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은 첫째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며 둘째로는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책이나 방송처럼 기록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곳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록이 되고 싶어 한다. 이제는 단순히 기억에 남거나 자료로 저장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서 위대한 무언가로 각인되고 싶어 한다. 그럼 우리는 왜 기억되거나 기록되길 바라는 걸까? 왜냐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죽고 나서 정신이 우리 우주에 남든지 아니면 사후 세계를 가든지 그것도 아니면 환생을 하든지 간에 내 정신이 남는다에 대한 확신과 보장이 없으니까 '사전 세계'인 이 현실에 내 프로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죽고 나서 비록 육체는 쓸 수 없더라도 우리 인간이 영혼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실존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서 어떠한 업적이나 행동을 했는지를 기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영혼으로 자신의 삶을 알려주면 되니까 말이다.
주관적인 생각으로 아직 과학으로 영혼이나 정신을 정의할 수 없기에 그것들에 확신을 할 수 없어서 즉, 계속 존재할 수 없어서 존재했었다는 기록이라도 남기려는 것이다. 그것도 '좋은 사람' 혹은 '뛰어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억을 당하려면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에 그 기억을 하는 사람조차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렇기에 어떠한 사람과 그에 대한 기록이 있을 때에 그것을 저장할 수 있는 자료와 그 자료를 넣어둘 기계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많아서 아날로그적인 기록이든지 아니면 디지털적인 기록이든지 간에 정보물은 넘쳐난다.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위인전이나 전기 영화로 기록이 남는다. 이러한 인간의 기록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인류의 기술이 발달하고 지구가 멸망해도 다른 행성에 이주하는 데에 성공할 때까지도 한 인간의 역사가 자료로 남아있더라도 더 위대한 위인에게 알려질 순서를 내어주거나 아예 알려질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마치 서점 안에서 사장이나 직원들의 눈길조차 끌지는 못하지만 차마 버릴 수는 없어서 다른 책들이랑 같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책처럼 우리의 정보도 잊혀질 수도 있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또 마케팅에 따라서 먼저 알려지는 위인이 매번 바뀌고 그 차례가 순환되면서 알려질 기회가 빠르고 공평하게 찾아온다면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에 대한 자료를 읽거나 시청하면서 기억해 줄지도 모른다. 물론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외적인 이미지나 보안상의 이유로 알려지지 못한 숨은 위인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름이 알려진 앨런 튜링이나 오펜하이머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재밌는 건 기록이라는 것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자를 다루지 못하는 공룡은 자신들의 글로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공룡 중에서 티라노 사우르스를 예로 들면 평균 수명이 30년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데에 여기에서 공룡의 나이를 어떻게 추정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공룡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은 나와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티라노 사우르스의 화석들을 보면 다리에 나이를 먹을 때마다 나이테처럼 나이만큼 자국의 숫자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평균을 나눈다고 한다.
아, 나이테. 나무도 자신이 티라노 사우르스처럼 자신이 이 지구에서 살았다가 갔다는 증거를 남기고 있었구나. 재밌는 점은 나무나 공룡이 자신의 몸에 나이를 새겨 넣어진 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생존 본능 중에 하나라는 점이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다른 생물도 살려고 발버둥을 쳤고 삶의 기록을 남기려고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지 인류를 제외해고 자신들만에 기록이 없는 생명체들은 자신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에 자기 의지대로 몸속에 나이테로 살다간 기록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명이 수백에서 수천 년으로 알려진 은행나무의 나이테나 수명이 약 30년 정도가 되는 티라노 사우르스나 더 살려고 해 봤지만 자신들이 태어난지 몇 년 후에 죽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더 살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까 문자로 역사를 남길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의 종이 등장해서 화석을 연구하다가 과학 기술의 발달로 그 기록을 읽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약 38억 년 전의 광합성을 할 줄 아는 원핵세포에서 오존층도 없이 태양의 자외선을 죽고 살아남고 번식하기를 반복하다가 보니까 찰나의 순간을 살다가 죽는 원핵세포에서부터 여러 분기점을 두고 진화하고 퇴화하기도 한 생명체들이 그 생존 본능을 물려받아서 퇴화했든지 아니면 진화했든지 간에 말이다. 그렇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서 삶을 더 살려는 생명체의 생존 본능의 연장선이 뼈나 나이테에 새겨진 기록이 아닐까? 더 살고는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까 몸 안에 있는 세포들로 더 살려고 발악하다가 생물학적으로 기록이 새겨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