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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xan Oct 30. 2022

바위를 굴리는 행복함

여덟 번째 편지

자유로운 사람들에겐 어쩐지 무거운 향기가 날 것만 같아.


심심할 때 자살한 이들의 유서를 찾아보는 버릇이 있어요. 여러 유서 그중 몇몇은 유독 맘을 맴돕니다. 20대의 어떤 젊은 여자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았던 모양인지, 고작 서너 줄 밖에 되지 않는 그녀의 유서는 죽음을 예고한다기엔 가벼운 향기가 났습니다.


B, 오늘 그댄 몇 명의 자유로운 이를 보았는가요?


저는요, B.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또 여전히 자유롭고 싶습니다.

다른 존재로부터, 다른 여러 존재에 귀속된 내 처량한 의식으로부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저 맘대로 만들고 부수는 시간으로부터...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익명인 타인들로부터의 관심을, 부모의 인정을, 연인에게서의 사랑을 원합니다. 갈구합니다. 확신이란 건 위험한 행위입니다만, 저는 제가 한평생 이 같은 갈구에 머물러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음, 이 얘기는 조금은 엉뚱하게 느껴지시려나요? 저는 요즘엔 시간을 멈추는 법을 연습 중입니다. ('엑스맨'의 '찰스 자비에'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사이비 같을지도 모르는 명상과 수련 도서들을 뒤져가며 연습 중이나, 결과가 영 시원찮은 걸 봐선 아무래도 시간의 귀속으로부터도 자유롭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습니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로부터 약 250년 정도가 지난 후에 알베르 카뮈는 말했습니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자유로울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존재를 가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악에 받친 반항이라고, 카뮈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이 문구를 마주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남들한테서 너는 사춘기도 없느냔 소리를 곧잘 듣던 학생 때요. 부모든 선생이든 옆집 아주머니든 그저 윗사람 말이라 하면 끔뻑 죽는시늉으로 순종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쓰다듬음이 좋았거든요. 속에 나쁘게 꼬인 응어리가 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반항 없는 모범생으로 그리 살았습니다. 한이 된 응어리를 제대로 푸는 법조차 모르던 제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카뮈의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는 날 선득한 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부조리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누구보다 자유롭고 싶어 하면서도

순응하며 자위하듯 의미를 찾거나, 체념하며 냉소하거나 둘 중 하나에 그치던 제게 "반항하라!"는 그 무기는 저를 그저 저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학업에 성실히 임하면 의미가 생기고 행복해진다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두려움에서 당연한 듯 종교를 찾지 아니하였습니다, 너 혼자 그래 봤자 세상이 바뀌냐느니 다 소용없다느니 하는 잡음에 귀를 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고2 때부터요. 일기나 시시한 시는 물론이고, 교내나 교외 백일장까지도 글 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습니다. 평소에 얌전히 학교 공부만 하던 애가 갑자기 눈이 돌아선 "쓸데없는 짓거리"를 "중요한 시기"에 하고 있었으니 선생과 부모 마음은 꽤 애가 탔겠습니다. 그러니 글 쓰기는 제게 있어 한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동시에 가장 좋은 반항이었던 셈이지요.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산의 광물 빛 하나하나가 유독 시지프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중력을 벗어난, 가벼움과 어울리는 자유에서 무거운 향기가 나는 이유는 그것이 반항함으로써 생기기 때문입니다. 거센 비바람일수록 그 앞에서 달리는 스스로의 존재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B, 우리는 우리 삶의 피투성(被投性)과, 시간 앞에서의 처절한 무기력함과, 광대한 우주 속 인간의 무지함을 똑바로 인지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디며 살아내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겠습니다. 마치 그런 운명을 선사한 이를 골탕 먹이려는 듯이요. 실컷 꼭대기까지 굴린 바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도, 다시금 굴러 떨어질 것이니 다시금 올려놓을 것이 까마득하다 해도, 저는 이 악물고 즐겁다 외치겠습니다. 바락바락 반항할 건덕지가 남아있다는 생각에 벅차올라하며 살아내겠습니다.


그러고 마침내 무(無)로 돌아갈 순간엔

닳도록 바위를 굴릴 수 있어 그 자체로 행복했다고,

이름도 뭣도 남길 필요 없이 그거면 됐다 하면서  보란 듯이  흔들며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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