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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Feb 03. 2024

촉과 콩깍지와 사랑

여자의 촉은 과학입니다

촉이 좋다. 

여자의 촉은 무시할 수 없다.


예리하게 상황을 간파하거나 결과를 잘 예측하는 사람에게 쓰이는 말입니다. 저는 촉이 좋다 못해 무서울 정도라는 말을 종종 들어 봤는데요. 촉이 용어 '근본'과 '대상'과 '앎'이 접촉하여 생기는 정신 작용을 뜻합니다. 촉과 관련된 두 개의 굵직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저를 늘 열심히 챙겨주던 G오빠에게 연인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길을 가던 중에 그 커플을 만났습니다. 일행 모두 반갑게 그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 사람은 무리에서 가장 뒤처져 걷던 저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 단 몇 초의 짧은 인사를 나누고 쓰윽 스쳐 지나가는데 퍽!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그의 여자친구 불 같이 화를 내고 있더군요. '혹시 나 때문인가?' 하는 찜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살짝이 물었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이. 상. 하. 게 그녀가 저에 관련된 모든 일에 성을 내고 날카롭게 군다는 겁니다. 그날도 저와 인사를 나눴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다퉜다고 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하네." 내 사과에 G오빠가 어떤 답냐면... 흠. 언니의 촉이 백 번 옳았습니다. 같은 여자가 봐도 여자의 촉은 신기하고 무섭습니다.


A라는 친구와 교제했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제가 핸드폰에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던 A가 카페 테이블 위에 판도라의 상자를 올려두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평소라면 돌 보듯 했을 타인의 핸드폰.

이. 상. 하. 게 그의 채팅방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호기심이 의무로 변모할 정도록 강력한 이끌림이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하나의 방을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보통 여성과 나눈 대화창을 먼저 확인하겠지만 저는 남자들이 모인 대화방에 입성했습니다. One click, One kill. 늑대들의 유흥에 대해 배우는 계기였... 엿! 상대의 동의 없이 핸드폰을 확인한 건  잘못이었지만 알아야 할 것을 안  큰 행운이었습니다. A가 자리로 돌아왔을 땐 나도 그도 더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이 콩깍지를 벗겨냈고 광활한 새 미래가 열렸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지요.


평생 떠안고 가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연애할 때가 아니면 언제 분리하고 배척하겠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꼭꼭 숨기는 게 있는 것 같다면 이를 이성의 눈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믿음이 형성돼야 하는 단계에서 자꾸 내면의 음이 들린다면 콩깍지를 벗고 귀 기울여 봄이 마땅합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앎에서 비롯되는 촉은 근거 없는 일시적 느낌이 아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늘 마음 한편에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다 똑같아.' 어찌 하늘 아래 똑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만 모든 인간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지요. 저는 줄기차게 연애하며 바쁜 청춘을 보냈습니다. 상대를 간파하는 데 쓰이는 제 촉도 나날이 연마됐습니다.

술, 도박, 바람. 이 세 가지가 사람을 망가뜨린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연애 경험이 쌓여도 특히 이성 문제만큼은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더군요. 천 길 사람 속을 꿰뚫어 볼 수야 없겠지만 상대의 주변 사람, 연애 패턴, 성격, 습성 등을 토대로 사람의 내면을 읽으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늘 한 가지를 고심했습니다.


그는 어떤 이성의 유혹 앞에서도 신의를 지킬 수 있을까.

상대뿐만 아니라 제 자신도 확답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성경에 요셉이라는 인물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유부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리따운 여성은 틈만 나면 수려한 요셉에게 추파를 던졌습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요셉의 옷깃을 잡고 동침하자고 유혹하는 여자. 요셉은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겉옷을 벗어던진 채 집밖으로 도망쳐 나옵니다. 아닌 것을 두고 고민하는 순간 더 많이 실수하고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혹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요셉 같은 남자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우직한 여자가 되고 싶었고요. 


Y를 만나는 내내 나의 전매특허인 예리한 촉이 꾸벅꾸벅 졸습니다. "야. 촉. 너 일 안 하냐?" 이따금 의심하고 따지거든 이런 메아리가 돌아왔습니다. "너나 잘해라. 남자라고 다 똑같은 거 아니거든." 행복하면 불안하다는 말은 참이 아닙니다. 건강한 행복은 불안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앎에서 비롯되는 촉이라면 언제든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콩깍지와 촉은 N극과 S극처럼 서로를 밀어냅니다. 콩깍지를 렌즈처럼 자유롭게 꼈다 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덮어줘도 되는 건 콩깍지를 낀 채로 보고, 두고두고 문제가 될 사항은 이성의 눈으로 보게 말입니다.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연인들에게 지에서 비롯되는 촉이 나침반의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촉을 잘 다루는 비결은 돗자리가 아니라 자존감과 가치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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