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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Sep 20. 2024

풍경, 가볍거나 무겁거나


윤동주 시인의 산문 ‘달을 쏘다’의 일부이다.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슬픈 선창(船艙)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하여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 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송림(松林)은 한 폭의 묵화(墨畵)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하다. 



수필 ‘만월’에서 김동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보름달은 그 어느 때고 그 어디서고 거의 여건을 타지 않는다.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산도 물도 수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추석을 앞둔 지난주, 산책길마다 달을 쳐다봤다. 

초승달이 반달이 되고 보름달을 향해 둥글게 채워지기까지. 

밤하늘에서 그 달은 손을 뻗쳐 만지고 싶을 만큼 

뚜렷하고 밝은 모습으로 아름다웠다. 

13일의 둥근 달은 달무리가 져서 추석날 비가 오려나 싶기도 했다. 

그 달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따스하고 환하게 비췄다.

하지만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정은 

골고루 공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은 하나지만 그 빛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의 모양새는 각양각색이니까. 

산책을 갈 때면 버릇처럼 길목의 가게들을 들여다본다. 

손님이 많으면 괜히 마음이 놓이고 

손님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밤도 되기 전에 문이 닫혀 있거나 

임대 문의가 붙은 가게들도 걱정스럽다. 

오랜 불경기의 그늘이 사회 전반에 걸쳐 두루 드리워져 있다. 

게다가 후덥지근하게 더운 한가위라니  

기후마저 하 수상한 시절이다.  


윤동주 시인의 달과 동리 선생의 달이 다르듯 

상황과 사정과 감정에 따라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보 또한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는 훤한 보름달이 누구에게는 시린 달일 수도 있으니까.

만나서 즐거운 사람도 있고 만나는 게 괴로운 사람들도 있다. 

그리움만 쌓이는가 하면 그리움 따위 모르고 살기도 한다. 

그러나 

초승달이건 반달이건 보름달이건 달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삶이든 매끄러운 삶이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 것처럼.

사진: 이영환 작가



정작 한가위인 오늘, 달을 보지 못했다. 

어제, 오늘 양가를 오가느라 피곤해서 밤 산책을 걸렀기 때문이다. 

음식을 장만하고 나누느라 북적대던 시절에도 거뜬했는데 

사 온 음식으로 편하게 지낸 이번 명절이 왜 피곤한지 모르겠다. 

거실 창으로 내다본 밤하늘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졌나?

아니면 꽉 찬 보름달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까. 

진짜 감사는 고난 중에 하는 감사이고 

아무것도 없을 때조차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한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시간에도 

조금씩 각을 내려놓고 둥글어지길 바라는 한가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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