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006
침대는 연신 삐그덕 삐그덕. 전에 없이 앓는 소리를 냈다. 주인의 휴식을 위해 한참 덥혀 놓은 제 배 위에 낯선 이가 드러누워 있으니 억울함을 토로하는 침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느닷없이 찾아와 남의 자리에 누워 침대와 번갈아 가며 앓는 소리를 내는 등 뒤의 한 남자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4년 전 어느 밤의 일이었다. 절친한 벗 하나가 불쑥 나를 찾았다. 어지간해서는 내 집을 방문하지 않던 친구였다. 경조사에라도 다녀오는 길이었던지, 검은 양복 차림인 그는 벌겋게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인사도 않고 침대 위로 벌러덩 몸을 던져 끙끙 신음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없었다. 달아 오른 얼굴만큼이나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였다. 한참을 앓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람이가 결혼했어.
아. 그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다. 그는 열렬히 구애했었으나, 첫사랑이란 게 으레 그렇듯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그녀가 결혼을 한 것이다. 그가 아닌 누군가와. 그는 그 축복 속의 행진을 홈런 맞은 투수처럼 멍청히 지켜보다 온 길이고.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그는 주먹질이며 발길질이며 할 것 없이 허공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무슨 결혼이야. 어떻게 벌써 결혼을 해!
분노에 찬 몸부림이 잦아들고 모른 척 외면하고 있던 내가 그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울고 있었다. 호젓한 겨울밤 청승맞게 홀로 뜬 달처럼 외롭게, 그리고 차갑게 그는 한참을 흐느꼈다. 그 초점 없는 눈을, 차가운 눈물을 보았다면 젊은 베르테르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경솔함을 인정하고 수치심에 다시 권총자살을 할게 분명했다. 첫사랑의 경험이 없던 내게 그 장면은 적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점잖은 친구가 아니었던가. 어지간해선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빗나간 타이밍의 첫사랑만큼 슬픈 소나타도 세상엔 별로 없구나.
- 스물넷의 일기장에서 발췌
아니, 사람은 쉽게 잊고 빠르게 적응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