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xan Oct 19. 2022

시간이 없을 수도 있나요?

첫 번째 편지

친애하는 B,

오늘도 나는 바닥을 보며 길을 걸었습니다.


여름의 끝에서는 버릇처럼 바닥을 봅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이 바보 같다 혼내셨지만은, 여름 끝 길바닥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난 그런 말을 하는 엄마를 더 바보 같다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속으로만 삼킨 생각이지요.)


거기에는 매미가 있습니다. 여름을 여름답게 만들던 매미가 여름의 종식을 알리며 죽어있습니다. 한 달을 여름보다 뜨겁게 태웠던 게 무색하리만치, 지금은 정말 아무렇게나 죽어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나무에 매달려 울다 그냥 힘없이 툭, 그렇게 떨어져 죽나 봅니다. 한결같이 나무 밑에 배를 까뒤집고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B, 매미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요? 자기의 시간이 그렇게까지 아무렇게나 끝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모두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까 그토록 열심히 우는 거겠지요? 울부짖으며 짝을 찾는 거겠지요? 그 뒤의 시간은 어떻게 끝나든 상관없다는 듯 사는 거겠지요?


저는 곧 죽을 것 같습니다, B. 어쩌면 매미가 그러하듯, 인간들도 모두 언젠가 자신의 시간이 끝날 거라는 걸 알고 있겠지요. 그러니 다들 매미처럼, 한철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울부짖듯 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어딘가 단단히 어긋난 모양인지, 단지 끝날 것을 앎을 넘어 그 끝을 생경히 느끼기까지 합니다. 잠을 자려 베개에 머리를 뉘일 땐 오롯이 혼자입니다. 누구와 같이 있든지 간에 잠에 드는 것은 혼자입니다. 오롯이 혼자여서 흩어져가는 의식을 붙잡기에 저는 너무나도 유약합니다. 그렇게 하릴없이 흩어짐에 순응하면, 그 뒤의 시간에 저는 없습니다. 마치 죽음 이후의 시간에 제가 없는 것과 같이...

때문에 오늘 찾아올 밤에, 어김없이 저는 곧 죽습니다.  



B, 시간이 없을 수도 있나요?

언제 한 번 꽤 귀여운 남자한테 추근덕 대었다가 "시간이 없다."는 처참한 답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초라한 기분으로 "어떻게 시간이 없을 수가 있니? 시간은 수학적이며 절대적인 형태로 항상 존재한단다!"라고 혼자서 비아냥거렸습니다. (아마 제가 이래서 차였나 봅니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는 표현을 곧잘 씁니다. 아마 사람들은 시간을 소유할 수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시간이 있기도, 없기도 하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시작하기 전에는 '진실로'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조차, 적어도 없는 존재의 배경이 될 시간만은 존재해야 논리적으로 가능한 말이 아닌지요? 그러니 시간이 없다는 말은 참 쉽고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B, 다시금 묻고 싶습니다.

존재가 시간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한 존재에게 진실로 시간이 있거나 없거나 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제가 죽은 듯이 잠든 그 시간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죽은 듯이 잠든 그 시간이 저를 소유한다고 보는 편이 더 맞겠군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싫어서 넌덜머리가 납니다.

시간에게 소유당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존재로서 필연적임을 알면서도 싫습니다.

피할  없는  즐기라 하였건만 시간에 소유되는 일만은 도저히 즐기며 넘어가지 못하겠는 것은, 변하는  지겨워하는 성격 탓입니다. 액정이 깨진 휴대전화도, 한쪽이 들리지 않는 이어폰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길이 생긴다 해도  가던 좁은 길로만 가고 싶습니다. 시간에  이겨 헐어지고 금이  모든 것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다소 미련해 보이겠으나, 이것은 시간의 소유에서 벗어나 되려 제가 시간을 소유해보려 하는 인간다운 발악입니다. (발악이라 하니 미련한 것이 맞겠군요.) 오래된 물건과 습관을 바꾸지 않는 것. 종잇장처럼 피부가 얇아져버린 어머니의 손을 괜스레 오랫동안 만져보는 것. 식어빠지다 못해 재가 되어버린 사랑을 놓지 않는 것. 매일의 사소함을 기록하여 나의 글 안에 시간을 가두는 것. (다 적고 보니 저는 정말 미련한 것이 맞군요.)



허나 다소 미련한 것이 맞다 하여도 저는 이 일련의 발악들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멈춘다면, 그저 시간에게 소유되기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간의 소유대로 흐르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저 또한 시간과 함께 변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변함없이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시간을 소유해 보려고 합니다. 매미처럼 울부짖으며 실컷 소유해 보려고 합니다.


B, 당신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당신과 나는 숙명적인 시간 앞에 함께 서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함께 답을 찾아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B. 시간  내어주시겠습니까?


내어준 시간 속에 저를 넘치도록 담아 돌려드리겠습니다. 비록    속에 담아드리는 것이라 해도, 당신께서 제가 담긴  시간을 소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변화 앞에서 허망히 무언가를 잃지 않도록, 낡았더라도 지키며 사랑할  있도록

실컷 소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