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칭찬은 여자를 춤추게 해
요즘 필라테스를 마치고 나면 요청하지 않은 메시지가 꼬박꼬박 날아온다.
“회원님의 잔여 횟수가 3회 남았습니다.”
“잔여 횟수가 2회 남았습니다.” 어휴. 귀찮아. 재등록을 성사하기 위해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내게 대화를 걸어오는 실장님의 눈빛 또한 몹시 부담스럽다.
작년에 연회원으로 등록했던 필라테스 이용권은 무려 110회짜리 이용권이었다.
‘과연 다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한 내에 횟수를 모두 소진할 수 있을까?’ 결제하는 순간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사계절 내내 꾸준히 센터에 발도장을 찍은 결과 용케도 도장 깨기에 성공했다.
삼 년 전 처음 필라테스에 도전할 때만 해도 한 회 수업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초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껏 긴장한 내 어깨는 거의 귀에 붙어서 움직이다시피 했다. 강사님이 “회원님. 어깨! 어깨 내리세요.”라고 지적할 때면 눈치 없는 승모근을 주먹으로 두들겨 패서라도 끄집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스프링이 달린 손잡이를 끙차 잡아당기면 행사장 풍선처럼 몸이 나부꼈다. 수시로 강사님이 다가와 세기와 위치를 조절해 주어야 했다.
단체 수업에 해가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던 왕초보 시기는 아슬아슬 빠르게 지나갔다. 남들 다하는 운동인데 도대체 왜 그렇게 겁을 먹고 걱정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의아하다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내 몸은 그저 겉보기에만 멀쩡한 상태였다.
필라테스 전후의 신체를 비교하면 나름 힘도 생겼고 체형 자체가 각 잡힌 몸으로 변화했다. 워낙 먹성이 좋은 사람인지라 몸무게는 유지 수준이고 근육이랄 것도 가시적으론 자랑할 게 없다만 정자세를 의식하며 지내는 사람이 되었고 10km를 거뜬히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섬유근육 만성통증도 조금이나마 개선된 듯하다.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골반이 매우 나빠졌다. 다리를 반복적으로 드는 동작들을 많이 소화하면서 새로운 건강 문제를 얻은 게 아닌가 싶다.
이 모든 사안과 별개로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고야 말았는데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필태기’(필라테스 권태기)에 들어서고야 말았다는 것.
탈의실에서 겉옷을 챙기다가 몇 해 동안 함께 운동했던 회원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하. 요즘 왜 이렇게 운동하기가 힘든지. 마음이 안 따라 주네요.”
“그러게요. 솔직히 요즘 전 필라테스가 재미없네요.” 같은 처지에 놓였단 사실을 알게 된 나와 그녀는 탈의실에서 나와 바깥에서 눈을 맞으면서까지 동병상련의 처지를 토로했다.
자꾸만 바뀌는 강사님들과 그들의 들쑥날쑥한 실력 차이가 주원인이었다. 이미 결제를 했으니 돈이 아까워서라도 어쩔 수 없이 센터에 나오고 있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최근엔 결석도 자주 한다고 했다.
센터의 강사님들은 물론 시간까지 변경되어 운동하기는 더 힘들어졌고 헬스장까지 등록해 둔 상황이라 필라테스를 향한 열정은 점점 더 쪼그라들던 찰나였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하면 권태로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겨울철 운동엔 강제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 퇴근 후에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강추위를 뚫고서 운동하러 가는 부지런함은 내돈내산 선결제가 낳은 기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재등록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거의 80%에 가까운 상태였다. ‘재미없는 필라테스도 이제 세 번만 더 하면 끝이야. 조금만 더 힘내자.’ 금번 회원권이 종료되면 필라테스를 쉬겠다고 벼르던 찰나 회사 화장실에서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대체 어떤 운동을 하면 선생님 같은 몸매를 가질 수 있나요?” 칭찬 가뭄에 목말라 있던 미세스쏭 아줌마는 매우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저요? 에이. 아니에요.” 기분은 매우 좋지만 예의상 건넨 말이겠거니 어물쩡 넘어가던 내게 상대는 한 번 더 진지하게 물었다. “무슨 운동을 하면 되는지 저도 좀 알려 주세요.”
필... 필라테스요...
역시 필라테스를 중단해선 아니 되는 것인가. 센터를 옮겨? 그냥 재등록을 해.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