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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xan Oct 30. 2022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편지

친애하는 B,

어쩌면 당장으로써는 마지막 편지가 되겠습니다.

당신에게 편지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 까닭은 첫째, 제 글 실력에 모자람이 있기 때문이요, 둘째, 끝나지 않는 편지 같은 건 단연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언가 떠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천성 탓에 또다시 무언 얘깃거리를 가지고 찾아뵐 것임이 분명하나, 적어도 지금 당장만은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일련의 편지를 끝마치게 되어 시원섭섭한 마음입니다.  


이런 종류의 마음을 가지고선 으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만 싶어집니다. 가보지 않은 곳으로의 여정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두고 올 수도, 가져올 수도 있기에 그러합니다.


게다가 시간이라는 게 가끔은 이상하리만치 얄궂게 맞물릴 때가 있어, 글을 시작하며 오래 사귀었던 이와 끝나도록, 글을 마치며 새로운 이와 시작하도록 된 것입니다.


글이든 사람이든 끝나면 다음 주제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것이 마치 당연한 수순인 듯 삽니다. 28살쯤 되면 되풀이되는 만남과 헤어짐이 지겨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뭐가 됐든 간에 여전히 만남은 설레고 헤어짐은 아픕니다.


그렇게 설렘과 아픔을 동시에 안고, 내 속을 알리 없는 새 남자 친구의 손을 꼭 잡은 채 울릉도행 배에 올랐습니다. 나와 그가 이번 여행지로 울릉도를 택한 건 폭등한 비행기 표 값 때문이기도, 둘 다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그 이유야 어쨌든 간에 울릉도를 택한 건 대체로 후회스럽지 않았습니다. B, 만약 당신이 풍경과 바다 수영을 즐긴다면 용기 내어 추천하여 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여행지였습니다.



앞서 "대체로 후회스럽지 않았다."라고 한 것의 미묘함을 눈치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네, 어떤 후회스러운 지점이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회스러운 지점은 장장 3시간 10여분 동안의 항해였습니다. 겪기 전에는 3시간가량 배를 탄다는 사실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까짓 거, 될 대로 되라지!'식의 '무지의 용기'랄까 하는 것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몰라서 생기는 용기는 퍽 공허하더군요. 배가 출발하자마자 온몸으로 느껴지는 파고의 차이, 그 출렁거림에 등을 구부리고 팔다리를 접은 채 그만 두려워 떨고 만 것입니다. (부디 겁쟁이라 놀리지는 말아 주시길. 그날의 파고는 1.5m였고, 바람도 상당히 세었습니다.)


그나마 그중 작은 위안(?)이라 하면, 저만이 뱃멀미에 나가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새로운 남자 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승객들이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더군요. 1시간쯤 후에는 곳곳에서 구역질하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배가 바이킹처럼 심하게 출렁일 때면 여기저기 탄식하는 소리도 터져 나왔구요. 그런 난리통에 언뜻 비친 정말 신기한 장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쩡한 몇몇 사람들이 꽤 신나는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B, 어찌하여 똑같이 주어진 외부 상황을 누군가는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일까요? 비단 뱃멀미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모든 편지에서 그랬듯 저야 늘 작은 것에도 쓸데없이 큰 의미를 부여하니까요.)


어쩌면 삶 또한 끊임없는 파고를 따라 고점과 저점 사이에서 어지러이 출렁이는 배와 같기에. 유독 시간의 흐름에 괴로와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시간이 흐름을 알면서도 즐기는 이들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뱃멀미를 즐기던 사람들은 자세부터가 남달랐습니다. 잔뜩 웅크리지도, 손으로 아등바등 무언가를 꽉 잡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파도에 배가 들릴 때 그들의 몸도 같이 들렸고, 파도에 배가 가라앉을 때 그들의 몸도 같이 가라앉았습니다. 마치 춤을 추듯이, 그들의 몸은 파도와 함께 일렁일렁하였습니다. 참으로 과학적이고도 현명한 자세가 아닙니까! 무섭고 어지럽다 하여 몸에 힘을 꽉 주고서 뻣뻣히 굳어 있으면, 다가오는 파도의 충격을 그대로 다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파도와 함께 흔들려야지만이 파도에 부딪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리도 당연한 이치를 눈앞에 두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덕에 울릉도 여행을 끝낸 후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을 즐거웠습니다. 기상 악화로 파도가 거세져 배는 저번보다 더욱 흔들렸지만, 저는 더 이상 무섭거나 괴롭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철인 마냥 뱃멀미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은 또 아닙니다. 여전히 조금씩은 어지럽고 미슥거렸습니다. 또한 배가 뒤집힐 듯이 출렁여 사람들이 소리를 지를 때면 따라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허나 그럴수록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창밖을 바라보니, 내가 배에 탄 것이 아니라 파도의 일부가 되어 바다를 자유로이 횡단하는 듯하여서 그런 어지러움과 미슥임과 놀라움까지도 그저 즐거웠습니다. 이처럼 즐기며 창밖 풍경을 오래 구경하다 보니 튀어 오르는 돌고래를 발견한, 잊지 못할 행운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이야말로 뱃멀미를 즐기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흔들리며 뱃멀미를 이겼습니다. 이기는 방법에는 꼿꼿이 맞서는 것만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이처럼 순응하면서도 즐거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제 삶 속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설레면 설레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몸을 맡기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굳이 애써 설레는 시작을 이끌어 나가려 하지도, 아픈 헤어짐을 잊으려 하지도 않아야겠습니다. 힘을 빼고 흐르는 삶의 결 따라 춤을 추듯 살겠습니다.


혹시 또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다 돌고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행운을 마주하고선 괴로움 속에서도 기뻐하게 될지...



 수만 있다면 저는  돌고래 같은 편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비단 저만이 이유 없이 괴로워하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몇몇은 우울과 괴로움에 그럴듯한 트라우마가 없다는 데에 의문을 표하곤 하지만은, 세상엔  말고도 이유 없이 우울하고 괴로워하는 존재 또한 몇몇 있다는  알았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작은 만남과 헤어짐에도 크게 다치는 법이니까요. 그럴 , 크게 다쳐서 어지럽고 미슥거릴 , 우리 너무 순간만을 보지는 맙시다. 괴로이 크게 출렁이는 파도들은 마침내 우리를 머나먼 수평선에 도달토록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그러려니, 파도에 몸을 맡기고 우리의 시간을 횡단하면  좋겠습니다.


B, 당신께서 지금 바다  어떤 지점에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힘들게든 편안하게든 시간을 횡단하는 중에 잠시라도 이곳에 들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돌고래 같은 기쁨을 드리게 되었다면 더욱 감사합니다.)


곧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그동안 평안하길 바라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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