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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Oct 29. 2023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피하다

마트 조명 형광등이 터지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 작은아이와 우리 부부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마트를 들렀다.


야채를 담기 위해 일회용 비닐을 몇 개 뜯어 싱싱한 오이부터 담고 주중에 먹을 샤브샤브용 배추 속, 청경채, 짧은 숙주, 목이버섯, 팽이버섯 등을 카트에 집어넣고 아침에 먹을 당근을 골랐다.


작은아이는 보통 아침 대용으로 주스용 당근을 그냥 생으로 먹는다. 당근은 야채코너 아래쪽에 있어 머리 숙여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가며 가장 싱싱해 보이는 것들로 골라 담기 시작했다. 냉매가 흐르는 진열대 안쪽을 들여다보니 좀 더 싱싱해 보이는 당근이 있었다. 난 몸을 최대한 숙여 진열장안까지 들어갈 듯 몸을 욱여넣고 팔을 뻗어 세 봉지의 당근을 골랐고 이 정도면 한주는 거뜬히 먹겠다 싶어 몸을 빼내 다른 코너로 가기 위해 카트 방향을 틀어 한 두 걸음을 떼었다.


그 순간 <펑!>하는 굉음과 함께 야채 진열대 위에서 야채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던 LED 등이 터졌다. 처음엔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는데 당근이 있던 자리 아래 바닥에 하얀 가루들이 밀가루를 뿌린 듯 쏟아져 있는 게 아닌가. 내가 그 진열대에서 몸을 뺀 지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찰나의 순간이었다.(너무 놀라고 경황이 없어 터진 잔해가 쏟아진 모습을 찍지는 못했다. 글을 쓸 요량이었으면 사진을 남겼어야 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펑>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경비가 달려왔고 다른 직원들도 몇 명이 청소도구를 챙겨 와서 재빨리 상황을 수습했다. 좀 전까지 전쟁터 같았던 진열대 바닥의 모습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다시 정리되었고 터진 LED 등 자리는 새로운 등이 간 친구를 대신해 반짝반짝 빛내주고 있었다.


내 뛰는 심장은 아직 진정될 기미가 없다. 나는 놀라 뛰는 가슴에 손을 얹고 남편과 아이를 향해 몇 번이고 큰 일 날뻔했다 큰 일 날뻔했다 반복해 말했다. 2~3초만 더 지체했더라도 그 LED 등 파편들은 내 머리와 몸 위로 쏟아졌을 거라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문득 예전 빗길에 중앙분리대를 사이로 마주 오던 짐을 잔뜩 실은 컨테이너 차량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남편이 몰던 우리 차 바로 앞차를 육중한 컨테이너의 무게로 눌러버린 일이 떠올랐다. 우리 차 바로 위로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어찌 되었을까. 부디 아무 탈 없었기를..


아이와 남편에게 <아빠가 착하게 살아서 다행히 사고를 피할 수 있었나 보다> 하며 공을 남편에게 돌렸다.


사람이 살고 죽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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