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
친애하는 B,
오늘은 이전보다 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데는 당신 외에 또 어디가 있겠습니까?)
다른 게 아니라, 아, 저는 오늘 아침에 제가 아이를 가진 줄로 알았습니다. 왜인지 한 달 내 몸 상태가 이상했었고, 그래서 집에 굴러다니던 검사기를 써 보니 설마설마했던 것처럼 줄 두 개가 또렷이 나타나더군요. 정말로 눈앞이 순간 아득하여 미친 것처럼 나머지 검사기도 뜯어서 다시, 또다시 해보니까 하나는 한 줄, 나머지 하나는 두 줄... 어찌해야 하나 얼마 간의 시간을 복잡한 심정으로 멍하니 있다, 번뜩 서둘러 옷을 대충 챙겨 입고선 근처 산부인과로 향하였습니다.
결과는 음성.
검사기가 오래되었던 까닭이든 뭐든 간에 아직 제 뱃속에 아이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맥이 풀려 산부인과 건물 1층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허기를 달랬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업도 빼먹고 혼자 난리굿을 떨었던 탓에 온몸이 달달 떨렸습니다. (그래도 음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켰습니다.) 배를 채워가며 창밖을 보니 문득 애초에 있지도 않은 제 아이에게 미안한 겁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신호등을 건너는 아이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데, 막연하게는 나도 아이가 있다면 좋으려나 하구 생각했었는데... 막상 정말로 때가 왔다고 생각하니 그처럼 두려울 수 없던 것입니다. 내게 아이가 없다 하는 의사의 말이 그처럼 다행일 수 없던 것입니다...
아마 자신이 없어서였겠지요.
사랑하는 아이에게 영원한 행복을 약속할 자신이 저는 도무지 없었습니다. ‘나는 가끔 내 존재조차 찢고 부정하는데 어떻게 그런 존재가 잉태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나, 내 아이는 필연 불행할 것이다!’ 하구선 자꾸만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엔 우습던 영원이란 빈말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존재를 생각하면 본능처럼 영원한 행복을 주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더욱이 영원을 약속할 힘이 없는 스스로가 작아져 두려웠습니다.
B, 당신은 영원을 약속한 적 있습니까?
영원을 상상하려 애쓰려 하면은, 무엇이 떠오릅니까? 어떤 감정이 느껴지십니까?
영원은 평생과 다릅니까? 평생이 끝나고서도 이어져야만 영원이기에 천국이나 지옥, 이데아 같은 세계로 영원을 상상하려 한답니까? 그러면은 그 영원한 곳은 시간이란 게 없어야만 이치에 맞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그 이치에 대한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제가 이런 이야기를 지껄일 데가 당신 외에 달리 어디 있겠습니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곧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엔트로피는 뭐 경우의 수 정도로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우리는 물리학자가 아니니까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그 경우의 수라는 건 무조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가 골백번 죽었다 다시 생긴 대도 감소할 일은 없고, 시간과 존재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은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의해 계속 경우의 수를 더해 가며 혼돈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의 저는 과거의 저보다 더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흘렀다는 것, 즉 엔트로피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엔트로피는 어디까지 증가하는가, 삼라만상은 어디까지 혼란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시간 개념과 관련해 뭇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가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알아낸 답은 이러합니다. ㅡ엔트로피는 무한을 향해 증가하다 포화상태에 도달하며, 포화상태에 도달하게 된 시간과 존재는 일명 '죽음'에 이른다. 어느 인간도 이 혼돈의 포화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주와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주도 죽고, 결국 시간도 죽는다. 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행해진 후에야 비로소 죽는 것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로 채워진 채로, 상상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ㅡ
그러니까, 영원한 시간이라는 건 없는 소리지요. 시간 자체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영원하지 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 시간이 주욱 이어지는 것을 두고 영원이라 일컫는 건 역설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영원을 꿈꾼다면 시간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십시오. 시간 없는 세계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저 가만일뿐인 그대 영과 혼을 그려 보십시오. 육신은 저항 없이 부수어질지라도, 그 안에 포화된 에너지만큼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영원히 존재하게 되도록, 그리 떠올려 보십시오.
만약에 그리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면 우리는 단연 두려워야 합니다. 제가 저의 아이에게 영원한 행복을 약속치 못할 것을 두려워했듯이, 우리의 에너지가 어떤 일그러진 형태로 영원히 남게 될까 두려워야 합니다. 아뇨, 그렇다고 누구누구 신의 말씀에 따라 착하게 살아서 좋은 에너지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바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은) 저는 이상하게도 제가 이 지구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그런 일종의 계시 같은 생각과 꽤 자주 마주하였습니다. 그리곤 해야만 하는 일에는 걷잡을 수 없이 끌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 하구요. 그러구선 이제 그 계시 같은 일이 저를 채우는 겁니다. 감탄토록 좋은 에너지로 저를 구성하는 원자 빈틈 하나하나를 꼭꼭 메우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고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애초에 그 선택지를 택하도록 되어있다는 듯이.
그러니 B, 두려워 말고 해야 하는 선택지를 골라 주세요. 죽음조차도 가로막지 못할 엔트로피로 그대를 채워주세요. 아마 저 또한 두려움 없이 스스로를 채워 나가다 보면은, 언젠가는 준비가 되겠지요? 또 다른 행복한 존재로 이 지구를 영원히 채울 준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