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호하는 경계 #내가 선택한 레인 안에서 안전하게 수영하기
제목 : 비슷하게 생긴 사람만 봐도 화나
약을 줄이는 동안, 겁이 나서 운동을 시작했다. 어지럽진 않을까, 퇴근 후 폭식하진 않을까,
무기력함에 눕기만 하진 않을까, 그러다 속이 체해서 또 토를 하는 건 아닐까. 단약의 부작용으로 감정 조절이 어려워져 생길 수 있는 신체 반응들을 떠올리니 불안했다. 하지만 걱정할 시간에 몸을 움직이면, 그래도 몸이 버텨줄 거란 기대가 생겼다. 그 믿음 하나로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더운 여름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은 부담스러웠다. 달리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하는 건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자기 전에 찬물로 샤워까지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 몸의 열을 식혀줄 수 있는 운동인 수영이 떠올랐다. 집에서 차로 7분 거리에 지역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이 있었고, 일일 자유수영 요금도 3,000원으로 꽤 저렴했다.
30분을 채우지 못하고 수영을 마쳐도, 샤워까지 하고 나오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래서 뿌듯했다. 내가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 밖으로 나올 때, 머리카락과 볼을 간지럽히는 저녁 바람이 내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줬다. 동화책에 나올 법한 손톱달, 반달, 보름달이 번갈아 떠 있는 하늘은 마치 나를 응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수영을 하며 단약에 대한 스트레스를 조금씩 희석시키고 있던 어느 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겼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수영을 하다 보니 반복해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생겼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거나 정겨운 분위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그들을 알아보듯, 그들도 나를 알아보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문제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예전 직장 동료 중 한 명과 생김새가 너무도 닮았다는 거다.
같은 사람이 아닌데, 흡사한 생김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불쾌했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껄끄러움과 거부감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나는 얼른, 같은 라인에서 벗어났다. 숨을 참고 물 아래로 들어가 레인을 옮겼다. 그런데도 마음은 배배 꼬였다. 그는 나에게 잘못한 게 없다. 머리로는 아는데, 나만의 트라우마가 올라온 거다. 상쾌한 기분으로 수영장에 왔지만,
그 사람을 보고 뒤틀린 마음 때문에 이내 몹시 불편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옮긴 레인에서 수영을 멈추지 않았다. 버텼다. 이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면,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슬펐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생겨나는 내 경계심과 방어심이 자꾸만 미간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그 주름이 언젠가는 내 인상으로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내 습관이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렇다고 다시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애써 줄이고, 이제 막 끊어가고 있는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상담을 갔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수영을 했던 그날의 기억을 꺼내 말씀드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뿜어내는 내 경계심이 결국 나 자신을 위축시키고 불편하게 만든다는 말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경계심이 생겼다는 건, 이제 나에게 ‘경계’가 생겼다는 뜻이에요. 오랜 시간 동안 불합리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잖아요.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내셨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버티고, 견디는 동안 다른 사람이 함부로 나의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스스로 경계를 만들어가신 거예요. 그 과정에서 조력자도 만났고요.
이제는 예전처럼 무방비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잖아요. 수영장에도 레인이라는 경계가 있죠. 물 위에 그어진 선이 구역을 만들고, 그 레인을 넘어서 수영하는 나를 막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선택한 레인 안에서, 나는 안전하게 수영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해오신 건, 그런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연습’이었어요. 수영을 할 때 생각해 보세요. 나를 보호하는 경계가 생겼다는 걸요. 그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레인 위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불안정한 마음을 문제로 여기고, 그 마음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만을 찾고 쫓았다. ‘짜잔! 이거 몰랐지?’ 하며, 누군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팁을 줄 거라고 믿었다. 인간관계에 정답이 없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원했다. 상담 선생님의 말에는 어디에도 현실적인 해결책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생각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바꿔주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날 상담 선생님의 말들은, 내게 분명히 용기를 주었다. 경계심을 가진 내가 문제 덩어리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늘 무거웠다.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습관은 나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 앞에 경계선을 그리고 있었던 거다. 그전까지 나는 ‘이 정도는 넘어도 괜찮아’ 하며 선을 밟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얻어맞았다.
용기를 내서 겨우 선을 그으면, 또 누군가가 그 선을 밟았다. 그럼 나는 또다시 선을 그었다. 지워지면 다시 그었다. 끝없이, 반복했다. 사람 사이에 경계가 없으면, 우리는 모두 위태롭다. 하지만 그 경계심이 나조차 불편하게 할 정도의 긴장감이 된다면, 슬퍼진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긴장감이, 어쩌면 내가 겪고 지나가야 하는 성장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 됐든 나는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선을 긋는다. 영원한 경계선은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나를 중심에 두고 반경 몇 뼘쯤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알겠다. 긋고 긋다 보니 흔적이 남아서일까. 하지만 경계선이라는 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기에 늘 불안했다.
그 애매함이 나를 지치게 했다. 이제는 수영장에 가면 사람보다 레인에 집중해야겠다.
내가 정한 이 레인이 나를 보호해 주는 선이라고 믿기로. 적어도 내가 선택한 레인 안에서 수영을 할 때,
나를 막아서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