳤습니다. 엑스와 헤어지고 먹먹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작은 노트. 감정이입이 돼야 하는데 당사자의 슬픔, 외로움, 힘듦보다 미련과 지질함 민망한 웃음이 새 나옵니다. 도저히 못 봐주겠다 하면서도 그다음 장을 확인하고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서 기어코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너무나 괴롭고 아팠던 감정들을 눈물담았던 노트이건만 이제 보니 아주 흑역사 덩어리입니다. 남편이 지나다닐 때마다 흠칫 눈치를 살피었더니 친구의 비밀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 들었습니다. 이 노트를 쓸 때만 해도 이별의 아픔이 영 내 곁에  줄 알았습니다. 이별의 생채기는 어느새 새살에 묻히고 과거의 지난한 시간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었습니다. 비밀리에 쓴 이별 노트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더군요.


-관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최소한 지금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시간을 갖고 잠잠히 돌아볼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것.-

(가장 정상적이고 의연하게 읽히는 문장을 골랐습니다.)


연애를 많이 해 봤지만 떠나간 인연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래서 이별 후에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다른 사람 만나면 되지.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남자야."라는 몹쓸 위로를 건넸습니다. 같은 문제로 힘들어 보니 제가 얼마나 얄밉고 철없 발언을 한 것인지 늦은 반성이 됐습니다.

처음 겪는 아픈 이별은 지독한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먹기 싫고, 어떤 좋은 것을 봐도 슬프고, 슬픈 건 더 슬프기만 했습니다. 다 끝났다고 마음을 접었다가도 금세 다시 무너지고 미련에 치이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너무나 낯설고 싫었습니다.

내 감정에 솔직하게 마음껏 울고 애도도 되는데 빠른 시간 안에 모두 잊고 점잖 보이려고만 했던 게 실수였습니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고 상처받았음을 인정하는 것.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천천히 일어서는 과정이 필요했건만 현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적으로 으로써 더욱 궁지로 제 자신을 몰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이별 후의 아픔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아프다 못해 심장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무섭기까지 했고요. 이 또한 지나간다는 진리를 바라고 또 염원했지만 지독한 슬픔은 시간이 멈췄 싶을 만큼 더디게 움직였습니다. 그러 어떤 힘든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는 진리는 참이었습니다. 예리하고 서슬 퍼런 슬픔이 뭉툭한 감정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이겨내면서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아픈 이별을 겪게 될까 두려워하며 내 처지를 걱정하기보다는 상대를 아프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갖고 됐고요. 헤어지자는 말을 잘했던 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저는 지독한 이별 후폭풍을 통해 꼭 배워야 했던 것을 배웠습니다. 그만큼의 값을 치렀단 사실이 쌤통이고 다행입니다.


남녀 불문 이별의 후폭풍 견디기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후폭풍의 정도와 기간의 평균값할 수 없습니다. 이를 견디는 방법, 빨리 잊는 방법 같은 속설도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별의 후폭풍입니다. 슬프다가 괜찮다가 다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될 것입니다.

관계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최소한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숨통이 트는 날이 옵니다. 두 사람 중 한쪽의 마음 변해도 끝나버리는 것남녀 관계이지요. 이미 헤어진 사람이 무얼 하고 누굴 만나고 어떻게 지내든 그저 남일 뿐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인의 마음을 돌보며 떠난 이가 아닌 자신의 성숙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안 좋게 헤어진 사람도, 많이 사랑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잔잔한 미소로 추억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사랑도 추억도 감정도 모두 결국엔 지나가고 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의 과정을 5단계로 구분 지었습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이별의 과정도 이와 같이 치열하고 격정적인 단계를 거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은 관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렬의 과정니다.  내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우선으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이별을 통해 하나라도 배운다면 떠나보낸 자리훨씬 소중한 것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한껏 더 성장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는 미래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별의 후폭풍은 무엇보다도 제게 겸손을 가르쳤습니다. 사랑에 있어 우위에 서려는 태도는 서로를 좀먹게 만든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별 덕분에 한결 더 성숙한 마음 상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이별의 짙은 슬픔이 걷히고 나면 어떤 결과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재회 혹은 새로운 만남, 치유, 무엇보다도 단단한 어른이 된 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별을 제대로 통과한 만이 가질 수 있는 표식이 있습니다. 이성을 보는 눈, 관계의 통찰력, 깊이 있는 내면, 자기 이해 등이 그 예입니다. 고약한 상실통과한 후 더욱 성 신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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